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공포 소설

손 좀 빌려줄래?

배작가 2021. 4. 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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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화장실이 급할 때가 있다. 보통은 휴게소에 들려 해결하지만 명절이나 주말에는 막힌 도로 탓에 휴게소도 임시화장실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늘 그는 그런 상황에 처했다. 지방의 선산에서 벌초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같이 가기로 했던 동생 녀석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약속을 펑크 내고, 하루 종일 혼자서 쫄쫄 굶으며 벌초를 했다. 벌초 중엔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면서 무릎까지 까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마저 꽉꽉 막혀있었다.

, 젠장 화장실 가야 되는데…’

그것도 큰 놈이, 뱃속에서 요동을 치며 신호를 보냈다. 그는 참고, 또 참았지만 참는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어디 없나…’

그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 안에서 주위를 살폈다.

, 저기다!

그의 눈에 쏙 들어오는 장소가 보였다. 갓길 옆, 수풀이 우거진 곳인데 풀의 높이가 꽤 높아 다른 운전자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어 보였다. 그는 서둘러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날듯이 뛰어내려 수풀로 향했다. 급한 마음에 차키를 뽑을 여유도 없이, 번개처럼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잽싸게 수풀 안으로 들어갔다.

, 너무 경사가 져서 앉아 있기가 힘든데…’

막상 수풀 안으로 들어가니 땅이 기울어져 두 발을 딛고 자세를 잡을 수가 없었다.

급해 죽겠는데그냥 할까? 아니야, 이런 자세로는 구를 지도 몰라.

그는 점점 창백해지는 얼굴로 평평한 땅을 찾아 헤맸다. 기울어진 땅을 따라 한동안 내려가니 비로소 평지가 나왔다.

여기가 명당이네!

그는 잽싸게 쪼그리고 앉아 볼 일을 봤다. 이보다 더 이상 시원할 수는 없었다. 머릿속에서 맑은 공기방울이 터지는 듯 했다.

휴우, 이제야 살겠네.

그는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

, 어느 쪽이었지?

그가 왔던 방향, 고속도로 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이쪽 같은데…’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헤매었고 이리저리 짚이는 대로 가보았지만 길은 나오지 않았다. 어딜 가도 수풀뿐이었고 계속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만 같았다. 시간만 자꾸 흐르자 그는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차키도 꽂아두고 나왔는데…’

수풀에 들어온 지 한 시간은 족히 지난 듯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털썩 수풀에 주저앉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그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나려는데 스스슥, 수풀을 헤치고 사람이 나타났다. 농사를 짓다 왔는지 손에 흙이 묻은 낫을 든 할머니였다.

길 잃었어?

, 할머니.

내가 알려주랴?

, 감사합니다.

그는 마치 천사를 만난 기분이었다.

근데 자넨 나한테 뭘 해줄 거야?

? 아아, 뭐든 말씀하세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뚫어지게 쳐다보는 할머니를 보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길 알려주는 걸로 무슨 대가까지, 시골 인심 무섭네.

그는 지갑도 차에 두고 온 터라 마땅히 드릴게 없어 난감했다.

뭘 원하시는데요?

, 네 손!

?!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머니는 잘 갈린 낫을 그의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미친 할매 아냐, 어휴.

길 알려주시면 제 차에 가서 사례할게요.

아니, 돈 필요 없어! 네 손 빌려줘!

손을 빌려달라니요!

흐흐흐, 놀라긴. 실은, 우리 영감 무덤 좀 벌초해 주고 가. 그러면 길 알려줄게.

할머니, 제가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건 나중에요.

나중에 언제! 지금 해주고 가.

오늘따라 하는 일마다 꼬인다는 생각에 그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얼른 길이나 가르쳐 주세요. 이러다가 차 도둑맞겠어요!

그러지 말고 벌초 좀 해주고 가! 너 아까도 잘 했잖아.

떼쓰듯이 달려드는 할머니의 태도에 그의 짜증은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할머니가 왜 이래! 남 벌초한 건 어떻게 알아서!

이놈이, 할미가 부탁하는데 들은 척도 않고!

섬뜩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낫을 들이미는 할머니의 모습에 그는 소름이 돋았다.

할머니 정말, 왜 이러세요? 알려주기 싫으면 마세요!

그가 돌아서자 할머니가 양팔을 벌려 위협하듯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아직 못 가, 이 녀석. 벌초 해주고 가야지, 어딜 가!

그는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할머니를 피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수풀을 헤치고 얼마나 달렸을까, 자동차 바퀴의 시원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 저기!

소리가 나는 쪽 저 멀리 고속도로가 보였고 그는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자신의 차가 있는 갓길로 올라왔다.

휴우, 도대체 몇 시간을 허비한 거야? 족히 두 시간은…”

인상을 쓰며 차의 시계를 확인하는데 아까 차에서 내린 시간으로부터 딱 15분이 지나있었다.

하루 종일 이상한 날이네, .

그의 차는 다시 고속도로에 접어들었고 막히던 도로는 어느새 뻥 뚫려있었다.

그래, 이래야 고속도로지.

그가 점점 속도를 올리며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순간, 대형트럭 하나가 그의 앞에 마주보며 역주행으로 달려왔다.

저게 뭐야?!

끼이익! 콰광!

처참하게 부서진 그의 차에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그의 시신이 119 구조대에 의해 들려 나왔다. 시신 옆에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던 낫을 든 할머니가 오도카니 서있었다.

매번 벌초하는 게 기특해서 목숨 건져주려 했구만, 쯧쯧. 내가 네 증조할미야, 이놈아! 네가 오늘 벌초한 무덤 주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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