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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공포 소설

나와 젊음을 바꾸겠어?

by 배작가 2021.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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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이 그녀를 만난 건 명산으로 유명한 노변산 정상 부근에서였다.

할머니, 도와 드릴까요?

할머니가 혼자서 힘겹게 산을 오르는 게 안쓰러웠던 미란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 늙은이라 동정심이 생겨?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기껏 베푼 호의를 삐딱하게 받아들이자 미란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내밀었던 손이 무안해졌다. 속으로 심술궂은 늙은이라 욕하며 돌아서는데 뒤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를 당겼다.

졸업하고 5년째 임용고시 낙방, 군대까지 기다려준 남자친구는 딴 년한테 갔고, 나이 28에 모아둔 돈은 한 푼도 없는데 사는 건 막막하고. 그냥 인생 확 마감해버릴까 하고 산에 왔는데 떨어져 죽는 것도 겁나고, 쯧쯧. 답답하다, 답답해.

미란은 얼음처럼 굳어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어떻게, 내 사정을 저렇게 다 알지?

미란은 다시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할머니, 무당이에요?

그제야 험한 산을 오르면서 한복을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무당? 내가 그렇게 급이 낮아 보이나?

할머니는 미란의 손목을 이끌고 성큼성큼 산 정상에 올라 바위 턱에 걸터앉았다. 자신의 이름을 흑화라 밝힌 할머니는 미란의 귀에 놀라운 이야기를 속삭였다.

에이, 그걸 절더러 믿으라고요? 아무리 할머니가 저에 대해 속속들이 안다고 해도,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자네가 손해일 건 없잖아?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말면 되지.

미란은 낯선 할머니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혹해 대거리를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젊음을 빌려달라니요?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안 믿어도 상관없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그냥 잠시 내 손만 잡고 있으면 돼. 만약 내 말대로 안 되면 주기로 했던 돈의 절반을 주지.

절반이면 5천만 원?!

할머니가 한 달 간 젊음을 한 달 빌리는 대가로 1억을 제시했으니 만약 안 되더라도 5천만 원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돈은 있으세요?

미란의 질문에 흑화는 핸드폰을 꺼내 은행 계좌에 찍힌 돈을 보여주었다.

뭐야? 100억이 넘잖아!

, 어서! 내 손만 잡아도 최소 5천이야.

그래, 밑져야 본전인데. 손 한번 잡는다고 탈 날것도 없잖아.

미란은 속는 셈 치고 할머니와 두 손을 맞잡았다.

어휴, 손이 왜 이렇게 차?

내 손이 찬 게 아니라 네 손이 뜨거운 거야. 그게 바로 젊음의 기운이라는 거지.

버럭 소리치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미란은 깜짝 놀랐다.

이 할머니, 독심술까지 하나? 근데...뭐야, 아무 변화도 없잖아.

미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살리사 말라이 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할머니의 입에서 기괴한 주문이 터져 나왔고 미란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

좀 있으면 해도 저무는데 이제 내려가야지.

미란의 귓가에 또래 여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잠에서 깬 듯 뿌옇던 시야가 또렷해지자 코가 닿을 듯 바짝 얼굴을 내민 젊은 여자가 보였다.

누구세요?

소리를 내자마자 미란은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내 목소리가 왜 이래? 이거 완전히 할머니 목소리잖아!

호호, 고맙다. 덕분에 한 달간 젊은이로 살 수 있겠네. 계좌번호 불러봐.

미란은 어안이 벙벙한 채 한복을 입은 눈앞의 여자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그 할머니!

눈앞의 젊은 여자는 무척이나 젊어진 할머니, 분명 흑화였다.

시간 없어, 빨리 계좌나 불러.

미란은 그 자리에서 1억 원을 입금 받았고 그제야 핸드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으아악!

거울 속에는 영락없는 할머니의 모습이 비추고 있었다. 산을 내려와 혼자 사는 원룸에 돌아온 미란은 다시 한 번 거울을 보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정말 할머니가 돼버렸어.

처음 한동안 미란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적응이 되었고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현금 1억을 가진 할머니의 삶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미란은 백화점을 돌며 평소 꿈만 꾸던 명품을 마구 사들였고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깍듯한 대접을 받았다.

뭐야, 돈만 있으면 세상 참 우습구나!

물론 불편한 점도 있기는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체력이 달리고 힘에 부치는데다 소화도 잘 안 되고, 외모가 바뀐 탓에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그래봤자 고작 한 달 뿐인걸. 한 달에 1억 알바, 괜찮잖아. 후후.

미란은 달콤한 돈의 맛에 빠져들었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통장 잔고는 거의 바닥나있었다. 정확히 한 달이 되던 날 다시 산에 오른 미란에게 먼저 도착한 흑화가 물었다.

어땠어? 돈 많은 할머니로 사는 거?

