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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

여배우 실종사건

by 배작가 202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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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검도 도장에 나가 운동을 하는 강산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 누구시라고요?

친구이자 관장인 박영수가 눈치를 주었지만 강산은 개의치 않고 통화를 이어갔다.

여배우 김태연 씨 매니저라고요?

강산은 서둘러 도장 밖 복도로 나왔다. 전직 형사 안강산, 그는 생계를 위해 탐정 일에 뛰어들었고 남다른 그의 정보력과 질리도록 끈덕진 근성 덕에 고위급 인사나 부유층으로부터 비공식적 사건을 의뢰받곤 했다. 이번에도 유명 연예인이 관련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그는 상암동의 한 커피숍에서 여배우 김태연의 매니저와 마주앉았다. 잔뜩 상기된 얼굴의 매니저는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실은...태연이가 일주일째, 실종 상태입니다.

강산은 진지한 표정으로 소파 안에 파묻었던 몸을 곧추 세웠다.

현재 실종된 걸 알고 있는 사람은요?

저를 포함해서 고정스텝 세 명, 총괄매니저 그리고 사장님입니다.

꽤 많네요? 평소에 김태연씨 주변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나 연인은 있습니까?

글쎄요. 남자친구는 없고, 내성적이라 친구도 거의 없어요. 촬영할 때를 제외하곤 항상 집, 회사에, 주로 우리 스텝들하고만 친해요.

, TV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군요. 일단 지인들 연락처를 제게 넘기면 시작하겠습니다.

이진성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 온 강산은 라면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이진성이 카톡으로 보낸 연락처를 살폈다.

이거 봐서는 별 게 없네. 배우나 가수 친구도 없고, 알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네. 내참, 뭐가 있어야 조사를 할 거 아냐. 김태연 이 여자 도대체 뭐하고 사는 거야? 혹시 매니저가 파악 못하는 게 있는 거 아니야?

강산은 깨끗하기 그지없는 연락처가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

좋다, 어쩔 수 없지. 각개 격파다.

강산은 김태연 주변의 남자들부터 탐문하기로 했다. 예쁘고 잘 나가는 젊은 여배우니 남자들과의 친분관계가 없을 리 없다. 분명 매니저가 놓치고 있는 그녀의 사생활이 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정피디님, 요즘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격투신이 뭐, 거의 예술이던데요, 하하.

강산은 최근에 종영된 그녀의 주연 작품, 태양을 내 품에의 피디, 정호준을 찾아갔다. 새 드라마 준비로 정신이 없는 그는 의아한 얼굴로 강산을 맞았다.

누구신데, 저를...

의구심이 가득 찬 그의 눈앞에 강산은 예전 경찰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김태연 씨 잘 아시죠?

그럼요, 제 드라마 여주였으니까요.

친하시죠?

강산의 질문에 그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작품 할 때는 친하게 지냈죠. 지금은 거의 연락을 안 하지만. 근데 그 친구, 무슨 일 있습니까?

쉽사리 정보를 흘리지 않으려는 그의 깐깐한 태도에 강산은 그녀의 실종 사실을 알렸다.

실종, 일주일째입니다.

그래요? 근데 그 친구 원래 자주 사라지는데요. 드라마 찍을 때도 3, 4일씩 잠적하곤 했으니까요.

강산은 의외의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입니까? 김태연.

, 예쁘고 착하긴 한데...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죠.

매니저 말로는 내성적이라고 하던데?

하하, 내성적이라...글쎄요. 아무튼, 갈피를 잡기 힘든 친구였어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데 고수였죠.

들었다 놨다?

강산은 김태연과 정피디가 일로만 엮인 사이는 아니라고 직감했다. 연인은 아니더라도 남녀 간의 썸 정도는 오갔을 사이, 살짝 들뜬 그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흥분이 느껴졌다. 젊고 유능한 피디와 잘 나가는 여배우, 그럴듯한 조합이었다.

변덕도 부리고 그러던가요? 데이트 할 때?

능청스레 묻는 강산의 질문에 피디는 멋쩍게 웃었다.

? 아 뭐, 데이트까지는 아니고 몇 번 사적으로 만나기는 했는데...

그가 의외로 솔직하게 털어놓자 예감이 적중한 강산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산은 밖으로 나오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김태연 정체가 뭐야? 내성적인거야, 제멋대로인거야?

강산은 이번엔 회사 관계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진성 매니저를 포함해 총괄 매니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방수철 사장까지, 회사 소강당에 소집되었다.

제가 주변 인물을 탐문한 결과, 최근 김태연씨랑 접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열흘 이내에는 말이죠. 최근 드라마 끝난 후론 집과 기획사만 오갔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월요일 낮, 회사에 들렀다가 차를 두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CCTV에 찍힌 걸 끝으로, 행방이 묘연합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여기 모인 다섯 분 중에 범인이 있다는 겁니다.

