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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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이싱 모델 해미를 좋아합니다. 해미는 23세, 경력 1년의 모델로 코리아 스트리트 모터쇼에서 데뷔했지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저는 그녀에게 빠져들었습니다. 168에 50킬로,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특히 좋았어요. 게다가 얼굴까지 동안으로, 소녀의 얼굴에 여인의 몸매를 가진 셈입니다.
모든 게 완벽한 그녀 해미, 저와는 정반대입니다. 노안에 작고 어글리한 몸뚱이,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는 외모의 저는, 그래도 주제파악은 잘 하는지라 차마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그녀를 흠모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저도 유일하게 남들에게 인정받는 게 있습니다. 바로 저의 풍성하고 중저음인 목소리지요. 저의 목소리만 들은 사람들은 모두 저에게 찬사를 보냈지만 저의 외모를 본 순간, 모두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떠나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외모를 감추는 데 아주 능숙합니다. 특히 SNS에서 주로 활동하는 저로서는 실제 제 외모를 드러낼 일이 없습니다. 해미에게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해미씨와 관련해 이상한 점을 파악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는 겁니다. 맙소사, 3년 가까이 그녀를 흠모하고 모든 현장을 따라다니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했던 저로서는,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는 점에 심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떠올려보니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모델을 설 때에도 멘트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급기야 팬클럽 사이에선 그녀가 말을 못한다, 목소리가 너무 끔찍해서 그렇다, 극도의 신비주의 전략이다, 등의 괴소문을 퍼뜨리는 사람까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 전 결심했습니다. 기필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야 말겠다, 나의 중저음 보이스와 어우러지는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증명해 내고야 말겠다, 라고 말입니다.
“해미씨! 안녕하세요?”
나는 그녀의 모터쇼에 찾아갔습니다. 물론 전에도 자주 찾아갔지만 항상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는데 이번엔 꽁꽁 온몸을 감싼 채 기자들 틈에 끼어 그녀의 앞에 나섰습니다. 뭐라고 대답을 하겠지, 생각한 저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희미한 미소로 고개만 끄덕이고 저의 앞을 지나갔습니다.
‘젠장, 인사도 받아주지 않다니.’
화가 좀 났지만 그녀의 입장을 이해는 합니다.
‘내가 똥파리처럼 꼬여드는 기자인줄 알았을 거야. 기자는 늘, 귀찮은 존재니까.’
그래서 나는 좀 더 개인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 둘 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 기대와는 달리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도통 그녀는 혼자서 다니는 일이 없었지요. 늘 매니저나 인상 더러운 한 덩치 녀석과 다녔습니다. 그 녀석은 사람들의 시선이 뜸한 곳에서 그녀의 가는 허리를 부여잡고 키스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나는 키스 후 그녀가 녀석에게 귓속말을 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젠장, 말을 하긴 하네.’
묘한 배신감이 느껴지면서 반드시 내게도 말을 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한참을 고심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 그녀가 가장 편히 말을 할 장소는,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친구랑 전화도 하고, TV 보며 웃기도 하고, 집에서는 거리낌 없이 목소리를 내겠지.’
그 후로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그녀의 집을 알아냈습니다. 그 다음은 집 비밀번호를 알아내야 했는데 그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아파트 계단에서 며칠이고 대기했지만 그녀는 번번이 카드키를 사용해 집에 들어갔습니다.
‘할 수 없지. 이 방법밖에.’
결전의 그날 밤, 나는 그녀의 아파트 계단에서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온몸을 꽁꽁 감싼 채 새벽까지 기다린 덕에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딩동,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휘청거리며 내린 그녀가 술 냄새를 풍기며 현관 앞에 섰습니다.
‘술 취한 모습도 여신이구나!’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으려 고개를 흔들며 긴장감을 올렸습니다. 이제 타이밍만 잘 포착하면 그녀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띠리리링, 드디어 기회가 왔고 그녀의 집 현관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나는 잽싸게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커억!”
아차차, 힘 조절을 잘 못해, 너무 세게 그녀를 덮쳐버렸습니다. 놀란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현관 바닥에 널브러졌습니다. 이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그저 목소리만 듣고 가려던 거였는데, 그녀는 정신을 잃고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녀를 들쳐 업었습니다. 막상 그녀를 등에 업으니 하늘을 날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술 냄새와 향수 냄새가 적절히 섞여 몽롱하게 달뜨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치한이 아니라 단지 그녀 목소리를 들으러 왔기 때문에 그녀를 곱게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녀의 팬으로서 예의를 다하기 위해서지요.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며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을 다시 한 번 되뇌었습니다.
‘난, 그녀 목소리를 들으러 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의 두 다리와 옷매무새를 정돈해주었습니다.
“해미씨, 일어나 봐요. 해미씨.”
나는 그녀의 불그레한 뺨을 톡톡, 손으로 두들겼습니다.
“아…”
잠시 후, 그녀의 새빨간 입술에서 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드디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에 심장이 마구 요동쳤습니다. 오랜 잠에서 깬 사람처럼 그녀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흠칫, 놀란 그녀는 마구 소리를 질렀습니다.
“꺄아악!”
너무 자극적인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당황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나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서둘러 설명을 했습니다.
“겁먹지 말아요, 난 그저 당신 목소리를 들으러 온 거니까.”
어느 정도 그녀가 안정을 되찾자 나는 그녀의 입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녀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습니다.
“사, 살려주세요. 돈은 모두 드릴게요, 제발.”
맙소사, 돈이라니. 내가 돈이나 탐하는 사악한 강도로 보이나, 순간 나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돈 같은 건 필요 없다니까!”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지르자 그녀는 뚝뚝,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살려주세요.”
그녀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나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역시 외모 못지않게 목소리도 섹시했습니다. 살짝 웃도는 새된 목소리가 나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찰싹, 나도 모르게 나의 손이 그녀의 뺨에 내리꽂혔습니다. 좀 더 자극적인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울먹이며 애원하는 그 모습이, 그 목소리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내리꽂히는 손의 강도가 점점 세졌습니다.
“아아악!”
급기야 그녀의 입에서 거센 비명이 세어 나오자,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그녀의 소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히 나를 파고들었습니다. 아무도 듣지 못한 그녀의 소리, 나만의 소리 말입니다.
***
“왜 그랬어?”
얼마 후, 나는 경찰과 마주앉게 되었습니다. 해미씨를 살해한 범인으로 말입니다.
“목소리를 갖고 싶어서…”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목소리를 갖고 싶어서? 그래서 그 여자 목을 그렇게 난도질한 거야?”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형사님은 모르시죠? 나만의 소리를 갖는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계속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우하하하.’
그녀의 마지막 소리가 떠오릅니다. 세상 누구도 듣지 못한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가 영원히 나의 기억에서 울려 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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