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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형적인 자동차 애호가다. 모든 종류의 차에 관심을 가지며, 깊은 애정을 느낀다. 특히 얼마 전 새로 뽑은 자신의 애마는 아내와 딸보다 더 아낀다. 그런 그에게 최근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애마의 조수석 문짝에 선명한 두 줄의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어떤 빌어먹을 자식이!’
그는 바로 블랙박스를 확인했지만 여러 번 반복해 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경비실에 찾아가 CCTV까지 훑어보았지만 어디서도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안 되겠어. 전후 사방 다 커버되는 최고 사양 블랙박스로 바꿔야지.”
그는 오래된 블랙박스를 떼어내고 최신 블랙박스를 달았다.
“모든 각도에서 찍히니까, 문제없겠지.”
하지만 며칠 후 같은 일이 또 벌어졌고 새로 바꾼 블랙박스에도, 역시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정말 돌아버리겠네!”
그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수리한 지 며칠 만에 다시 카센터를 찾아간 그에게 카센터 사장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애들 장난이면 블랙박스에 잡혔을 텐데, 참 희한한 일이네요.”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완벽하고 치밀했다.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고 반복적으로 같은 스크래치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후로도 그 일은 며칠이 멀다하고 계속 벌어졌고 그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왔다.
“안 되겠어, 이 자식 내 손으로 직접 잡아야지.”
그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을 때까지 차 안에서 잠을 자겠다고 선언했다. 짙은 썬팅 덕에 범인은 그가 차 안에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것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초저녁부터 차 안에서 자리를 잡은 그는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일상적인 차량의 움직임 이외에 별다른 점 없이 시간만 흐르자 그는 차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아, 졸면 안 되는데.’
커피를 마셨는데도 자꾸 쏟아지는 졸음에 그는 친구 영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처럼 자동차 애호가인 영석은, 유일하게 서로의 자동차를 교환해 탈 정도로 친한 친구였다.
“왜 밤늦게 전화야?”
전화를 받은 영석은 웬일인지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왜라니? 이 몸이 지금 중대 사건 해결중이신데.”
“중대 사건? 쓸데없는 얘기 할 거면 끊어!”
“쓸데없긴, 차에 관한 건데. 어떤 자식이 자꾸 내 차를 테러해서 지금 보초 서는 중이야.”
“짜증나겠네. 하여튼, 나도 요즘 짜증나니까 나중에 통화해.”
영석은 제 할 말을 마치고 뚝, 전화를 끊었다.
“뭐야, 이 자식. 지난번 차 빌려갈 때는 엄청 굽실거리더니…”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가만 있어보자,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이 차 빌려갔다 돌려준 다음부터 스크래치가 나기 시작했잖아?!’
하지만 사건이 시작된 시점만 일치할 뿐 영석과는 어떤 연관성도 없었기에 잠시의 의혹은 금세 사그라졌다.
‘어휴, 졸려 죽겠네.’
그는 졸린 눈을 비비며 차 안에서 밤을 지새웠다.
‘어, 이게 뭐야!’
그가 차안에서 보초를 선 지 3일째 되던 날 아침, 또다시 두 개의 가로 줄이 새겨졌다.
‘아, 돌겠네. 언제 긁고 간 거야? 왜 못 봤지?’
블랙박스에도, 직접 밤을 지새운 자신의 눈에도 범인이 잡히지 않자, 그는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여보, 이대로는 안 되겠어. 우리 이사 가자.”
“이사라니? 차 때문에? 내참, 무슨 그런 일로 이사야?”
“그런 걸로 라니? 이게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하긴, 당신한테 차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당신이야말로 우린 안중에도 없잖아! 난 이사 못 해. 갈려면 당신 혼자 가!”
“뭐라고? 이 사람이 정말, 가라면 내가 못 갈 줄 알아!”
그는 차로 짜증난 기분을 아내에게 쏟아내고는 분에 못 이겨 집을 나왔다. 늦은 밤 무작정 집을 나오자 달리 갈 데도 없었던 그는 친구 영석의 집에 찾아갔다.
“이 밤에 웬일이야?”
영석은 얼굴 가득 마스크를 한 채 빼꼼히 문을 열었다.
“집에서 웬 마스크냐?”
그는 집안으로 들어가며 양손 가득 사온 안주거리를 식탁 위에 풀었다.
“부부싸움이라도 했냐? 연락도 없이 이 시간에...”
“곱창 어때? 기분도 그렇고, 소주나 한 잔 하자고!”
영석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식탁에 마주앉았다.
“너 성형이라도 했냐? 계속 왜 그러고 있어?”
반기지는 않더라도 내내 까칠한 영석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진 그는 핀잔을 주듯 내뱄었다. 그의 계속된 재촉에 영석은 포기한 듯 마스크를 벗었다.
“어, 너 얼굴이 왜 그래? 여친하고 싸웠어?”
영석의 얼굴에는 정확히 두 줄의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뭐야 이거? 제대로 할퀴었는데?”
“몰라, 아침에 일어나면 자꾸 이런 상처가 생겨. 나을 만 하면 생기고, 또 생기고.”
영석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던 그의 눈이 번뜩 커졌다.
“이거, 내 차랑 똑같잖아. 두 줄의 스크래치!”
그의 머릿속으로 뭔가 퍼즐이 맞춰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석이 너, 내 차 빌려갔을 때 무슨 일 있었지?”
그의 눈이 예리하게 영석을 바라보자 영석이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이 자식, 무슨 일 있었네. 뭐야? 빨리 얘기해 봐.”
영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실은, 네 차 빌려서 드라이빙 하던 날 국도에서 길 고양이 하나를 치었어.”
“길고양이?”
“어, 길가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비도 오는데 재수 없게.”
“그 고양이...죽었어?”
“죽진 않았는데, 곧 죽을 것 같길래...”
“그래서, 어떻게 했어?”
“뭘 어떻게 해? 그냥 길가에 던져놓고 왔지.”
“아! 그거였네, 그거. 고양이! 너 이 자식이 범인이었어! 드디어 잡았어!”
펄쩍펄쩍 뛰는 그를 보며 영문을 모르는 영석은 볼의 상처자국을 부여잡고 멍한 눈만 끔뻑였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아내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여보, 우리 이제 이사 안 가도 돼.”
여전히 토라져 있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그는 은근슬쩍 말을 붙였다.
“뭐야, 혼자라도 가겠다며?”
“그게...해결됐어. 고양이 제사를 지내줬거든.”
“고양이 제사? 그건 또 무슨 얘기야?”
아내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게 있어. 제사 지낸 이후로 내 차도, 영석이 녀석도 아무 일 없으니까, 이제 이사 갈 일 없다고. 후후.”
그는 밤마다 자신의 차 주변을 어슬렁거렸을 고양이의 영혼을 떠올리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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