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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철은 싱글남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혼남이다. 이혼한 지 3년이 되었고 지금은 원룸에서 강아지 포리와 함께 지낸다. 근근이 주식 투자를 통해 밥벌이를 하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사실, 이혼의 주원인도 별 볼일 없는 그의 수입 때문이었다.
‘뭐야, 이거? 리모컨이 망가졌네?’
즐겨보는 프리미어 축구중계를 보려는데 웬일인지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배터리를 갈아 끼워도 소용이 없었다.
‘젠장.’
그는 밖으로 나와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리모컨을 수리하거나 새로 사려는 생각에서였지만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열려있는 가게는 없었다.
‘어휴, 오늘은 그냥 자야 될 팔자인가 보다.’
불 꺼진 가게를 보고 그냥 돌아가려는데 건물 입구 난간에 가지런히 놓인 리모컨 하나가 보였다.
‘저건 뭐지?’
생활이 궁핍하긴 해도 바깥 물건을 주워 들인 적은 없던 그는 자석에 이끌리듯 리모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용도 리모컨? 누가 이럴 걸 여기다 버렸지?’
낯선 물건을 들이는 것이 마뜩치 않았던 그는 잠시 고민을 하며 리모컨을 훑어봤다.
‘깨끗하긴 한데...에이, 물티슈로 닦아 쓰면 되겠지.’
그는 축구를 보고 싶은 욕심에 리모컨을 챙겨들었다.
‘잘 되네, 오케이! 고칠 때까지만 쓰자.’
막상 집에 가져와 보니 거의 새 것 같은데다 성능도 기존 것보다 좋아서 그는 기존 리모컨을 고치지 않고 계속 새로 주워온 리모컨을 사용했다.
“어, 이거 핸드폰도 작동시킬 수 있네?”
그는 우연히 핸드폰을 향해 리모컨을 쏘았다가 전원이 켜지는 걸 보고는 눈이 번뜩, 했다.
‘와, 기술 좋아졌네. 리모컨으로 핸드폰도 켜고. 후후.‘
이후 이것저것에 리모컨을 쏘아보며 확인한 그는 컴퓨터 또한 리모컨으로 작동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후후, 잘 주워왔네. 누가 이런 걸 버렸을까?’
그러던 어느 날 밤, 잔뜩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온 그의 눈앞에 무심코 반려견 포리가 들어왔다.
‘히히, 포리도 리모컨으로 작동시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는 자신을 보고 신이 나 폴짝거리는 포리를 향해 장난삼아 리모컨 정지 버튼을 눌렀다.
‘어, 이거 뭐야!’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굳은 듯 멈춰선 포리를 보고 그는 당황하며 다시 재생버튼을 눌렀다.
‘내가 술이 취했나?’
하지만 재생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포리가 다시 움직이는 걸 본 그는 확인하듯 정지버튼과 재생버튼을 반복해 눌렀다. 포리는 정확히 버튼대로 움직였고 그는 놀라우면서도 신기한 생각에 한참 동안 버튼을 눌러댔다. 다음 날, 술에서 깬 그는 간밤의 일을 떠올리며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거 정말 대단한데!’
그는 좀 더 확인을 해 보고 싶은 생각에 창문을 살짝 열고는 커튼 뒤에 숨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리모컨을 쏘았다.
‘어어어어, 이거 뭐야? 사람한테도 되잖아!’
그는 흥분에 휩싸였다. 리모컨 하나로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후로 그는 틈만 나면 골목을 혼자 지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정지와 재생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걷다 말다를 반복하게 하는 그 일에 금세 싫증이 났고 좀 더 색다른 상황을 궁리하게 되었다.
‘뭐 재밌는 거 없나, 아하!’
그는 생방송 티비쇼의 방청을 신청하고는 방청석에 앉아 쇼를 지켜보았다.
