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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그의 말은 악의 씨가 되었다.
스무 살이 넘고부터 그가 내뱉는 말은 거의 모두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좋은 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로 부정적인 말만, 시간의 간극이 있을 뿐 모두 이루어졌다.
“쟤 진짜 짜증나네, TV에 그만 좀 나오지.”
TV를 보다 무심코 내뱉은 말은 물론이고 친구와 다툼 끝에 내뱉은,
“너, 이 새끼! 죽어버려!”
라는 말까지 모두 이루어졌다.
아무리 길어도 한 달 안, 악담의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었고 곧 현실이 되었다.
이를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도저히 이 상태로 살 수가 없어 이후 그는 극도로 말수를 줄였고 누구를 만나든 마스크를 착용했다.
최대한 말을 줄이기 위한 그만의 궁여지책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에도 웬만하면 사람들과 대면이 적은 업무를 할 수 있는 회사를 골랐고 사람들은 그를 과묵한 남자로 불렀다.
그는 언제나 희미한 미소만 보이고 꼭 필요한 말만 골라 하며 자신의 악의 혀를 잠재웠다.
어느 정도 회사 생활에 적응을 하고 말로 인해 생기는 문제도 사그라졌을 때 쯤, 그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간 클럽에서 알게 된 선주는 얼굴도 예쁘고 활발한 성격이어서 과묵함이 습관이 된 그에게는 더없이 좋은 상대였다.
그녀가 작고 귀여운 입을 놀리며 그에게 안겨들면 그는 가끔 웃어주면 되었고 둘은 관계는 점점 발전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사귄 지 석 달쯤 되었을 때, 문제가 생겼다.
- 어제 너무 좋았음. 성공적.
우연히 낯선 남자로부터 온 카톡을 그녀의 폰에서 발견한 그는 그녀에게 따져 물었다.
“응, 그냥 아는 오빠야.”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넘겼고 이후에도 그와 비슷한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선주야, 너 남자들하고 너무 친한 거 아니야?”
“왜 그래, 촌스럽게. 그냥 아는 오빠나 동생들이야.”
그는 실랑이가 이어지면 자신의 악의 혀가 넘실거릴 것만 같아 그쯤에서 입을 다물며 참고 넘겼다.
하지만 횟수가 잦아들수록 그는 자꾸 의심이 생겨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몸이 안 좋다며 갑작스레 그녀가 약속을 취소한 날, 그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정말 그녀가 집에서 쉬고 있는지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녀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였다.
‘나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야, 바람기 많은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지.’
그는 그녀의 아파트 앞에 서서 불빛을 확인했다.
7층 그녀의 집에는 환히 불이 켜져 있었다.
‘정말 감기 몸살인가?’
그는 그제야 여자친구를 의심한 자신에게 자책감이 들었다.
‘많이 아픈 건가? 뭐라도 챙겨먹어야 할 텐데.’
그는 근처 죽 전문점에서 죽을 사들고 그녀의 아파트로 가 현관 벨을 눌렀다.
‘어, 왜 먹통이지? 망가졌나보네.’
그는 그녀의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 거실도, 실내도 고요했다.
‘뭐야, 집에 없나?’
두리번거리는 그의 눈으로 그녀의 구두 옆에 나란히 놓인 남자구두가 들어왔다.
‘젠장.’
그는 본능적으로 안방을 향해 다가가 벌컥, 문을 열었다.
“어머!”
“누구야, 너!”
침대 위에서 뒤엉킨 선주와 낯선 남자가 동시에 그를 향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못 볼 걸 봤군. 아니, 보지 말아야 할 걸 봤어.’
그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쓸쓸히 돌아섰고 그날부로 자연스레 그녀와 헤어졌다. 그런 광경까지 직접 목격했으니 계속 만날 수는 없었다.
한동안 배신과 이별의 아픔에 젖어있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니 생각했지만 좀처럼 상처는 가시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괴로웠다.
금단현상, 사람에게도 금단현상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미 그는 그녀에게 철저히 중독되어 있었고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은 늪에 빠질 뿐이었다.
결국 그는 헤어진 그녀를 찾아갔다.
다시 시작하자고, 너 없이는 못 살겠다고, 굴욕을 감내하며 매달렸다.
다행히 그녀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를 받아들였다.
그녀와 재결합한 그는 다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쉴 새 없는 재잘거림과 그녀만의 향취가 그를 안정시켰고 때로는 달뜨게도 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전의 상황이 고스란히 반복되어 그녀는 또다시 다른 남자를 만났고 그럴수록 그녀의 반응은 뻔뻔해져 갔다.
“어차피 내가 이럴 거 알면서 다시 만나자고 한 거잖아. 억울하면 오빠도 다른 여자 만나던가.”
“당당하구나, 너는.”
그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돌아섰다.
‘너 같은 건 다시 보지 않을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는 다시 늪에서 허덕였다.
‘도저히 선주 없이는 못 살겠어.’
그는 그녀를 잊기 위해 거리를 달리고 달리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 시간 경과 음악
한 달 후, 그의 옆에 앉아 재잘거리는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그는 그녀의 길고 매끄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우린 운명인가 봐. 이렇게 다시 만난 걸 보면.”
그녀가 휠체어를 밀고 있는 그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난 네가 어떤 상황이라도 사랑하니까. 우린 운명인 거지.”
“고마워, 오빠. 내가 앞으로 잘 할게. 오빠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지 몰랐어. 나 바보 같지?”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차디찬 병원 바닥에 떨어졌다.
‘빌어먹을 계집애, 두 다리 모두 부러져 버려!’
그녀와 헤어지고 문득 하늘을 바라보던 그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악담을 한 지 정확히 한 달, 지금 그녀는 그의 곁에 있다.
‘네가 고맙다니 다행이다.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게 너와 함께하는 유일한 길이었어.’
그가 악의 혀를 날름거린 바로 그 날,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그녀는 지금 감동에 겨운 눈으로 그를 올려보고 있다.
앞으로 영원히 그녀는 그의 곁에 머물 것이다.
그 또한 행복하고 사랑스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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