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

감옥행성의 범죄자들

배작가 2021. 2. 2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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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형 우주선의 두터운 문이 열리자 알파330 행성의 교도관들이 내부로 진입했다.

“이들은 흉악범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

네 명의 교도관 중 리더인 알렉스가 레이저건을 조준한 채 맨 앞에 나섰다. 우주선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던 그가 오른 손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리며 대원들의 동작을 중지시켰다.

“잠깐! 이게 다 뭐지?!”

10년 넘게 이 일을 해 온 알렉스는 처음 겪는 놀라운 상황에 굳은 듯 멈춰 섰다.

 

끝도 없는 우주 공간에 거대 우주선 하나가 유유히 항해하고 있다. 엑스 스페이스쉽이라는 이름의 죄수 수송선이다. 지구뿐 아니라 인간이 식민지로 만들어 놓은 태양계의 모든 범죄자들은 이 수송선을 가장 두려워했다. 정기적으로 지구에서 출발하는 죄수 수송선은 천 명 이상의 범죄자를 싣고 태양계를 지나 은하로 나간다. 그리고 각각의 죄수들을 그들이 가야 할 감옥 행성으로 보낸다.

 

감옥 행성은 총 세 개로,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곳이 알파330이다. 지구에서 100광년 떨어져 있어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알파330 행성은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종착역이다. 알파330 외의 두 감옥 행성까지는 엑스 스페이스쉽이 직접 수송하지만 100광년 떨어진 알파330까지는 따로 분리된 소형 캡슐 우주선을 이용해 죄수를 수송한다. 이번에는 단 세 명의 흉악범만이 알파330행 캡슐 우주선에 탑승했고 오랜 수송시간 때문에 모두 동면베드에 들어갔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검은 우주를 회색의 캡슐 우주선이 먼지처럼 지나고 있다. 그 안의 메인 선실에는 세 개의 동면베드가 나란히 배치되었고 그 앞에 경비로봇 코리가 대기 중이다. 그 외 식량창고나 식당 등은 사용할 사람이 없으므로 활성화되지 않았다. 캡슐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했지만 목적지인 알파330에는 100년 후에나 도착할 예정이다. 예정된 경로대로 유유히 우주공간을 지나던 중, 캡슐 우주선 내부의 한 곳에서 적막을 깨는 소리가 감지되었다. 바스락 바스락, 세 개의 동면베드 중 하나에서 존재할 수 없는 소리가 반복되었다. 소리에 반응한 코리는 자동으로 시스템에 로그인되었다.

“경비 로봇, 코리,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경비 업무를 시작합니다.”

코리는 동면베드에서 꿈틀대며 일어나는 제임스를 제지했다.

“제임스, 당신은 특급살인죄로 알파330으로 이송중입니다. 그대로 동면을 명합니다.”

코리의 말에 아랑곳 않고, 제임스는 베드에서 일어나 창 너머 펼쳐진 암흑 속 우주를 바라보았다.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제임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코리에게 물었다.

“더 움직이면 죄수 이송법 3214조 3항에 의거 사살하겠습니다.”

“사살? 웃기고 있네!”

제임스는 순식간에 몸을 날려 코리가 든 레이저 건을 빼앗았다. 코리는 위협 상황이 되자 입력된 대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내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는 로봇은 골칫거리일 뿐이지.”

제임스는 코리의 내부 시스템을 조작해 새로운 명령체계로 재구성했다. 그는 범죄자로 전락하기 전 유능한 로봇 엔지니어였다.

‘후후, 이제부터 내 말만 듣겠군.’

“이봐, 이제부터 내가, ‘코리! 제임스가 명한다.’라고 말할 때만 움직인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제임스님.”

“좋았어. 코리 제임스가 명한다. 내가 왜 깨어난 거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우주 자기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기장 폭풍 말이야?”

“네, 제임스님.”

제임스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알파330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99년 남았습니다.”

“뭐라고?”

코리의 말에 제임스는 난감했다.

“이거 감옥보다 나을 게 없잖아. 우주선에서 늙어 죽게 생겼네.”

제임스는 코리를 오프라인 상태로 전환시킨 후 구석에 옮겨놓았다.

 

“어찌되었든 자유다!”

제임스는 캡슐 우주선에 기본적으로 장착된 식량창고와 식당을 활성화해 마음껏 혼자만의 자유를 즐겼다. 하지만 오랜만의 자유에 들떠있던 것도 잠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곧 지루함이 밀려왔다. 코리와의 대화도 재미없고 살아있는 인간이 그리워졌다.

“이걸 어떻게 한다?”

제임스는 자기장 폭풍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동면 중인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흠, 아무래도 여자가 낫겠지.”

