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공포 소설

화이트(FIGHT) 클럽

배작가 2021. 3. 2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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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와 유도 유단자인 성진은 오늘도 체육관을 기웃거린다. 20대에는 경호업체나 스턴트맨, 체육관 사범으로도 쉽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30대가 넘어서자 발붙일 곳이 별로 없었다.

진작 종합 격투기 선수라도 할 걸 그랬나?

싸움이라면 자신 있었던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격투기 체육관을 찾아갔지만 돌아온 건 비웃음뿐이었다.

할아버지 다 되서 무슨 격투기 선수를 한다고 그래, 바보 아냐?

마지막이라 생각한 체육관에서 또 퇴짜를 맞은 그가 구겨진 자존심에 쓸쓸히 돌아서는데 누군가, 그의 팔을 잡았다.

자네, 근성은 있어 보이는데 나랑 같이 일해보지 않겠나?

험상궂은 얼굴의 그는 한 때 유명 격투기 선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선수자격을 박탈당한, 김용팔이었다.

이름 날리고 싶은 욕심만 없다면 이 세계도 꽤 짭짤하거든.

그때부터 성진은 김용팔을 따라 지하 격투세계로 들어갔다. 김용팔의 설명대로라면, 성진의 역할은 간단했다. 돈 많은 사람들의 격투 상대가 되어 적절하게 경기를 이끌다 마지막 즈음 그럴듯하게 져주면 그만이었다.

가짜 경기를 하란 말입니까?

그럼 아마추어들하고 진검승부라도 하겠다는 건가? 어차피 격투경기란 게 다 그렇게 굴러간다고, 그거 몰라?

김용팔이 선수자격을 박탈당한 것도 경기 조작 때문이었다. 하지만 돈이 필요했던 성진은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어차피 정식 선수로 받아주는 데도 없고. 까짓 거 돈만 벌면 되지.

성진은 김용팔과 손을 잡고 일을 시작했고 제법 쏠쏠하게 돈이 들어왔다. 긴장감 있게 경기를 이끄는 덕에 그 바닥에서 소문까지 돌아 의사, 변호사, 유명 강사 등,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군들에게서 수많은 제의가 들어왔다. 물론 그들의 샌드백이 되어주는 일이지만 성진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약골들한테 맞아봐야 몸에 상처하나 안 난다고, 후후.

점점 경기가 많아지면서 성진은 김용팔과 더욱 가까워졌고 주위 동료들은 그에게 걱정의 말을 건넸다.

김용팔, 무서운 사람이야. 조심하라고!

하지만 성진은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점점 김용팔의 사람이 되어갔다.

히야, 오늘은 희한한 제안이 다 들어왔네.

체육관에 나와 몸을 풀고 있는 성진에게 김용팔이 흥분된 목소리로 다가왔다.

뭔데요?

링에서 말고 길거리에서 붙자는데, 리얼로. 파이트머니는 파격적으로 2. 횡재다, 횡재! 하하.

2천이요?

김용팔의 말에 깜짝 놀란 성진은 잠시 멈칫했다.

뭘 망설여? 2천이라는데!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길에서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누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저만 곤란해질 텐데.

걱정 마. 장소는 아주 은밀한 곳으로 섭외할 테니까. 넌 늘 그랬던 것처럼 좀 놀다가 맞고 끝내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오케이? 2천만 생각해, 2!

.

평소 성진이 받던 파이트머니는 5백 선이었다. 그마저도 이것저것 떼고 나면 실수령액은 3, 하지만 이번 2천은 고스란히 성진에게 들어온다고 했다.

근데...그런 거금을 내는 상대가 누구에요?

너도 알지? 요전에 한 번 붙어 봤으니까, 이종수 닥터.

, 이종수!

그는 유명 대학병원의 외과 대표 의사로 평소에는 매너가 좋았지만 경기에만 들어서면 영 진상인 사람이었다. 요전 경기에서도 할퀴고 물어뜯는 통에 성진도 처음으로 가벼운 부상을 입었었다.

왜 하기 싫어?

,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그래도 2천인데 부상쯤이야. 경기 끝나고 몇 주 동남아 가서 푹 쉬고 와야겠다.

