미스테리 공포 소설

별장에 가는 이유

배작가 2021. 3. 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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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부터 전원의 삶을 동경했다. 결혼 10년차가 되던 해, 우연히 청평 인근 전원주택을 인수하게 되면서 그의 오랜 소망은 이루어졌다. 사실 말이 전원주택이지 허름한 농가주택일 뿐이었지만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다 쓰러져가는 시골집이지만 조금씩 수리하면 그럴듯한 전원주택이 될 거야.

그는 막 초등학교에 들어 간 딸과 아내에게 꿈에 겨워 얘기했지만, 두 사람은 딱 한 번 그 집에 다녀온 후, 다시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유는 벌레 때문이었다.

욕실에는 지네가 기어 다니고 집 앞 개울에는 거머리가 득실거리는데, 거길 우리 여자들이 어떻게 갈 수 있겠어?

아내는 딸과 자신을 우리 여자들 이라 칭하며 은근히 공동연대를 구축해버렸다.

연아야, 너도 정말 가기 싫어? 가면 재밌는 것도 많은데, 이번 주말에 아빠랑 같이 가자.

싫어, 거머리도 무섭고 지네도 징그러워서 안 가. 엄마랑 여기 있을래.

그 후로 그는 매주 주말, 혼자서 그곳에 갔다. 어쩌다 보니 혼자만의 별장이 되었지만 그는 마냥 좋기만 했다. 벌레가 집에 들어오면 치우면 되고, 거머리가 많은 개울에 갈 때는 장화를 신고가면 될 뿐이었다.

두 사람 뒤치다꺼리 하느니 혼자 가서 편히 쉬는 게 훨씬 좋지.

그렇게 혼자만의 별장을 즐기던 어느 날 밤, 인적 없는 그 곳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저기, 계세요?

이 시간에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그의 집은 마을에서도 꽤 떨어진 산 중턱에 위치한데다 아직 마을 사람들과도 전혀 교류가 없던 터라 그는 의아해하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

누구신데 이 밤에?

문을 열어 보니 등산복 차림의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제가 산을 타다가 탈수가 와서, 죄송한데 하루 밤만 묵고 가면 안 될까요?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도 그는 남자 혼자 있는 집에 여자를 들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건 좀 그런데...정 그러시면 제 차로 가시는 데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집은 너무 멀고요. 이 시간엔 버스도, 기차도 다 끊겨서...휴우.

여자는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정 그러시면 어쩔 수 없네요. 들어오세요.

, 고맙습니다.

금세 얼굴이 밝아진 여자는 집으로 들어오며 여러 번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했다. 그는 방 두 개 중 사용하지 않는 작은 방을 그녀에게 내주었다.

배고플 텐데, 이거라도 좀 드세요.

그는 여자의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 삶은 고구마를 건넸다.

, 어둠 속에서는 몰랐는데, 굉장한 미인인 걸.

그의 시선은 접시를 받아든 여자의 손끝을 시작으로 풍만한 가슴과 가녀린 목선을 거쳐 얼굴까지 훑어 올라갔다. 매끈하게 굴곡진 여자의 몸매에 그는 잠시 넋이 나갔다.

이런,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자신의 무례한 행동을 인식한 그는 서둘러 방을 나왔다.

휴우.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 왜 이렇게 잠이 안 오지?

그는 자꾸만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두근거려 잠이 오질 않았다. 10여 년 전 아내와 처음 연애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내가 주책이지. 어이구.

그는 몸을 뒤척이다 벽을 향해 몸을 돌려 잠을 청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설핏 잠이 들었는데 등 뒤에서 뭔가 뜨거운 기운이 느껴져 잠에서 깼다.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하려는데 여자의 끈적이는 목소리가 따뜻한 입김과 함께 귀에서 울렸다.

이렇게라도 해야 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그의 몸을 꼭 끌어안은 여자는 바싹 몸을 밀착하며 그에게 파고들었다.

, 이러시면 안 되는데..., 저는 가정이 있다고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여자의 몸을 밀어내지 않았다. 여자의 포근하고 따뜻한 몸이 그의 몸 안으로 들어오자 그의 이성은 마비되었고 몽롱한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고요한 산중에서 시작된 그녀와의 뜨거운 밤은 새벽이슬이 맺힐 때까지 계속되었고 동이 틀 무렵, 그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당신, 청평에서 혼자 진탕 술이라도 먹는 거야?

낯선 여자와의 야릇한 주말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 온 그에게 아내가 불쑥 물었다.

아니, 혼자 술은 무슨?

그의 활기차고 기운 넘치는 목소리에 아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몸은 힘들어 보이는데, 목소리는 날아다니고.

매섭게 꽂히는 아내의 눈을 피해 방으로 들어간 그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일주일 내내 일을 할 때도, 퇴근해서도 그는 지난 주말의 뜨거운 밤을 되뇌며 흥에 겨웠다. 다시 주말이 되었고 그는 어김없이 혼자 청평의 집으로 향했다.

흐음, 지난주는 정말 꿈같았어. 이 나이에도 그렇게 뜨거운 원나잇스텐드가 있다니, 역시 인생 모를 일이야.

그는 그녀의 흔적을 떠올리며 짜릿했던 기억에 젖어 시간을 보냈고 어느덧 다시 산중의 밤이 찾아왔다. 그는 툇마루에 앉아 늦게까지 하늘을 보다가 새벽이 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 이 느낌은!

설핏 잠이 들었던 그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분명 익숙한 느낌, 지난주에 느꼈던 그녀의 뜨거운 기운이 다시 느껴졌다.

뭐지!

어둠속에서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어렴풋이 낯선 그녀의 형체가 들어왔다.

죄송해요, 선생님. 너무 그리워서 또 오고 말았어요.

그녀는 한층 과감해진 몸짓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오늘 밤도 선생님은 제 것이에요.

그는 마치 그녀의 포로가 된 양, 그녀에 이끌려 온밤을 지새웠다.

당신 요즘 힘들어? 핏기도 없고, 나날이 말라가네. 보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청평의 그녀와 주말마다 시간을 보내는 사이 그의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회사 일이 많아서 그런가?

그는 붕 뜬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이렇게 날 생각해주는 아내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와의 쾌락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그는 주말이 되면 청평으로 가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이가, 아무래도 이상한데.

요즘 따라 부쩍 말수가 줄고 눈을 피하는데다 통 부부관계도 않으려는 남편이 주말만 되면 흥에 겨워 부랴부랴 떠나는 것이 의심스러웠던 아내는 늦은 밤, 남편이 홀로 있을 청평의 별장을 찾았다.

여기서 무슨 일인가 있는 게 분명해, 주말에 여기만 다녀오면 피골이 상접하잖아.

확신에 찬 그녀는 살금살금 그가 있을 큰방을 향해 다가갔다. 덩그러니 달이 밝은 산중의 밤은 깊고 고요했다.

도대체 뭘 하길래 이 양반이.

그녀는 살짝 방문을 열고 달빛이 내리치는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머, 저이가 왜 저러고 있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그녀의 음성이 어두운 방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눈을 감은 채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 인간이 미쳤나? 해괴하게 무슨 짓이야!

그녀는 방안에서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방에 똑바로 누워 신음을 지르고 있었고 그의 몸 곳곳에 거무튀튀한 것들이 꿈틀대며 그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거머리?

가까이 다가간 그녀가 남편의 온몸을 뒤덮고 있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아내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여전히 흥분에 도취되어 있었다. 매끈하고 풍만한 거머리 요괴 여자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맡긴 남자의 탄성이 밤의 고요 속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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