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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공포 소설

안마에 중독된 여자들

by 배작가 2021.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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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불빛이 따스하게 실내를 덥히면 두 눈을 가린 손님이 침상에 올라 편한 자세로 엎드렸다. 잠시 후 검붉은 빛깔의 커다란 손이 손님의 등과 팔다리를 주물렀다. 자신의 뒤에서 등을 매만지는 존재가 무엇인지 손님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느덧 안마가 끝나고 손님들이 개운한 기분으로 잠이 들면 거대한 붉은 손은 악마의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애란은 어려서부터 안마를 곧잘 해서 아빠와 집안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손이 야무지다는 칭찬도 꽤나 받았다. 어려서는 용돈이 생기고 칭찬도 받는 기쁨에 어른들의 어깨를 주물렀지만 이제 자신도 그때의 부모님만큼 나이가 들자 다른 사람이 해주는 안마가 간절했다. 마흔이 넘어서자 팔다리가 쑤시고 어깨가 무거워 온통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여보, 나 어깨 좀 주물러주면 안 될까?

남편에게 요구를 해봤지만 퉁명스러운 답만 돌아왔다.

엄한 데 돈 쓰지 말고 안마기나 하나 사. 나도 좀 하게.

애란도 안마기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워낙 다양하고 성능 좋은 물건이 쏟아져 나와 직접 시연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기계로 하는 안마는 사람의 손길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적어도 그녀는 그 차이점을 확실히 느꼈다.

에휴, 사람 손이 최고인데.

아쉬운 대로 중학교 1학년인 아들 주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하지만 영 신통치가 않았다.

넌 손끝이 하필 아빠를 닮아서. 어휴, 답답해.

애꿎은 아들에게 불평을 하며 성에 차지 않는 안마를 받을 무렵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눈이 번뜩하는 정보를 물어온 건 맘모임에서 알게 된 정현이 엄마, 고미숙이었다. 아들 주원이 초등학생일 때는 자주 만나던 사이지만 아이들이 다른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연락이 뜸해진 터였다.

어머, 정현이 엄마가 웬일이야?

웬일이긴,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했지. 근데 자기 요즘도 어깨 아프고 그래?

여전해, 아무래도 주원이 낳고 산후조리를 잘 못했나봐.

나도 마찬가지야, 요즘 들어 팔다리도 쑤시고 머리도 지끈거려서 엄청 고생했어. 근데 거기 다녀오고부터 싹 좋아졌다.

거기? 거기가 어딘데?

호호,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내가 효과보자마자 딱 자기 생각나서 전화한 거야.

그래서, 거기가 대체 어디야?

#

다음날 애란은 고미숙의 차를 얻어 타고 안마의 장인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업소는 아니고 일반 가정집인데 그래도 내부는 그럴 듯하게 꾸며놨어. 겉에서 보기엔 그냥 주택이지만.

그래?

가정집이라는 말에 약간 거부감이 일긴 했지만 고미숙이 허튼 곳을 데려갈 리 없다고 애란은 굳게 믿었다.

애들끼리도 친구고 한데 설마 이상한 곳에 데려가겠어?

하지만 고미숙의 차가 산길로 접어들자 애란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여기는 너무 깊은 숲인데 이런 곳에 집이 있다고?

애란은 차창 밖에 보이는 어두컴컴한 숲과 잔뜩 습기를 머금은 이끼를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하필이면 이런 데서 장사를 해? 이상하네.

애란이 불안감을 안고 밖을 살피는 사이 어느새 고미숙의 차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내가 말한 데가 저기야! 어때? 근사하지?

고미숙이 가리킨 곳은 가운데에 마당을 품은 미음자형 기와집이었다. 전통가옥치고는 담을 높게 쌓아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기운이 너무 탁한 거 아니야? 그런 쪽으로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왠지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

애란의 말에 고미숙이 피식 웃었다.

에이그, 주원 엄마도 참, 별 걱정을 다 한다. 일단 들어가서 한 번 받아 봐. 그런 생각 싹 다 잊을 테니까.

그 정도야?

애란은 머쓱한 표정으로 안락원이라 적힌 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기와집으로 둘러싸인 마당에는 아무도 없고 툇마루 위에 덩그러니 나무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저 상자에 요금을 내면 돼. 그리고 저기, 안내사항 읽어보고.

툇마루 바깥 기둥에는 안락원에 온 손님이 지켜야 할 사항이라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여기 명칭이 안락원인가 보네?

