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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공포 소설

낯선 물건이 내 손에

by 배작가 2021.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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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은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본인의 이름보다는 준우 맘이라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준우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된 그녀의 아들이다. 오늘도 미경은 남편과 준우의 저녁거리 준비를 위해 동네 대형마트에 갔다.

뭐 할인하는 거 없나?

간단한 찬거리를 사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그녀의 눈에, 평소부터 사고 싶었던 청소기가 들어왔다. 마침 50퍼센트, 할인 중이었다.

한 번 질러? 남편 월급날이 25일이니까, ...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청소기를 사기로 결심했다.

3개월 무이자 되죠?

1년 넘게 눈독만 들이던 무선청소기를 드디어 손에 넣으니 그녀는 날아갈 듯 기뻤다. 집에 오자마자 상자에서 청소기를 꺼낸 그녀는 서둘러 조립을 시작했다.

이제 선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되네, 해방이다. 호호. , 그런데 이게 뭐지?

청소기를 조립하고 상자를 치우려는데 상자 속 깊숙이, 낯선 금속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검고 묵직한 물건, 그녀는 그것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뭐야? 이게?

손끝에서 느껴지는 차디찬 감촉, 그것을 꺼내든 그녀는 깜짝 놀랐다.

이거...총이잖아!

리볼버 권총 안 약실에는 여섯 개의 총알까지 가득 들어있었다.

도대체 청소기에 왜 이런 게 들어있어?

그녀는 고민에 잠겼다가 마트에 전화를 걸었다.

저기, 오늘 청소기 산 사람인데요. 혹시 청소기 안에 뭔가 들어가 있는 게...

고객님, 상품 안에 이물질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단순 변심만 아니면 교환, 환불 가능하십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 아닙니다. 됐어요.

순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전화를 끊고 말았다.

마트에서도 나 몰라라 하면 이래저래 나만 곤란해지는 거 아니야? 청소기 상자에 총이 들어있었다는 말을 누가 믿어주겠어?

그녀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이리저리 총을 만지며 고민에 휩싸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그녀에게 그것은 낯선 물건이 아니었다. 손에 든 채 한참을 매만지던 그녀는 총을 들어 앞을 겨누어보았다.

, 묵직하니...느낌은 괜찮네.

총을 손에 쥔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학교가 끝난 준우가 돌아올 시간, 그녀는 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 일단 팬트리 짐 사이 후미진 구석에 숨겨두었다. 혹시라도 총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거나 가족들에게라도 발각될까 근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꾸만 그것에 당기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한 주, 두 주가 지나면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자 점차 신경을 덜 쓰게 되면서도 왠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뒷배가 생기거나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만 같았다.

후후, 세상 두려울 게 없네.

평범하기 그지없던, 아니 오히려 수동적이리만치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조용히 따르기만 했던 그녀의 성격이 점점 적극적이고 대범해지기 시작했고 그러한 변화는 준우의 학부모 모임 자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신설학원은 위험부담이 있어서...우리 준우는 다니던 데 그냥 보낼게요. 선생님도 잘 챙겨주고 문제없는데 굳이 바꿀 필요 있나?

모임의 리더인 예지 엄마가 새로 생긴 학원을 소개하며 무언의 압력을 내비치자 미경이 발끈하며 받아쳤다. 그동안 아무도 예지 엄마에게 반기를 든 적이 없어 모두들 긴장된 표정이 되었다.

위험부담이라니, 자기? 내가 그 정도도 확인 안했을까봐.

예지 엄마의 말투가 싸늘해지자 브런치 카페에 모인 나머지 다섯 엄마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준우 맘, 미경은 그만두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매번 예지 따라 학원을 옮길 수는 없잖아요. 새로 적응하느라고 애들은 무슨 고생이야.

미경의 말에 예지 엄마의 얼굴이 부르르르 떨리며 붉어졌다.

어쨌든 난 이번엔 빼줘요, 준우 이제 적응해서 다닐 만 한데 또 옮기라고 못해, .

그렇긴 하네, 우리 연규도 요샌 군소리 없이 잘 다녀서 좋아. 여기도 예지엄마가 소개시켜 준 데인데 뭐.

그치? 우리 선주도 선생님 좋다고 난리야, 얘가 사춘기가 빨리 와서 괜히 말 잘못 꺼냈다가 안 다닌다 그러면 골치 아파.

미경이 나서자 다른 엄마들 모두 한 마디씩 거들며 그녀의 말에 동조했고 모임이 끝난 후, 미경의 카톡이 바쁘게 울려댔다.

아유, 오늘 아주 자기 때문에 속이 다 시원했어. 키득키득.

그동안 필요도 없는 물건 자꾸 사서 떠넘기는데 말도 못하고, 어휴. 나도 이제 자기처럼 할 말은 해야겠어.