강산의 말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건 비약이 심한 거 아닙니까? 유명 연예인이니까 길을 가다 납치되었을 수도 있고.

총괄매니저 윤덕수가 삐딱한 말투로 강산에게 반박했다.

얼굴이 알려진 유명 배우가 목격자 없이 대낮 거리에서 납치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 밖을 보세요.

강산은 통유리 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 도로를 가리켰다.

밖은 강남 한복판입니다. 그런데 김태연을 납치한다구요? 말도 안 됩니다. 게다가 김태연은 마스크나 선글라스도 하지 않은 채 편한 차림으로 나갔습니다. 이건 회사에서 가까운 어딘가에 잠시 다녀오려고 했다거나 가까운 지인의 차량으로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회사 인근 CCTV 어디에서도 그녀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강산의 말에 스텝과 사장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형사님 말씀은, 우리 중 누군가가 태연이를 납치했다는 말이네요?

눈두덩에 시퍼런 화장을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나영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안타깝지만요.

불쾌하네요.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부리던 스타일리스트 고지나의 얼굴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드러냈다.

불쾌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전에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한대로, 지금부터 일대일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거 완전 취조네.

총괄매니저 윤덕수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사장님부터 시작하시죠.

강산은 소강당 한 구석의 사무실로 사장과 함께 들어갔다.

제가 보기엔 우리 중에 그런 무서운 짓을 할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 이 중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사장님은 아닌 것 같고요.

왜죠?

사장님은 그 날 해외에 계셨잖아요.

, 그렇죠. 중국에 있다가 연락받고 바로 왔으니까요.

강산이 잠시 질문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 사장이 불쑥 말을 꺼냈다.

난 이진성이 좀 의심스러운데, 형사님은 어떠세요?

강산이 대답대신 눈을 치켜뜨며 이유를 물었다.

그 녀석 눈빛이 영, 늘 붙어 있어서 그런지 태연이를 여자친구처럼 대할 때가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서요?

, 머리를 쓰다듬는다던가, 다른 남자 만나는 걸 체크한다던가.

그게 매니저의 역할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내가 이쪽 밥 20년인데, 그런 느낌하고는 다른 뭔가가 있어요.

사장과의 면담이 끝나고 강산의 요구대로 매니저 이진성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장님이 절 의심하죠?

매니저는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진성 씨는 김태연이 사라진 날 어디에 계셨죠?

저는 그날 태연이 스케줄이 없어서 집에 있었습니다.

증명할 수 있나요?

강산의 눈이 이진성을 예리하게 훑었다.

글쎄...혼자 집에서 하루 종일 TV 보고 게임만 해서…”

증인은 없는 거네요? 이진성 씨가 집에 있었다는 걸 증명할?

아마도...그렇죠.

그럼, 이진성 씨는 이중에 누가 김태연을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나요?

강산의 질문에 매니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을 떼었다.

제 생각에는...윤덕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비밀인데...우리 사장님하고 총괄 매니저, 둘 다 건달 출신이거든요. 아무래도 범죄 경력이 있으니까, 전에 태연이를 구타한 적도 있고요.

이진성의 말에 강산의 눈이 반짝 빛났다.

무슨 이유로요?

태연이가 처음 들어왔을 때, 자기한테 술을 안 따른다고요. 요즘 같은 세상에, 어이없죠?

회사에서 윤덕수씨 입지가 그렇게 셉니까?

그렇기도 하고. 그 사람, 꼴통스러운 면이 있어서요.

강산은 다음 차례로 총괄매니저 윤덕수를 불렀다.

맞습니다. , 조폭 출신이요. 그게 문제가 됩니까?

그게 문제될 건 없습니다. 문제는, 그 날 본인이 어디 뭘 했는지 얘기를 안 한다는 거죠.

, 진짜. 그건 프라이버시라니까 그러시네.

얘기 안 하는 건 자유지만 계속 이러시면 유력한 용의자로 몰릴 수 있어요.

용의자? 후후, 오랜만에 들어보네.

비밀은 지켜드리겠습니다. 털어놔 보세요.

윤덕수는 한숨을 푹 내 쉬고 입을 열었다.

떨 했습니다.

? 대마초요? 어디서, 누구하고?

저기 밖에 있는 딸년들이랑.

그가 말한 딸년들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거 비밀입니다. 사장이 알면 우리 다 아웃이라고요.

김태연도 같이 한 적 있습니까?

걔는 절대 안 해요. 결벽증이 있나, 어찌나 비싸게 굴던지...