그는 매력적인 금발 여자의 동면베드 전선을 잘라내어 그녀를 동면에서 깨웠다. 그녀의 죄수 네임카드에는 ‘루시’라고 적혀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

동면에서 깨어난 루시는 제임스에게 상황을 물었고 그는 자신이 그녀를 깨우기 위해 동면베드를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숨긴 채, 자기장 폭풍의 영향으로 인한 오류라고 둘러댔다.

“흠, 알파330 행성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푸하하, 100광년이나 떨어진 감옥 행성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당신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풋, 그 정도 계획도 없이 실려 온 당신이 더 한심하지. 거기엔 오랫동안 탈옥을 준비해온 사람들이 있다고, 난 그들과 합류해서 다시 태양계로 돌아올 계획이었어.”

제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까지 알파330에서 탈옥한 죄수는 한 명도 없었어. 적어도 1000년 동안은 말이야.”

“내가 최초가 될 수도 있지. 그래서 난 꼭 알파330에 가야 해. 이 작은 우주선에서 평생을 보낼 수는 없다고.”

루시는 다시 동면베드로 들어가기 위해 이리저리 기계를 확인했지만 도통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저기, 저 로봇은 언제부터 저렇게 있던 거지?”

루시는 오프라인 상태로 구석에 있는 코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저거 망가진 로봇이야. 내가 깨어났을 때부터 저러고 있었어. 저 녀석도 자기장 폭풍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일상을 공유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다. 루시로서는 원치 않던 상황이었지만 깨어있는 인간이라고는 둘 뿐이라 곧 서로에게 적응해갔다. 자신에게 제법 살갑게 구는 루시를 보며 제임스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루시 또한 제임스와의 관계를 거부하지 않았다.

‘알파330 감옥에 가는 것보다 루시와 여기서 평생을 보내는 게 더 낫겠어.’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짐에도 루시는 틈만 나면 자신의 동면베드를 고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절대 고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제임스는 곧 그녀가 포기할거라 생각하며 느긋하게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길 기다렸다.

“이럴 수가!”

제임스와 가깝게 지내면서도 줄곧 미심쩍은 생각을 품고 있던 루시는 제임스가 잠든 틈을 타 우주선 내부, 자동 저장된 비디오 데이터를 확인하고는 제임스가 잠든 침실로 달려갔다.

“제임스 이 자식, 일부러 나를.”

자신의 몸뚱이 위에 올라탄 루시를 바라보며 제임스는 느긋하게 웃었다.

“다 널 사랑했기 때문이야.”

“날 너무 우습게 봤군, 후회할 줄도 모르고.”

희대의 살인마 루시는 웃고 있는 제임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손에 쥔 쇠뭉치를 그의 머리통에 내리쳤다.

“허억!”

돌발적인 공격에 반항할 겨를도 없이 제임스는 단발의 비명을 내질렀다. 손을 털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루시의 등 뒤로 제임스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코리, 제임스가 명한다. 루시를 죽...여...”

루시는 숨이 꺼져가는 제임스의 마지막 신음이라 생각하며 침실을 나왔다.

“이제 어쩌지?”

흥분한 루시의 눈에 유일하게 정상 작동하는 마지막 동면베드가 들어왔다.

“할 수 없지.”

루시는 기계를 조작해 마지막 동면베드를 열고는 잠들어있던 남자 죄수를 꺼내 단숨에 숨통을 끊었다.

“평생을 우주선 안에서 보낼 수는 없다고!”

마지막 동면베드를 다시 세팅하고 안으로 들어간 루시는 슬라이드 캡을 닫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코리, 제임스님의 명을 받았습니다!”

루시가 잠든 지 10분 후, 제임스의 명령어를 인식한 코리가 루시의 동면베드 앞으로 다가왔다. 코리가 빠르게 코드를 입력하고 동면베드 캡을 열자 부스스, 루시가 눈을 떴다.

“어, 알파330에 도착한 건가?”

루시는 희망에 찬 얼굴로 일어났다.

“알파330까지는 99년 남았습니다. 코리는 제임스님의 명을 수행합니다.”

“뭐, 뭐라고?”

번쩍, 코리의 레이저 건이 발사되자 가슴에 구멍이 뚫린 루시는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알파330 행성의 교도관, 알렉스는 100년이 걸려 도착한 캡슐에 생존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여기는 알렉스, 알파 본부 나와라, 오버. 모든 상황 클리어. 바이러스 없고 생명체 없다. 자기장 폭풍에 의한 정신 착란으로 폭동이 있었던 것 같다. 죄수 장례 절차대로 우주 소각하겠다.”

뼈만 남은 세 구의 시신이 간이 캡슐에 담겨 우주로 쏘아졌다. 우주 쓰레기가 된 캡슐은 끝도 없는 우주 공간을 표류하며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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