한 마디씩 쏟아내는 말에 미경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후후. 별 거 아니네, 다들.

미경은 그 날 이후 학부모 모임에서 발언권이 세졌고 그동안 모임을 쥐고 흔들던 예지 엄마조차 쉽게 보지 못하는 상대가 되었다. 그녀의 자신감은 옷차림으로도 드러났다.

내가 그동안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는지 몰라?

대형 마트 할인 행사만 기다리던 그녀는 백화점에서도 거침없이 물건을 사들였다.

당신, 갑자기 무슨 옷을 이렇게 사?

남편이 볼 맨 소리를 해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다른 여자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뭐 싸구려만 입는 사람이야?

무섭게 달려드는 미경을 보며 남편은 더 이상 말을 않고 자리를 피했다.

저런 무능한 인간하고 결혼한 내가 한심하지.

그녀의 태도는 준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정하던 준우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무섭게 다그치기 일쑤였다.

준우 너, 점수가 이게 뭐야? 어휴, 다른 엄마들 보기 창피해서 정말.

준우는 고압적인 엄마의 모습에 점점 주눅이 들어갔다.

으이그,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 부러지질 못해.

그녀는 그럴수록 더 준우를 몰아쳤고 하루 종일 학원에, 주말 과외까지 시켰다.

그러다 애 잡겠어!

남편의 만류에도 그녀는 거칠 것이 없었다.

준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끄고 돈이나 벌어 오셔. 월급은 쥐꼬리만해가지고 유세는.

당신 정말!

자신감을 넘어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는 점점 거칠어졌고 한동안 그녀를 따르던 엄마들마저 하나씩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날 무시해?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준우를 다그쳤고 웬만큼 성적이 올라도 성에 차지 않았다.

올백 맞은 애가 셋이나 되던데 너 이게 뭐야, 이게 점수야? 내가 들인 돈이 얼만데!

밝기만 했던 준우의 어깨는 점점 쳐져갔고 얼굴엔 그늘이 가득했다. 평일도, 주말도 없이 공부에만 매달리던 준우는 급기야 심한 감기에 걸려 앓아누웠다.

엄마, 나 아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준우는 그녀의 품에 파고들며 울먹였다.

남자 녀석이 이렇게 나약해서야, 무슨 공부를 하겠어?

준우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답답한 기색이 역력했다.

곧 영어 선생님 오실거야, 숙제 못 한건 얘기해 놨으니까 수업이라도 들어.

싸늘하게 준우를 밀어낸 미경은 수업시간에 넣을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현관 벨소리에 문을 연 미경은 선생님을 맞으며 단단히 일렀다.

준우가 너무 물러서 걱정이에요. 선생님이 잘 다독여서 수업해 주세요.

, 어머님. 걱정 마세요.

준우의 방으로 향하는 그녀를 보며 미경이 주방에서 간식을 가지고 나오는데 영어 선생님이 주방으로 쫓아 나왔다.

어머님, 준우가 방에 없는데요.

? 그럴 리가 없는데.

미간이 일그러진 미경이 준우의 방에 들어서자 텅 빈 방안에서 커튼만 펄럭이고 있었다. 다시 나와 현관 준우의 신발을 확인한 미경은 집 이곳저곳을 확인하며 준우를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준우는 없었다.

꺄악, 준우야!

준우 방에서 들리는 여선생의 비명에 순간, 서늘한 기운을 느낀 미경은 준우의 방으로 달려갔다. 주저앉은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커튼 밖을 내려다본 미경은 7층 창문 아래, 저 멀리 보이는 준우를 발견하고는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 준우야!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선생의 손에는 작은 쪽지가 쥐어져 있었다.

- 엄마, 미안해.

그제야 정신이 든 미경은 미친 듯이 계단을 내려가 땅바닥에 널브러진 준우를 끌어안았지만 더 이상 준우는 엄마 품에 파고들지 못했다. 준우를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는 그녀의 귓가에 준우의 마지막 목소리가 감돌았다. 준우를 그렇게 떠나보내고 난 후, 남편으로부터 이혼 요구를 받은 그녀는 모든 삶의 의욕이 사라졌다.

이렇게 살 바에야, 나도 준우 따라 가야지.

그녀는 팬트리에 숨긴 총을 떠올리고는 그것을 꺼내 자신의 머리에 겨누었다.

준우야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엄마가 곧 따라갈게.

철컥,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긴 그녀는 잠시 후, 슬며시 눈을 떴다.

이거, 왜 이래?

당황한 그녀는 이리저리 총을 살피다 총신을 들여다보고는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으하하하하! 총신이 막힌 총이라니...내 인생이랑 똑같구나. 하하하하.

그날부터 거리 곳곳에는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기괴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준우야, 엄마가 미안해. 으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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