이로써 그들의 알리바이는 모두 확인되었다. 사장은 중국, 총괄매니저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는 그의 오피스텔에서 대마초, 매니저인 이진성은 집, 하지만 이진성의 알리바이를 확인해 줄 사람은 없었다. 강산은 다음날, 이진성의 집에 찾아갔다. 집에서 게임을 하던 그는 헤드폰을 쓴 채 강산을 맞았다.

혹시, 회사 사람들 대마초 하는 거 알고 있었습니까?

이진성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사장도 가끔 하는데요, . 안 하는 사람은 태연이랑 나밖에 없을 걸요.

그렇군요. 근데, 잠깐 집 좀 둘러봐도 될까요?

이진성은 거리낄 것 없다는 듯 집을 안내했고 강산은 집 곳곳을 살폈다.

실례지만 서랍도 열어보겠습니다.

지나치리만치 꼼꼼히 살피는 강산의 모습을 이진성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꽤 다양한 종류의 콘돔을 준비해 놓으셨네요.

강산은 안방 서랍 가득 들어찬 콘돔을 보고 물었다.

취미거든요, 특이하고 예쁜 콘돔 모으는 게.

독특하시네, 후후.

간간히 얘기를 나누면서도 강산의 눈은 서랍 구석구석의 틈까지 예리하게 살폈다.

, 이 사진은...이 사람, 스타일리스트 고지나씨 아닌가요?

강산은 서랍 깊은 곳에서 이진성과 고지나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두 분, 연인이었나요?

예전에.

이진성은 옅은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언제, 왜 헤어졌죠?

남녀 사이에 왜 가 어디 있습니까? 벌써 반 년 전에 끝난 사이입니다.

잔잔하던 이진성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솟아올랐다.

혹시, 핸드폰 좀 볼 수 있을까요?

핸드폰은 왜요?

이진성의 목소리가 점점 반항하듯 거칠어졌다.

알리바이가 증명되지 않은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당신이 결백하다는 걸 확인해야 저도 시간낭비 안 하고 수사를 진척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강산이 강한 어조로 말하자 이진성은 마지못해 핸드폰을 건넸다.

김태연하고 카톡을 많이 하셨네요?

, 업무상 어쩔 수 없잖아요.

강산은 카톡을 들여다보다가 태연이 그에게 보낸 메시지에 주목했다.

-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 우리 사이

혹시, 김태연과도 사귀었어요?

강산의 말에 이진성의 눈이 흔들렸다.

사장말대로 둘 사이에 뭔가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실은, 제가 태연이 보호자입니다.

강산이 미심쩍은 눈으로 이진성을 살피자 그는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태연이, 방송에서는 발랄하고 명랑한 캐릭터로 나오지만, 사실 고아원 출신입니다. 저와는 고아원에서 같이 자랐고 친 동생이나 마찬가지예요. 제가 매니저 일 하다가 태연이 데려온 거라고요.

, 그렇군요. 그런데 왜 김태연을 빼돌렸어요?

강산은 이번에도 능청스럽게 이진성을 떠 보았지만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보호자인데 왜 해를 가하겠어요? 가뜩이나 제 탓인 것만 같아 저도 괴롭다고요.

하지만 알리바이가 없잖아요.

그거야 집에만 있었으니까, !

이진성은 뭔가 떠오른 듯 부리나케 컴퓨터로 향했다.

그 날 게임한 거, 기록 있을 거예요.

그의 말대로 이진성은 그 날 그 시간에 집에서 게임 중이었다.

젠장.

강산은 온몸에 힘이 쭈욱 빠졌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왔고 그들 모두의 알리바이가 확인된 셈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범인이라는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더욱 디테일하게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산은 내부 직원들끼리 서로의 증인이 되어준 총괄매니저 윤덕수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의 오피스텔을 찾아갔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했는데도 허름하기 그지없는 오피스텔이었다.

여기는 왜 왔어요?

문신이 가득한 몸을 드러낸 윤덕수는 팬티 차림으로 문을 열었다. 반기지 않는 그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강산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놓인 여자 구두가 강산의 눈길을 끌었다.

나영아, 나와라. 형사님이 냄새 맡고 오셨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나영이 약에 취한 모습으로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방을 나왔다.

오늘은 둘 뿐이신가, 또 한 분은요?

지나는 요즘 잘 안 와요. 인형 만드느라 바쁘다나? 흐흐.

윤덕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 약기운에 취한 이나영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지나 걔, 인형 만드는 게 취미인데, 이번 인형은 좀 오래 걸린대요. 그거 완성하면 다시 올 거예요. 걔도 완전 중독이라. 크크.

쓸데없는 얘기하고 있어.

어느새 화장실에서 나온 윤덕수가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댔다. 하지만 강산의 머리에는 이미 인형이란 단어가 주는 불길한 직감이 꽂혀 들어갔다.

