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커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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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트럭 운전이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속도로 끝 차선에서 일정한 속도로 달려야 하니 지루하기 그지없는 고된 일이다. 그 날도 자꾸만 쏟아지는 하품에 그는 휴게소에 들렀다.
‘요즘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는데…’
줄여야지 하면서도 그는 어느새 커피를 손에 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습관이 무섭구나.’
찬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니 그제야 정신이 개운해 졌다.
‘서둘러야겠다, 이러다가 늦겠어.’
저녁 9시까지 물건을 전달해야 하는데 벌써 뉘엿뉘엿 해가 저물었다.
“주말이라 차가 밀릴 텐데…”
그는 근심을 하며 잰걸음으로 트럭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막 트럭에 올라타려는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아저씨, 죄송한데…저 좀 태워주시면 안 돼요?”
‘뭐야, 이 여자는?’
예쁘장한 얼굴에 옷도 잘 차려입은 여자는 누군가에게 맞았는지 눈두덩에 멍이 들어 있었다.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그는 귀찮은 듯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그냥...고속도로만 벗어나면 되요.”
‘고속도로만 벗어나면 된다고? 뭐하는 여자야...별 일이네.’
그는 뭔가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 정도 갈 건데 괜찮으면 타세요.”
어차피 지루하고 적적한 길이니 말동무라도 할 수 있어 나쁠 건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얼른 트럭에 올라탔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런 데서...”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하던 그가 30여분 만에 입을 열었다.
“그게…”
그녀는 쓸쓸한 표정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역시, 무슨 사연이 있나 보네.’
“어차피 저랑은 오늘 보면 못 볼 사인데, 그냥 시원하게 털어놔요. 나도 이런 저런 일 많이 겪어봐서 아는데, 입 밖으로 꺼내 놓으면 훨씬 편해지더라고요.”
여자는 배시시 웃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실은 남편이랑 휴게소에 들렸다가...버림받았어요.”
“네? 그게 무슨?”
“남편이랑 원래 사이가 안 좋거든요. 크게 다퉜는데 저만 두고 가버리더라고요.”
질문을 한 그가 민망할 정도로 여자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남편이란 놈이 악질이구만.’
“아무리 그래도 아내를 이렇게 버리고 가면 안 되죠.”
그는 그녀의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그였기에 누군가에게 버림받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알았다.
“주제넘은 얘기일지 몰라도, 그런 분하고는 안 사시는 게…”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아이도 있는데...후우.”
어쩌지도 못하는 입장이란 생각이 들자 그녀가 더 가엽게 느껴졌다.
“그런데 집은 어디에요? 청도에서 내려드리면 집까지 갈 수 있어요?”
“네, 거기서 고속버스 타면 한 시간밖에 안 걸려요.”
시간은 금방 흘러 어느새 트럭은 청도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덕분에 잘 왔어요.”
“뭘요, 근데 차비는 있어요?”
“네, 그 정도는 저도.”
여자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저런 고운 여자한테 손을 대?’
그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여자와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지루한 운행을 하던 그는 항상 들르던 양평 휴게소에 들려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다.
‘하아, 이런 날은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딱 인데…’
그는 입맛을 쩍 다시며 우산도 없이 트럭으로 달려갔다.
“기사님…!”
그가 막 트럭에 타려는데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당신은!”
며칠 전에 청도까지 태워주었던 그 여자였다.
“정말 죄송한데...오늘도 좀...”
“이거야 원.........초면도 아닌데, 그럽시다.”
그는 세찬 비를 맞고 서있는 여자를 얼른 트럭에 태웠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여기서…”
“오늘은 그냥...혼자 여기까지 왔어요.”
“네? 혼자서 왜...”
그는 그제야 옆에 앉은 여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전과는 달리 다 찢어진 옷에 이번엔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이번엔 더 심하게 맞았잖아? 남편이란 작자가 도대체 어떤 놈이야?’
그녀가 민망해할까, 그는 차마 물어볼 수도 없었다.
“오늘도 청도로 가는데 거기서 내려 드리면 되죠?”
“아니요, 죄송한데 오늘은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시면 안 될까요?”
“다른 곳이요?”
머릿속에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그녀에게 연민이 느껴져서 그는 고민에 잠겼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꼭 부탁드려요, 기사님.”
간절한 목소리로 여자가 부탁을 하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늦으면 사장이 난리칠 텐데…에라, 모르겠다.’
“그럽시다, 까짓 거. 어디로 갈까요?”
그는 여자가 원하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길을 따라 달리자 마진시에서 30분 정도 더 들어간 곳에 야산이 나왔다.
“아니, 이런 데에 무슨 볼 일이?”
그는 야산 아래 트럭을 세우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저를 따라오세요.”
“어딜 가는데요?”
“그냥 따라와 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눈물을 흘리는 여자의 얼굴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아...괜히 오지랖을 부렸나? 혹시 정신 이상한 여자 아니야?’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워낙에 여자의 눈물에 약하기도 하고, 이왕 온 김에 제대로 부탁을 들어주고 가자고 생각하며 그녀를 따라 야산에 올랐다. 하지만 여자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자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저 여자가 아니라 내가 미쳤지, 여길 왜 따라와서...휴우.’
그 와중에 그는 화장실까지 급해져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기 죄송한데...잠깐만.”
여자에게 양해를 구하자 그녀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큰 소나무 보이시죠? 그쪽으로 오세요.”
그는 수풀 속에서 볼 일을 본 후 그녀가 알려준 소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어, 어디 갔지?”
그녀가 말한 소나무 밑에 갔지만 여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봐요? 어디 있어요?”
그가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그녀는 흔적조차 없었다.
“젠장, 이상한 여자한테 당했군, 당했어. 으이그, 나야말로 정신 빠진 놈이지. 그나저나 사장한테는 뭐라고 핑계를 대냐. 어휴.”
후회를 하며 돌아서는데 뭔가 툭, 묵직한 것이 그의 발부리에 걸렸다.
“이게 뭐야?”
휘청했던 몸을 바로잡으며 유심히 그것의 정체를 살피던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아악!”
그것은 분명 사람의 손이었다.
***
그는 곧장 경찰에 신고를 했고 어느새 비가 그쳤을 즈음, 경찰들이 산에 도착했다.
“시신이네요, 여자 시신.”
경찰의 말에 다시 한 번 놀란 그는 바위 턱에 걸터앉아 놀란 심장을 가라앉혔다. 잠시 후 도착한 감식반이 흙 속에 파묻혀 있던 시신을 온전히 꺼내었고 유류품 중 하나인 핸드폰을 입수했다.
“근데, 시신을 어떻게 발견하게 된 겁니까?”
경찰의 질문에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믿기 힘드시겠지만…”
그의 설명에 경찰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는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의 얘기를 모두 받아 적은 경찰은 시신에서 나온 핸드폰 화면을 열어 그에게 들이밀었다.
“혹시 이 여자, 아는 사람입니까?”
“허억! 그 여자예요! 내가 얘기한 그 여자!”
핸드폰 화면 속에는 그를 이곳으로 이끈 여자가 어린 아이와 함께 환히 웃고 있었다.
한 달 후, 그가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한 달 째 오리무중이던 여성 암매장 사건의 범인이 잡혔습니다. 범인은 평소에도 가정 폭력을 일삼던 피해자의 남편으로…”
뉴스를 들으며 그는 피식 웃었다.
‘내가 그랬잖아, 범인은 남편이라고…어쨌거나 이제 저 세상 가서 편히 쉬십시오. 더 이상 예쁜 얼굴 다치지 말고...’
늘 그렇듯 혼자뿐인 트럭에서 그는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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