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공포 소설

그녀 방에서 먹는 짜장면은 맛있다.

배작가 2021. 3. 2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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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가 회사 점심시간마다 여자친구 영지의 집에 드나들게 된 건 매우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몇 달 전 민수의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한 영지가 어느 날 그에게 제안을 해왔다.

오빠, 요즘 피곤한 것 같은데 점심때 내 방 와서 쉬어도 돼. 바로 회사 코앞이잖아.

정말, 그래도 돼?

영지의 제안에 민수의 눈이 반짝 빛났다. 요즘 따라 과도한 업무량에, 잦아진 야근으로 늘 피곤한 상태여서, 영지와의 데이트에서도 쏟아지는 잠을 쫓느라 애를 써야했던 상황이었다. 그런 민수를 보며 마음이 쓰였던 영지가 고맙게도 먼저 배려를 해준 것이다.

주말이면 가끔 영지의 집에서 데이트를 했고 당연히 집 비밀번호도 알고 있던 터라 그리 낯설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없는 상황에 집을 내어주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기에 민수는 그녀의 깊은 배려에 감동을 받았다.

고마워, 영지야.

민수가 감동한 눈빛으로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자 영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 스킨십이 없는 민수가 이렇게까지 감동하는 걸 보자 그녀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어차피 결혼할 거고, 미리 연습 겸 괜찮은 것 같은데?

, 맞아. 영지 네 침대에서 네 향기 맡으면서 낮잠 자면 피로가 싹 풀리겠다.

변태 행각은 사절이야.

물론, 물론이지.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민수를 보고 영지는 사랑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자 하난 정말 잘 골랐어.

그 후로 민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영지의 집에 있다가곤 했다. 그녀도 직장을 다니는 터라 그 시각에 둘이 집에서 만날 일은 없었고 그녀가 없는 빈 집에서 그는 혼자 잠깐씩 쉬다 갈 뿐이었다.

, 그 짧은 시간에 정리까지, 역시 깔끔쟁이야.

그녀는 저녁에 퇴근해서 집을 살피면서 늘 감탄했다. 집을 어지럽히기는커녕 오히려 늘어져 있던 것을 그가 정리정돈까지 해주기 때문이었다. 워낙 평소에도 깔끔하고 매너 있는 민수이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위해주고 소중히 대한다는 생각에 점점 결혼에 대한 생각도 굳어졌다.

내 미래의 신랑감, 결혼해도 걱정 없겠어!

그렇게 평온한 일상이 흐르던 어느 날 저녁, 퇴근해서 돌아온 그녀는 특이한 냄새를 감지했다.

, 이게 무슨 냄새지? 음식 냄새인데, 짜장면! 낮에 짜장면 시켜 먹었나 보네.

그녀는 희미하게 감도는 짜장면 냄새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남자친구가 까만 소스를 입에 묻히며 혼자 짜장면을 먹는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하고는 늘 고급 요리 집만 가더니, 실은 짜장면을 좋아했던 거야?

그녀는 왠지 남자친구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아 웃음이 새어나왔다.

고고한 우리 오빠, 짜장면을 좋아하는구나. 호호.

크고 까만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가며 혼자 짜장면을 먹었을 남자친구의 사랑스런 모습이 상상되자, 그녀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데구르르, 침대를 구르며 깔깔대고 웃었다.

우리 오빠가 짜장면을 좋아하다니, 호호호호호호.

그렇게 그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만 느껴지던 영지, 그런 둘 사이에 미세한 문제가 발생했다.

오빠가 또 짜장면 시켜먹었나 보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매번 희미하게 풍기는 짜장면 냄새에 영지는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환기를 시키는 것 같았지만 유독 냄새에 예민한 영지는 어김없이 그것을 감지해냈고 잠들기 직전까지 창을 열어놓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 되었다. 그에게 얘기를 할까 생각도 했지만 기껏 집을 내줘 놓고 잔소리를 하는 것 같아 참아 넘기곤 했다.

이것도 부부생활 연습이겠지. 결혼하면 이런 하찮은 걸로 싸운다더니, 휴우.