김태연이 사라진 날, 고지나도 여기 있었던 거 맞아요?

그럼요, 같이 대마초 피우다가, 또 다른 약 하다가...

주저리주저리 말하던 그녀는 뭔가 떠오른 듯 말을 멈추었다.

? 오빠, 우리 약 할 때 지나 같이 있었나?

내가 그걸 기억하겠니? 그날 낮술까지 마셨는데.

, 대마초 할 때까지는 같이 있었는데 그 뒤엔 기억이 안 나요. 오빠랑 전, 방에 들어가서 약 했거든요. 깼을 때 우리 둘 뿐이었어요.

고지나의 붕 뜬 알리바이에 강산은 다급히 그녀의 집으로 향했지만 고지나도, 그녀의 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대충 스토리가 떠오른 강산은 그녀의 전 연인이었던 매니저 이진성을 불러내 고지나에게 연락을 하도록 했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요?

영문도 모른 채 강산의 지시를 따르던 이진성은 전화 연결이 안 되자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며 강산에게 물었다. 잠시 후, 고지나에게서 답 문자가 왔다.

- 바다 보러 가는 중, 근데 웬 일로 나한테 관심이야?

누구와 가느냐고 물어봐요. 다정하게.

강산은 계속해서 이진성에게 지시했다.

- 갑자기 우리 놀이동산 갔던 게 생각나서.

- , 그년 없어지니까 이제야 내가 보여? 역시 그년 때문에 날 떠난 게 맞네.

-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근데 누구랑 바다 가는 거야? 남자친구 생겼어?

- 아니, 내 소중한 인형이랑.

고지나의 메시지에 강산은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행동을 시작한 고지나를 막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 어느 바다?

이진성의 물음에 더 이상 그녀는 답이 없었고 강산은 고민에 빠졌다.

인형을 가져간 거라면 아마 강릉으로 갔을 거예요. 강릉에 본가가 있는데 거기 인형 창고가 있거든요. 인형이 완성되면 거기가 옮기고는 했어요.

이진성의 말에 강산은 다급히 차를 출발했다.

근데, 인형하고 이 사건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보조석에 앉아 강릉 고지나의 집을 안내하는 이진성은 도무지 알 수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대답도 없이 운전에만 몰두한 강산은 경포대 근처, 그녀의 본가에 들이닥쳤다. 간결한 기와집의 툇마루에 멀뚱히 앉은 그녀는 안마당에 들어서는 이진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웬일이야?

머뭇거리는 이진성 뒤로 강산이 들어서자 그녀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가져온 인형 어디 있어?

무슨 말이에요?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김태연 말이야. 네가 가져온 인형, 김태연!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마당 한편 창고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산이 잽싸게 달려가 문을 열자 누더기 인형 같은 모습의 김태연이 꽁꽁 묶여 바닥에 누운 채 힘없이 파닥거리고 있었다.

, 이거. 폐기하려고 가져온 인형이에요.

매섭게 김태연을 노려보는 고지나의 눈에 번뜩, 광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저 더러운 애를 여신처럼 떠받들지만 쟤 장난 아니에요. 방탕하고, 남자 밝히고, 그러면서 착한 척, 연약한 척, 세상 사람들 모두 속는 거라고요. 진성 오빠도 마찬가지고.

거짓말 하지 마, 그럴 리 없어. 태연이는 내가 안다고.

김태연을 부둥켜안은 이진성이 원망의 눈빛으로 고지나를 바라보자 코웃음을 치는 그녀의 얼굴이 기괴하게 비틀어졌다.

, 오빠 같은 사람은 상상도 못할 걸? 태연이 취향이 얼마나 독특하고 엉큼한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만 만나고 다닌다고, 후후.

광기어린 웃음을 짓던 고지나는 이진성을 바라보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김태연을 무사히 서울로 데려온 강산은 기획사 사장의 요구대로 경찰에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사건을 마무리했다. 고지나를 감옥에 보내지 못하고 회사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끝낸 것에 강산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형사가 아닌 탐정의 한계여서 어쩔 수 없었다.

누님, 오늘은 소주 한 잔 주세요.

강산이 자주 찾는 호프집 여사장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일이야, 자기. 맥주만 마시는 사람이, 별일이네.

캬아, 소리를 내며 쓰디쓴 소주를 넘기던 강산은 틀어놓은 TV 화면에 눈을 돌렸다.

, 김태연이 예능에 나오네.

빠르게 몸을 회복한 김태연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발랄한 모습을 보였다.

젠장, 도대체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누굴 만난다는 거야?

강산은 고지나가 한 얘기를 되뇌며 휘휘, 고개를 내젓고는 툭, 차디찬 소주를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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