‘흐흐흐, 재밌겠는 걸.’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이 나와 클라이맥스 부분의 안무를 할 무렵, 그들을 향해 정지 버튼을 누르자 얼음처럼 자리에 멈춰선 그들은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못했고 이 사건은 희대의 방송 사고로 한참을 언론에 떠돌았다.
‘우하하. 재밌구나, 재밌어.’
그는 자신이 뭔가를 통제하고 장악할 수 있다는 것에 점점 빠져들었고 그의 엉뚱한 짓은 더욱 심해져갔다. 교통위반 딱지를 끊으러 오는 경찰을 멈춰 서게 하거나, 근엄하게 연설 중인 정치인을 빨리 돌리기로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자신에게 기분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은 정지시켜 놓고 비아냥거리거나 해코지를 했다. 아무도 이러한 일의 원인이 그가 누른 리모컨 때문이라는 걸 눈치 채지 못했고 그의 행동은 점점 더 과감하고 사악해져, 늦은 밤 골목길을 혼자 걷는 여자를 정지시켜 놓고는 여자의 몸을 더듬기까지 했다.
‘이 아가씨 몸매가 이제껏 중 최고인데.’
한동안 여성들을 상대로 한 범죄에 빠져있던 그는 또 다른 것에 눈을 돌렸다. 그쯤, 주식투자로 그의 통장 잔고는 바닥이 나 있었다.
‘이거면 은행도 털겠는데?’
그는 비교적 사람이 적어 통제하기가 편한 소규모의 신용금고를 눈여겨보았고 곧 구체적인 계획에 들어갔다. 며칠간 사전조사를 마친 그는 사람이 뜸한 시각, 한 신용금고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후후, 총 5명. 오케이, 가능하겠어.’
그는 마치 서부의 총잡이처럼 빠르게, 다섯 명을 향해 리모컨을 쏘아댔다.
‘파파파파파.’
순식간에 신용금고 안에 있던 직원 네 명과 한 명의 고객이 정지 상태가 되었고 그는 미리 준비한 수건으로 CCTV를 가리고는 돈을 챙겼다.
‘돈 벌기 참 편해요, 좋아요.’
그가 콧노래까지 부르며 유유히 은행 밖으로 나오려는데 개인 볼일을 보러 온 한 경찰과 맞닥뜨렸다. 상황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그에게 신분증과 가방에 든 물건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자 순간 당황한 그는 경찰을 밀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에서 그를 따라오는 경찰을 피해 내달리던 그는 어느새 숨이 목까지 차올랐고 그의 뒤를 바싹, 경찰이 따라붙었다.
‘젠장, 나한테는 리모컨이 있잖아?‘
더 이상은 도망치기 힘들겠다고 판단한 그는 골목 모퉁이를 돌자마자, 휙, 몸을 돌려 경찰을 향해 리모컨을 쏘았다. 하지만 민첩하게 몸을 피한 경찰은 그의 손에 든 것이 총인 줄 알고 그것을 잡아챘다. 경찰의 손에 들린 리모컨은 그를 향한 채 정지 버튼이 눌러졌고, 순간 그는 멈춤 상태가 되었다. 갑자기 몸이 굳어 서버린 그를 이상히 여긴 경찰은 그의 몸을 툭툭, 쳤다.
“이봐, 뭐하는 거야? 지금 장난해?”
미동도 없이 선 그를 경찰이 또다시 툭, 밀치자 뻣뻣하게 굳은 그의 몸은 일자로 넘어갔다.
효과음 - 쿠웅
꼿꼿하게 넘어가던 그의 머리가 전봇대에 부딪히며 툭, 목이 꺾였고 부서진 유리인형처럼 그의 몸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리모컨을 줍지 말았어야 했는데...’
빳빳하게 굳은 몸 안에서도 그의 의식은 살아있었다.
‘뭐야...정신은...깨어..있..잖..아...’
골목의 바닥이 점점 그의 피로 물들어갔고 서서히 그의 의식도 꺼져갔다. 또다시 골목길 구석에 버려진 리모컨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오롯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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