애란은 툇마루에 붙어 벽보를 읽기 시작했다.

흐음, 원하는 만큼의 요금을 상자에 넣은 후 신발을 벗고 들어온다. 다른 사람의 신발이 있을 경우, 안에서 손님이 나올 때까지 대기한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마루로 올라와 왼쪽 방으로 들어간다. 지시사항에 따라 기다리면 곧 굳은 몸을 풀어주고 안 좋은 기운을 빼내는 작업이 진행된다.

앞 손님이 없는 걸 확인한 고미숙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 그녀는 세상 개운한 표정으로 나왔다.

그렇게 좋아?

, 날아갈 것 같다니까. , 잠깐 나 물 좀…”

그녀는 나오자마자 가져온 물 한통을 모두 비웠다.

무슨 물을 그렇게 많이 마셔? 그거 받으면 땀이 많이 나?

그렇지는 않은데 그냥 목이 좀 말라서. 자기도 얼른 들어가 봐.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거야.

못 미덥긴 했지만 내친김에 한 번은 받아보자 생각하며 애란은 마루에 올라 왼쪽 방으로 들어갔다.

, 방이 어둡네.

안에 들어가니 희미한 전등 하나만 깜빡일 뿐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다. 좋게 표현하면 따스한 느낌이지만 어딘지 음습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방 한편에는 그 음습한 기운을 고스란히 머금은 침상이 놓여있고 침상과 맞붙은 벽에는 전면 거울이 달려 있었다. 반대편 벽에는 다른 방과 연결된 낮은 장지문이 있었다. 애란이 중앙에 우두커니 서서 방안 이곳저곳을 살피는데 갑자기 탁 하고 불이 꺼졌다. 그리고 좀 전에 확인한 침상 반대쪽 장지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방안은 새카만 어둠에 휩싸여 애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침상 머리맡에 있는 안대로 눈을 가리십시오.

?

지시대로 따라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애란은 툇마루 기둥에 붙어있던 안내문을 떠올리며 더듬더듬 안대를 찾아 눈을 가렸다.

이제 온몸에 힘을 풀고 침상 위에 엎드리십시오.

애란은 남자가 시키는 대로 침상에 올라 엎드렸다. 안대를 했는데도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그녀가 자세를 취하자 다시 딸깍 전등 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진한 향냄새가 코를 감쌌다.

아로마 향인가? 향기가 좋네.

곧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로 다가와 뭉친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 터치 한 번으로도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고 깨어보니 한없이 몸이 가벼웠다.

, 이거 대단한데!

기쁨에 겨워 방을 나온 애란은 툇마루에 앉아있던 고미숙에게 소리쳤다.

그렇다니까. , 여기! 목마를 텐데 물 한 잔 해!

고미숙은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을 애란에게 건넸다. 딱히 목이 마른 느낌이 없었는데도 며칠 만에 물을 본 사람처럼 애란은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크하아, 시원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안마를 받고 나오면 왜 그토록 목이 마른 지 애란은 전혀 알지 못했다.

#

이후로도 애란은 자주 기와집을 방문했다. 몸이 뻐근하다 싶으면 그곳을 찾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갈 때마다 갈증이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눈을 가리고 안마를 받던 중 남자에게 갈증이 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곳에서는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저 고객님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해드릴 뿐.

남자의 말투가 워낙 단호해 애란은 더 캐묻지 못했다. 갈증은 심했지만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기에 그녀는 계속 그곳을 찾았다.

엄마, 요즘 왜 그렇게 물을 많이 마셔?

당신 금붕어야? 무슨 물을 그렇게나 마셔?

기와집을 다닌 지 육 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애란은 집에서도 끊임없이 물을 마셨다. 그녀의 손에는 늘 2리터짜리 생수통이 들려 있었다.

혹시 기와집 안마에 문제가 있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그녀는 안락원의 현란한 손기술에 중독된 상태였다.

#

시간이 흐르자 애란의 몸은 점점 말라갔다. 체중은 10키로나 빠진 상태였다. 알 수 없이 빠지는 몸무게로 고민이 들 즈음 그간 연락이 없던 고미숙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 요즘 왜 연락이 안 돼?

애란은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그게나 지금 병원이야. 입원한 지 좀 됐어. 탈수증세가 너무 심해서…”

탈수증세?

