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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동남아의 섬에서 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나였다. 아버지는 가족끼리 조용히 지내자고 했지만 이제껏 가족여행 한번 못 가본 우리 가족에게 장남으로서 그럴듯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젊어서 30여년을 외항선원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숱하게 해외를 돌아다녔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나는 배는 안 탄다.”
아버지는 출발하기 전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젊은 시절 워낙 배를 많이 타서 배라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이유였지만 아버지가 없을 때, 어머니는 슬쩍 내게 귀띔을 해주셨다.
“아무래도 그 일 때문에 배타는 걸 두려워하시는 것 같아.”
아버지의 나이 50이 갓 넘었을 때, 아버지는 선원으로서의 은퇴를 준비하며 마지막 항해길에 올랐다. 하지만 인도양을 가로지르던 배에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해적을 만났고 그로인해 열 명 남짓의 동료 대부분이 죽게 되었다. 아버지를 포함해 세 명이 살아남았지만, 나머지 두 분은 이후에도 항해를 계속하다 사고를 당해 모두 저세상으로 떠났다. 은퇴 이후 한 번도 배를 탄 적이 없는 아버지는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했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인도네시아 본섬까지는 비행기 타고 가구요. 거기에서 크레이크 섬까지는 경비행기 타고 들어갈 거예요.”
“음, 그렇다면야 뭐, 내 생일이니 내가 빠져서야 안 되겠지.”
우리는 첫 가족여행이니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여행길에 오른 가족 구성은 부모님 두 분과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남동생 부부, 그리고 올해 여섯 살인 다울이를 포함한 나의 가족까지 총 일곱 명이었다.
“아버지, 어떠세요? 막상 오니까 좋으시죠?”
오랜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리조트에 도착한 후, 아버지와 난 테라스에 마주앉았다.
“나야 뭐 안 가본 데가 별로 없으니까, 네 엄마가 좋을 게야.”
아버지는 지그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 생일 축하드려요!”
적당한 타이밍에 다울이가 준비한 케이크를 가지고 왔다.
“우리 손자가 이렇게 기특하네.”
아버지는 감동어린 표정으로 케이크를 잘랐고 우리 일행 모두 그림같이 펼쳐진 자연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즐거웠던 닷새의 일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타고 왔던 경비행기 회사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었다.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경영압박을 받던 회사 대표가 남은 회사돈을 들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쩌지…나 내일 서울에서 중요한 계약이 있는데…”
“내일 저는 사장단 회의 브리핑 있는데…”
모두들 이런저런 계획이 있는데 갈 길이 막막하니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아버지, 지금 경비행기는 없고...배는 가능하다는데요.”
“배는 절대 안 돼!”
아버지는 단호하게 잘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다른 회사의 경비행기를 이용하려면 족히 3일 이상 기다려야 했고, 거기다 다울이 마저 그날 밤부터 앓기 시작했다. 설사에 고열까지 더해지자 다울이의 몸은 자꾸만 축 늘어져갔다.
“아버지, 이러다가 다울이 큰 일 나겠어요. 여기는 섬이 작아서 병원도 없다고요.”
아버지는 두 눈을 감은 채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크흠.”
우리는 호텔의 도움을 받아 본섬으로 나가는 배편을 마련했다. 같은 호텔에 묵었던 또 다른 가족 네 명을 태운 배는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흐린 하늘 아래 출항한 우리는 일정이 틀어진데다 다울이까지 아프자 모두 굳은 얼굴이었다.
“화장실 좀 다녀오마.”
내내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던 아버지가 자리를 뜨고 선실 내에 앉아있던 우리 가족은 회색빛으로 일렁이는 파도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배 뒤편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악!”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맞닥뜨렸다.
“아버지!”
어디서 구했는지 큰 도끼를 손에 든 아버지가 배 뒤편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다른 가족을 한 명, 한 명 내리찍고 있었다. 순식간에 네 명을 쓰러뜨린 아버지는 맹렬히 선실 내로 달려왔다.
‘아버지가...왜...’
선실로 들어온 아버지는 보조항해사 두 명을 차례로 내리찍더니 휑한 눈빛으로 우리 가족을 바라보았다.
“여보...허억!”
“아버님...아아악!”
선실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어머니부터 다울이까지 한 명씩 어버지의 도끼질에 무참히 난도되었다. 아내와 다울이 조차도 구해내지 못한 나는 홀로 살아남아 가까스로 선실을 빠져나왔다.
“이제, 네 놈 차례다!”
나를 쫓으며 아버지는 번뜩이는 눈으로 소리쳤다.
“아버지…도대체…왜 이러세요…도대체…왜…”
나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눈으로 아버지를 마주했다.
“흐흐, 내가 아직도 네 애비로 보이냐?”
“뭐, 뭐라구요?”
“네 애비는 20년 전, 선상반란을 일으켜 나와 일행들을 처참히 죽였지. 그리고 해적에게 당한 것처럼 꾸몄어.
피비린내 나는 그 한을 품고 난 바다를 떠다니며 놈들을 기다렸지. 바다로 나온 다른 놈들은 내가 모두 파멸시켰는데, 네 애비놈은 잘도 피해 다니더군.
그런데 드디어...네 애비도 배를 타고 말았구나. 내가 저 깊은 바다 속을 부유하며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렸는지 아느냐?”
아버지, 아니 아버지의 모습을 빌린 그놈은 나를 향해 번쩍, 도끼를 들었다.
‘아…이게 정말 끝이란 말인가...’
그 순간, 용케도 몸을 피신해 있던 선장이 뒤에서 아버지를 내리쳤고 그제야 끔찍했던 살육의 시간이 끝을 맺었다. 한국으로 돌아 온 나는 혼자가 되었다. 범죄인으로 송환된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경찰서로 직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치소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의 주머니에서는 유서가 담긴 작은 쪽지 하나가 발견되었다.
“이 애비의 죗값을 결국 이렇게 치르고 말았구나. 놈이 내 안에 들어와 우리 가족을 노릴 줄은...다 내 탓이다. 미안하다, 아들아.”
부모와 형제, 아내와 자식을 모두 잃은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뜨거운 돌덩이를 삼킨 것 마냥 견딜 수 없는 울분에 나는 매일 밤 한강 다리에 선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검은 빛깔의 강이 빨려들 듯한 당김으로 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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