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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래부터 이렇게 보약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고 그 때문에 잔병치례가 심했던 나를 위해 어머니는 산삼과 각종 즙은 물론이고 관절에 좋다는 지네, 활력에 좋다는 뱀까지 마구잡이로 먹이곤 했다. 그러다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도 나는 보양식과 보약을 즐겨 찾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래도 백사 좀 구해서 달여 먹어야겠어.”
잠자리에 들면서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아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 건강한데 왜 자꾸 그런 걸 먹어.”
“몸이 허해서 그러지. 그래야 당신하고도 더 뜨겁게 지낼 수 있고, 하하”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요즘도 뱀, 자라, 산삼, 희귀 약초 등을 자주 섭취한다. 한 번은 독초를 잘못 먹어 병원 신세를 진적도 있지만 그저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당신 요즘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이것 좀 먹어 봐.”
부쩍 아내의 얼굴이 창백해 보인 날, 나는 한약방에서 사 온 보약을 아내에게 권했다.
“아니야, 난 그런 거 먹으면 오히려 병 나. 당신이나 실컷 드세요.”
아내는 손 사레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며칠 후, 아내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알 수 없는 면역력 저하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저희로서도 아직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지금 백혈구 수치와 절대 호중구 수치가 기준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더 떨어지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내는 호흡기를 한 채 중환자실 무균실로 들어갔다.
“이런 경우는 저희도 처음이라...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내가 입원한지 2주가 지나고 좀처럼 차도가 없자 나는 절망감에 괴로웠다. 이제껏 내 건강만 챙긴답시고 그 좋은 것들을 해 먹을 동안 한 번도 아내를 챙기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때 쯤, 아내의 소식을 들은 친구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기운이 쇠할 때는 뭔가를 먹어야하는데…”
아버지에게 건강원을 물려받아 운영 중인 녀석은 나의 어머니 때부터 단골이었던 집이다.
“그러게, 근데 이럴 때 먹을 수 있는 보양식이 있나?”
“그러게, 중환자실에 있을 정도면...”
각종 보양식을 만드는 녀석이었지만 선뜻 떠오르는 것이 없는 듯 했다. 며칠 후, 녀석에게 술 한 잔을 하자는 전화가 왔다. 이 상황에 술을 마시자는 게 이상했지만 뭔가 할 말이 있는가 싶어 난 녀석을 만났다.
“하나, 방법이 있긴 한데…면역력 떨어진 사람한테 직방인 게…”
“오, 그래? 그건 뭔데?”
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사람처럼 눈이 커졌다.
“그게…여기서 말하기는 좀 그렇고…”
녀석은 주위를 살피다 내게 바싹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진짜? 그걸 먹는다고?”
“못 먹을 것도 없지, 사람을 살리는데. 근데, 돈이 좀 들어.”
“그렇겠지. 보통 돈은 아니겠지.”
다행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었고 그걸 정리하면 녀석이 제시한 1억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물건이 있겠어?”
며칠 간 고민을 하던 나는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넌지시 물었다.
“그럼, 생각해 보면 흔하잖아. 사람들이 잘 안 먹어서 그렇지.”
“그렇긴 한데, 그걸 팔 사람이…”
“야, 팔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얘기하지.”
“알았어. 일단 더 고민해 볼게.”
나는 고민에 싸인 채 여전히 차도 없이 누워있는 아내의 병실로 갔다.
“병원에서 더 할 일은 없습니다. 퇴원을 원하시면 하셔도 됩니다.”
병원에서도 포기한 아내의 몸은 여기저기 헐어 있었고 심지어 입안에서도 진물이 나오고 있었다. 면역력이 거의 제로 상태인 아내는 공기조차도 견뎌내질 못하는 듯했다.
“아니, 집에 가서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래도 병원에서…”
“죄송합니다.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호스피스 병원이라도…”
“호스피스요?”
나는 의사와 더 이상 할 말이 없음을 깨달았다. 종잇장처럼 가벼워진 아내를 집으로 옮기며 나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그거, 부탁한다.”
다음 날, 녀석은 정성스레 즙을 내린 그것을 가져왔다.
“효과가 있을 거야.”
나는 그것을 받아 정성스레 아내에게 먹였고 아내는 그저 눈만 껌뻑일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나는 며칠간 계속 그것을 먹였지만, 결국 아내는 일주일을 못 버티고 하늘로 떠나갔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며칠 후,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김영호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 누구시죠?”
“경찰입니다.”
‘경찰이라고! 후후, 결국 그게 걸린 모양이군.’
어차피 아내도 죽은 마당에 삶의 의욕도 없던 터라 난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얼마 후, 나는 법정에 섰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친구와 나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고, 판사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나도 모르게 헛헛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후후, 아내를 살리겠다고 멀쩡한 아기를 달여 먹였으니 사형을 받아도 부족하지.’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게 정말 아내를 위한 길이었을까,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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