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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공포 소설

침대 밑에서

by 배작가 2021.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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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 릴리를 만난 건 3일 전, 필리핀 세부에서였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외로웠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넸다. 현지인인 그녀는 검은 피부에 동그란 눈, 그리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필리핀 여자였다. 그들은 말이 잘 통해 금방 친해졌고 같이 해변에서 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기며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급속도로 친해진 그들은 만난 지 3일째 되는 날, 지훈의 숙소에서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 지훈은 그녀를 위해 와인을 준비했다.

훈과 마시는 와인, 괜찮은 걸?

그치, 와인하고 릴리 당신도 잘 어울리고.

그들은 호텔 창으로 보이는 야자수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와인을 즐겼다. 붉게 물드는 석양을 바라보며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릴리가 불현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여기 뭔가 있는 것 같은데...뭔가 들리지 않아?

있긴 뭐가 있어, 난 잘 모르겠는데...

급기야 릴리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룸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지훈은 낭만적인 분위기가 깨진 것 같아 못마땅했다.

뭐야 릴리? 방 검사하는 우리 엄마 같아.

, 그런가? 미안.

릴리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지훈과 와인 잔을 기울였고 늦도록 분위기를 즐겼다.

두 사람은 다음 날도 아침부터 바쁜 하루를 함께했다. 호핑투어도 가고, 세부 시내 구경과 쇼 관람도 했다. 시내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맥주를 곁들인 그들은 전날보다 좀 늦게 호텔로 돌아왔다.

더운 나라에서 술 마시니까 금방 취하네. 릴리, 오늘 내 룸에서 같이 잘래?

지훈은 은근슬쩍 릴리에게 물었다.

어머, 뭐야? 나 꼬시는 거야?!

? 우리 서로 좋아하잖아? 만난 지도 벌써 3일도 넘었고. 하하.

, 알고 보니 뻔뻔한 변태구나!

애정 어린 장난을 치며 함께 룸에 들어간 두 사람은 가볍게 맥주를 마셨다. 지훈이 분위기를 잡으려 로맨틱한 음악을 트는데 또다시 릴리가 분위기를 깼다.

정말 이상하네, 분명히 뭔가 있는데, 소리가 들려.

릴리, 자꾸 무슨 소리가 난다 그래?

뾰로통해진 지훈의 말투에도 아랑곳 않고 릴리는 침대 밑으로 내려가 소리에 집중했다.

분명히 여긴 것 같은데, 여기 침대 밑!

릴리는 집요하게 핸드폰 플래시로 침대 밑을 살폈다.

, 저기 뭐가 있는 것 같아.

있긴 뭐가 있어? 침대 밑에 있어봐야 먼지뿐이겠지.

아니라니까!

릴리는 침대 밑으로 쑤욱, 손을 집어넣었다. 지훈은 그제야 릴리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며 침대에 엎드린 채 그녀를 지켜보았다.

, 뭐가 잡히는데? 물컹한 거.

물컹한 거? 정말 뭐가 있는 거야?

지훈은 릴리의 말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뭔데 그래?

그게 말이야, 사람 살 같기도 하고…”

, ? 사람 살?!

지훈은 직접 확인하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와 릴리 옆에 앉았다. 그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릴리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릴리 왜 그래?

지훈의 다급하게 물음에 대답도 없이 릴리는 비명을 질러댔다.

, 아아악!

릴리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지훈을 애절하게 바라보며 침대 밑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훈은 그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순식간에 침대 밑으로 사라졌다. 정신이 반쯤 나간 지훈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침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다.

어떻게 하지? 릴리는 어디로 간 거야?

손을 넣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녀처럼 빨려 들어갈 것 같아 두려웠던 지훈은 호텔방을 서성이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708호인데, 문제가 생겼어요.

지훈이 상황을 설명하자 잠시 뒤, 호텔 직원이 룸에 올라왔다.

고객님 말씀은 침대 밑에 뭐가 있다는 거죠?

호텔 제복을 입은 직원 두 명 중, 유독 얼굴이 검게 그을린 사람이 물었다.

, 맞아요. 제 친구가 침대 밑으로 끌려 들어갔어요.

직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지훈의 요구에 성실히 응했다.

알겠습니다. 체크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슈퍼더블베드를 위로 들어 올려 벽에 붙였다. 하지만 침대가 있던 자리는 그저 빈 공간이었고 먼지조차 없이 깨끗했다.

이럴 수가! 그럼 릴리는 어디로 사라진 거야?

더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호텔 직원이 당혹감에 빠진 지훈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아니요. 됐어요.

직원들이 나가고 지훈은 제자리로 돌려놓은 침대 귀퉁이에 앉았다.

내가 술이 취했나? 혹시 내가 깜빡 꿈을 꿨나? 아님, 내 머리가 어떻게 됐나?

그는 생생했던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며 릴리에게 전화를 해 봤지만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 로비와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본 후 허탈한 마음으로 객실로 돌아왔다.

, 어디 갔다 이제 와? 말도 없이 혼자 가기야?

태연하게 침대에 걸터앉은 릴리가 그를 바라보며 핀잔을 주었다.

릴리! 너 어떻게 된 거야? 걱정했잖아.

지훈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치이, 훈 너야 말로 어떻게 된 거야? 나만 혼자 두고, 얼마나 무서웠다고.

, 미안, 미안, 릴리.

지훈은 멀쩡한 릴리의 모습을 보자 한없이 기뻤고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릴리를 꼭 끌어안으며 지훈이 릴리에게 말했다.

릴리가 없어진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이렇게 무사해서 정말 기뻐.

, 나 혼자 있긴 너무 무서워. 나랑 같이 있어줄 거지?

그럼, 당연하지.

지훈은 품에 안겨 가늘게 떨고 있는 릴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내 손을 잡아줘.

지훈이 그녀의 작은 손을 꼭 잡자 릴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랑 같이 가는 거야.

릴리의 상기된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어디로 가는데?

어디로 가냐고? 바로 여기!!

허어억!

순식간에 지훈의 손을 끌어당긴 릴리는 깊은 어둠이 소용돌이치는 침대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발버둥치는 지훈을 삼켜버린 어둠은 다시 고요에 잠겼다.

다음 날 오후, 호텔 직원 둘이 객실에 들어섰다.

뭐야? 또 사라졌어? 어쩐지 그 남자 어제 하는 짓이 이상하더라.

그러게, 요즘 호텔비 안 내고 도망치는 손님들이 꽤 있네.

근데, 유독 708호만 그런 거 같지 않아?

그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고는 룸을 나섰다. 침대 밑 눅진한 어둠 속에서 지훈은 안간힘을 쓰며 빠져 나오려 했지만 가느다란 어둠의 사슬이 그의 몸을 빼곡하게 감싸 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그의 귀에 릴리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 우리 여기서 살자. 영원히. 호호호.

 

본 작품은 유튜브 소리나는 책방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youtu.be/lbhumY_td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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