, 원인을 알 수 없는 탈수증세 때문에 속이 다 망가졌대. 내장 수분이 다 빠져서 굳어간다고...그런데...자기 요즘도 기와집 다녀?

? 으응…”

애란 역시 그 기와집에 문제가 있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거긴 이제 그만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고미숙은 뭔가 더 얘기할 듯 하다가 주사 맞을 시간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멍하니 전화를 내려다보던 애란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설마 나도 정현이 엄마처럼 되는 거 아냐?

#

한동안 애란은 기와집 가기를 멈추었다. 몸이 쑤셔도 꾸욱 참고 버텼지만 어깨에 쇳덩이를 달아놓은 것 같이 무겁고 관절마저 비틀어지는 것 같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몸을 풀고 오고 다음부터는 안마기를 사서 해결하던가 하자.

애란은 굶주린 사람이 밥을 찾는 것처럼 허겁지겁 기와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눈을 가리고 침상에 엎드렸다. 곧 장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혹시 내가 잠든 사이에 이상한 짓을 하는 건가?

애란은 미등 아래서 남자가 일에 집중한 사이 살짝 안대를 내렸다. 그리고는 잔뜩 눈을 치켜뜨고 침상 앞 전면 거울을 통해 그를 지켜보았다.

흐음, 뭐 별다를 게 없네? 그냥 열심히 안마만 하고 있잖아? 흐아암, 근데 왜 이렇게 눈이 감기냐? 졸려 죽겠네.

평소 같으면 바로 잠이 들었을 테지만 그날만큼은 꼭 확인을 하리라 결심을 한 터라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잠을 쫓았다.

분명히 뭔가 있을 것 같은데…’

애란은 실눈을 뜨고 계속해서 남자의 손을 보았다. 미등의 깜빡이는 불빛 속에서 언뜻언뜻 손이 드러났다.

허어, 손이 엄청 크네? 하긴 손이 커야 유리하겠지.

그러던 애란의 눈에 희한한 광경이 들어왔다.

, 근데 손 색깔이 왜 저래? 흐윽, 검붉은 색이잖아? 전등 때문에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닌데? 저 사람 원래 손 색깔이야!

애란은 꼴깍 마른 침을 삼키며 숨죽이듯 웅크리고 있었다. 남자는 문득문득 그녀가 잠든 걸 확인하며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휴우, 하마터면 걸릴 뻔했네. 근데 또 뭘 하려고 저렇게 손을 풀지?

남자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 공중에서 탁탁 손을 털었다. 마치 빨래를 털 듯 강렬한 힘으로 자신의 손을 털어냈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들어왔다.

저게 뭐야? 흐어억, 저건 설마악마의 손?

그가 있는 힘껏 손을 털자 손으로 보였던 형체가 미끄덩 벗겨지더니 작은 빨판이 가득 달린 얇고 긴 손가락이 드러났다. 그의 열 손가락에는 꼭 문어 다리에 달린 빨판 같은 것들이 가득 달려있었다. 모든 걸 지켜본 애란은 공포에 사로잡혀 몸이 굳었다.

흐흐, 어디 오늘도 인간의 수액을 맛 볼까나?

남자의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나직이 들린 후 그의 빨판 달린 손가락이 애란의 등에 꽂혔다.

으아악!

애란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호오, 깨어 있잖아? 규칙을 지키지 않는 손님은 곤란한데?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내뱉고는 빨판 달린 손으로 애란의 머리통을 들어올렸다. 미끄덩거리는 남자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 살려주세요!

애란은 부들부들 떨며 애원했다.

후후, 그러게 규칙을 지켰어야지. 어차피 죽을 목숨, 조금 앞당겨진 것뿐이니 너무 슬퍼 말라고!

곧 무수한 빨판이 애란을 짓눌렀고 그녀의 얼굴에선 핏기가 사라졌다. 이어 그녀 몸에 있던 모든 수분이 남자에게 빨려 들어가자 그녀는 홀쭉하게 쪼그라들어 뼈와 거죽만 남았다. 검붉은 남자의 얼굴엔 어느새 생생한 혈기가 감돌았다.

흐음, 오늘은 예상에 없던 과식을 했구나. 크흐흐.

남자는 빈껍데기만 남은 애란의 몸을 종잇장처럼 구겨 숲속 후미진 곳에 던져버렸다.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흉측한 괴수는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며 기와집 안으로 들어갔다.

 

본 작품은 유튜브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youtu.be/hzPp1DsGo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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