나름의 싸움 스토리까지 준비한 성진은 밤 12, 그들이 정한 장소인 경기도의 한 굴다리 밑으로 갔다. 미리 도착한 이종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성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실전으로 합시다. 봐주기 없기요. 내가 다쳐도 절대 클레임 걸지 않겠습니다.

비장한 표정의 이종수는 가죽장갑을 끼며 성진을 도발했다. 성진이 슬쩍 김용팔의 눈치를 보자, 김용팔도 실제로 싸우라는 사인을 성진에게 보냈다.

좋습니다. 그럼 리얼로 하겠습니다.

드디어 싸움이 시작되었고 성진은 사정없이 이종수를 두들겨 팼다.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운데다 수많은 실전 경험이 있는 성진을 매일 수술만 하던 의사가 이길 수는 없었다.

이 새끼가!

이종수는 악다구니를 치며 성진에게 달려들었지만 매번 성진의 기술에 맥없이 쓰러졌고 어떠한 공격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는 품에서 수술용 메스를 꺼냈다.

후후, 이게 실전의 묘미라는 거지.

이 자식, 완전히 미쳤어!

이종수가 꺼내든 메스를 보고도 성진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아마추어가 휘두르는 손놀림쯤은 충분히 제어할 자신이 있었다.

이야!

메스를 든 이종수가 눈을 번뜩이며 매서운 기세로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성진은 이미 그의 몸놀림에 익숙해졌고 슬쩍 피한 후 그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허억!

광기로 날뛰던 이종수는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비겁하게 칼을 들어!

이쯤에선 성진도 열이 받아 쓰러져 있는 이종수를 사정없이 짓밟았고 그는 처참히 바닥에 나뒹굴었다.

분명히 클레임 안 건다 했지?

성진은 완전히 이종수를 녹다운 시킬 생각으로 있는 힘껏 발을 들어 사커킥을 시도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 성진의 눈앞을 스쳐, 관자놀이에 꽂혔다. 김용팔의 하이킥이었다. 한쪽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김용팔이 어느새 성진의 눈앞에 있었다. 싸움에 집중하느라 김용팔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던 성진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허어, ?!

당황한 성진이 쓰러진 채 김용팔을 돌아보는 사이, 이종수의 메스가 그의 허벅지로 파고들었다.

죽어, 이 새끼야!

흐어억, 뭐야, 이거!

당황스러운 상황에 놀란 성진이 고통을 억누르며 이종수를 노려보았다.

, 진짜 찌르는 거였어...

성진의 얼굴에 슬쩍, 두려움의 빛이 스치자 이를 놓칠 새라 이종수는 야수처럼 성진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 곳곳을 찌르고 또 찔렀다. 마치 광란의 파티를 즐기듯 해괴한 괴성을 지르며 메스를 휘젓는 이종수에게 김용팔이 다가왔다.

이제 그만하시죠, 선생님.

낮게 내리깔린 김용팔의 음성에 이종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현실을 직시했다.

이거 뭐야? 내가!

이종수는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고 김용팔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도 아니면서 뭘 그래? 걱정 마, 이번에도 뒤처리는 내가 할 테니까. 대신 이번엔 큰 거 두 장, 알지?

이종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지난번에 1억이었는데, 이번엔 왜 두 배야?

싫으면 의사 그만두고 감옥 가시던가!

김용팔이 험상궂은 인상을 구기며 협박하듯 말하자 이종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뒤처리 실력 깨끗한 거 알잖아. 저 녀석도 일부러 일가친척 하나 없는 놈 골라온 거니까, 후후.

잠시 후, 김용팔의 전화 한 통에 달려온 이들이 성진의 시신을 검은 봉고차에 실었다.

가서 잘 태워라. 재만 남으면 인증사진 보내고.

, 알겠습니다. 형님.

봉고차가 떠난 후 김용팔과 이종수는 경기 뒤풀이를 위해 룸살롱으로 향했다. 싸움이 있었던 굴다리 밑은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해졌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김용팔의 핸드폰에 인증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후후, 아주 예쁘게 태웠네. 자식들, 할수록 느는구나. 사람 태우는 일도.

김용팔은 인증사진을 이종수에게 내밀며 형체 하나 남지 않고 재가 된 성진의 사진을 보고 낄낄거렸다. 소리 없이 세상에서 사라진 네 명의 파이터, 그들의 뒤엔 악인 김용팔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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