그 후로 몇 번인가 테이블에 짜장면 소스 자국까지 남기자 영지는 기분 상하지 않게 얘기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휴, 피곤하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 온 그녀가 창문을 열며 환기를 시키는데 민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잠깐 볼까?

항상 바쁜 그였기에 주로 주말에 데이트를 하곤 했는데 갑작스레 평일 데이트를 하자고 하니 피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설레기 시작했다.

왜에,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서, 오늘 낮에 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우리 영지 향기가 너무 그리웠어.

치이, 변태.

하하하, 내가 금세 갈 테니까 우리 같이 저녁 먹자.

저녁, ? 오빠 좋아하는 짜장면? 호호호.

기분이 좋아진 영지는 까르르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영지, 짜장면 먹고 싶니? 난 짜장면 못 먹는데...

쩔쩔매는 민수를 보자 영지는 쿡,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흐흐, 장난이야. 오빠 낮에도 짜장면 먹었는데 어떻게 또 먹겠어. 근데...난 오빠가 짜장면 중독인 줄 알았지 뭐야. 흐흐.

은근슬쩍 영지는 그동안 참아왔던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점심때 짜장면 안 먹었는데.

민수가 정색을 하며 말하자 영지는 그가 발뺌을 한다는 생각에 웃음기를 거두고 쏘아붙이듯 말했다.

오빠, 오늘 내 방에서 짜장면 시켜 먹었잖아?

나 짜장면 못 먹어. 어렸을 때 크게 체한 적 있어서 아예 못 먹는다고.

남자친구를 몰아세우려던 건 아닌데 그가 계속 거짓말로 일관하자 영지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야? 이제껏 거의 매일 시켜 먹었잖아! 소스까지 다 흘려놓고!

영지야, 나 네 방에서 밥 먹은 적 없어. 냄새 날까봐 항상 밖에서 먹고 들어갔다고!

결국 사랑스럽게 시작된 통화는 다툼으로 끝났고 영지는 이렇게 된 상황이 모두 그 때문이라 생각했다.

, 짜증나.

꼬여버린 상황만큼 그녀의 머리도 꼬일 대로 꼬여 그녀는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솔직히 먹었다고 하면 될 걸, 왜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지?

영지가 답답함에 혼잣말로 화를 삭이는데 어디선가 기괴한 대답이 들렸다.

난 거짓말 안 해! 내가 짜장면 먹은 거 맞아!

그녀는 기겁을 하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두리번거렸다. 기괴한 목소리는 베란다 쪽에서 흘러나왔다.

, 누구야?

영지의 떨리는 목소리에 스르륵, 베란다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냉큼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나야, . 짜장면 좋아하는 오빠.

그는 얼굴 가득한 입을 화들짝 벌려 웃으며 서서히 영지에게 다가왔다.

, 누구신데 여기에..., 저리 가세요!

사색이 된 영지가 소파 뒤로 뒷걸음질 치며 남자에게 소리쳤다.

이거 왜 이래, 이제 와서. 내가 짜장면 좋아한다고 그렇게 행복해하고,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했잖아?

뭐라고? 그건 우리 오빠한테...어쨌든 당장 나가! 안 나가면 무단 침입죄로 신고할 거야!

섭섭하게 왜 이래? 네 달콤한 옷장 속에 산 게 벌써 몇 달짼데...내가 그 놈보다 먼저라고!

낯선 남자는 두꺼운 손으로 거칠게 그녀의 목을 휘어잡았다.

그런 놈은 잊으라고. 진짜 남자가 침대에서 어떤지, 이제부터 내가 알려줄 테니. 흐흐흐.

영지를 끌어안은 그의 입에서 짙게 밴 짜장면 냄새가 진동했다. 영지의 비명에도 아랑곳 않은 채 그녀를 끌고 방안으로 들어가는 그를 뒤로하고 띵동, 영지의 핸드폰 알람이 울려댔다.

- 영지야, 앞으로 점심시간에는 가지 않을게. 기분 풀리면 전화해.

답을 기약할 수 없는 민수의 메시지가 밤새 혼자 깜빡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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