나쁘지 않던데요. 평생 돈 걱정하며 살다가, 너무 편해요.

그래? 그럼 한 달 연장 어때?

한 달 연장? 그럼 이번엔 차를 사볼까?

좋아요, 한 달 연장이요!

E - 시간 경과 음악

새로운 한 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미란은 꿈에 그리던 외제차를 사는데 대부분을 썼고 나머지 돈마저 쇼핑으로 써버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또다시 흑화를 만났을 때, 이번엔 미란이 먼저 연장을 제안했다.

한 달만 더 하죠. 딱 한 달 만!

나야 좋지.

미란은 흑화에게 다시 1억을 받았지만 그 정도 돈으로는 더 이상 성에 차지 않았고 채워지기 무섭게 거품처럼 빠져나갔다.

젠장, 쓴 것도 없이 다 나가네.

미란은 달콤한 돈의 매력에 빠져 더 큰 돈을 원했고 멈출 수가 없었다.

저기, 1년 계약은 안 돼요?

1년에 12? 괜찮겠어?

, 1년으로 해요.

미란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단단히 결심을 하며 계약을 연장했다. 하지만 흑화에게 받은 돈으로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를 사고 이전과 같은 씀씀이로 돈을 써대자 1년을 버티기도 힘들었다. 시간은 금방 흘러 어느새 1년이 지났고 시간과 함께 돈도 모두 사라졌다.

이럴 바에는 완전히 바꾸는 게 어때? 그러면 내 통장에 있는 돈 500억 다 줄게.

500억을요?!

머릿속에 500억을 떠올리자 미란은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불현 듯 머리 뒤를 잡아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글쎄요…”

젊음을 모두 주기에는 왠지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 10년에 120, 어때?

10? 10년 후에 다시 몸을 바꾸면 내 나이 40, 나쁘지 않은데? 요즘엔 관리 잘한 40대도 멋지잖아?

미란은 120억에 10년 연장 계약을 한 후, 한동안 돈 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급 주택단지로 이사를 하고 끊임없이 새로 나온 외제차로 바꾸며 고급 여행 코스를 즐겼다. 하지만 1, 2년이 지나자 몸은 몰라보게 노쇠해졌고 기력이 딸려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몸이 왜 이래어휴, 힘들어.

미란은 못 견디게 허리가 아파 병원을 갈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왜 비까지 오고 난리야.

미란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산을 펴는데 미끄덩, 하고 젖은 계단에 발이 미끄러졌다.

아아악!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 미란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가방 안 핸드폰을 꺼내려 해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거기 누구 없어요?

인적도 드문 고급 주택 단지의 계단에서, 비를 맞으며 절망에 휩싸인 채 쓰러져 있는 미란의 눈앞에, 화려하게 치장한 흑화가 찾아왔다.

어이쿠, 어쩌다 이렇게 되셨나? 비 맞은 개구리 신세구만.

흑화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듯했다.

그러지 말고, 119에 신고나 해줘요.

맨입으로?

장난하지 말고 얼른 연락해요. 이러다 죽겠으니까.

장난? 내가 너하고 지금 장난하는 것처럼 보여?

흑화는 카랑한 목소리로, 압박하듯 미란을 몰아세웠다.

...원하는데요?

절망스런 얼굴로 미란이 흑화를 올려보았다.

내가 원하는 건 늘 똑같지, 500억에 완전 교환!

미란은 얄밉게 입을 비죽거리며 웃고 있는 흑화를 노려보았다.

1년 연장은 해줄게요.

에이, 너야 말로 장난해? 살려주는 대가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나도 이번엔 절대 안 돼요!

그래? 그럼 이대로 죽던가.

흑화는 싸늘하게 말을 내던지고는 냉랭하게 돌아섰다.

, 잠깐요! 그냥 가면 어떡해요...

그럼, 오케이?

그녀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미란에게 다가왔다.

정말, 500억 주는 거죠?

당연하지, 얼마나 좋아. 목숨도 건지고, 돈도 받고, 로또가 따로 없잖아? 하하하.

***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흑화가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길길이 뛰고 있다.

, 짜증나! 미란이 이것이, 벌써 죽어버렸어!

흑화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중에, 갑자기 본인의 늙고 추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건강관리 좀 잘 했으면 10년은 더 거뜬했을 텐데, 내가 강제로 운동이라도 시킬 걸, 어휴.

입맛을 쩍, 다시는 흑화의 표정이 이내 풀어지고 형형한 눈빛이 감돌았다.

죽은 애는 죽은 애고, 어차피 애들은 많으니까. 이번에는 또 어떤 애를 꼬실까? 더 어린 여자애를 꼬셔볼까, 흐흐.

흑화의 얼굴 가득한 주름이 춤을 추듯 기괴하게 일렁였다.

, 나와 젊음을 바꾸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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