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스테리 공포 소설

타짜 배달부

by 배작가 2021. 4. 16.

소리나는 책방의 모든 작품은 창작입니다. 저작권 침해시 법적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세상의 풍파에 밀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나 장소에 머무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큰일을 당한 진영도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넘게 놀던 그는 친구와 함께 강원도의 한 카지노에 가게 되었다. 처음 해 본 블랙잭 테이블에서 큰돈을 만지게 된 그는 금세 도박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세상 돈 벌기 쉬워보였고 굳이 취직을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러다가 임요한 같은 유명 도박사가 되는 거 아냐? 후후.

하지만 만 하루도 되지 않아 본인이 얼마나 멍청한 게이머인지 깨닫게 되었고 카드빚까지 낸 돈마저 탁탁 털린 채 서울로 돌아왔다.

젠장, 되는 일 하나 없네.

집에 있으려니 부모님의 눈치만 보였고 알바를 알아보는데 그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냐, 하아...

그러던 중, 어려서 몇 번 봤던 먼 친척이 안개로 유명한 무진에서 피자가게를 한다는 것과 그곳에 배달 일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케이, 여기다!

부모님 눈치에 시달리느니 몇 달이라도 시골에 가서 좋은 공기를 쐬며 심기일전해서 돌아올 요량으로 그는 무진행을 결심했다. 카지노의 아픈 기억이 남아있던 그에게 제대로 된 구직활동은 아직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친척집이니 숙식제공까지 되어 알바로 번 돈을 그대로 모을 수 있는 기회였다.

크크, 몇 달 돈 모아서 빅게임 한 번 만들어? 난 역시 아직 미친놈이다.

시골 사람들이 피자를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냐는 생각에 그는 놀며 가며 돈을 벌겠다는 얄팍한 계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무진에 도착하니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미 피자는 남녀노소, 지역을 가리지 않는 국민음식이었고 시골이라 배달이 적을 거라는 그의 기대는 오판이었다. 오히려 피자가게가 얼마 없는데다 민가는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 서울이라면 가지 않을 먼 지역까지도 배달을 가야 했다.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논바닥, 밭고랑, 야산까지 배달을 하느라 그는 하루 종일 정신없이 돌았다.

, 여기서 또 주문이 왔네?

하루 종일 밀린 주문에 쫓기고 퇴근을 준비하던 중, 친척 아저씨의 짜증 섞인 말이 들려왔다. 진영이 이곳에 온 지 한 달 남짓,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시점이었다.

어딘데요?

, 배달원들이 다 꺼리는 덴데...

아저씨의 피자 가게에는 진영 말고도 세 명의 배달원이 더 있었다.

꺼리다니요, 왜요?

그게...귀신이 나온다나 뭐라나…”

귀신?

머리를 긁적이며 내뱉는 아저씨의 말에 그는 빵,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그런 거라면 저한테 맡기세요. 저는 귀신, 유령, 그딴 거 안 믿으니까요.

괜찮겠어? 다른 애들은 오금이 저려서 못가는 덴데…”

걱정 마세요. 제가 누굽니까? 저 고진영, 세상 무서운 거 하나 없는 놈입니다.

진영은 시골사람들의 무지함에서 나온 두려움이라 생각하며 큰소리를 쳤다.

요즘 세상에 귀신을 믿다니, 내참.

진영은 호기롭게 불고기 피자와 하와이안 피자를 오토바이에 싣고 배달지로 향했다.

이거 무서운 게 문제가 아니라 산 속에 집이 있는 게 함정이었네.

그는 산중턱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간 다음, 직접 배달통을 들고 산기슭을 올라갔다.

무슨 에베레스트야, 시골 산이 왜 이래? 봄인데 이렇게 춥고, 안개까지 자욱해?

진영은 투덜거리며 핸드폰 길안내 앱을 이용해 집을 찾았다.

, 저기다! , 집 좋은데. 이런 산중에 저런 고급스런 집을 어떻게 지었지?

배달을 간 곳은 중세 유럽의 성처럼 지어진 집이었다. 웅장한 외벽과 대문, 원통형의 높고 하얀 벽에 무수히 난 창까지, 고급스러우면서도 낭만적인 느낌이었다.

저기요, 배달 왔습니다.

그가 현관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열려있으니까 그냥 들어오세요.

진영은 배달통을 들고 현관 안으로 들어가며 빠르게 집안을 훑어보았다. 큰 홀만 덩그러니 있는 1층엔 테이블과 소파뿐 아무것도 없었다. 중앙에 커다란 원형 테이블과 소파가 있고, 한쪽 벽에 미니 테이블과 작은 의자들이 늘어져 있었다. 방은 2층과 3층에 있는지 1층엔 화장실 외에 문도 없었다.

, 정말 유럽식이네. 근데 이 사람들 팔자 좋구나.

홀 중앙 테이블에서 네 사람이 둥그렇게 앉아 카드를 치고 있다. 진영은 사람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로 성큼 다가갔다.

피자는 어디에 놓을까요?

, 배고픈 사람만 먹게 저쪽 테이블에 놓아주세요.

진영은 벽 쪽에 늘어선 미니테이블에 피자를 내려놓았다.

요금은 42천원입니다.

카드를 치는 네 명 중 한 사람, 그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던 젊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피자 값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젊은 남자가 진영의 어깨를 건드렸다.

저기미안한데 나 대신 카드 좀 쳐 줄 수 있어요?

, 카드를요?

, 내가 딴 돈이 백만 원인데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하거든요. 따기만 하고 그냥 가는 것도 미안하고 중간에 사람 빠지면 다들 흥이 깨져서...

남자의 말에 진영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개평으로 나눠주시지…”

에이, 그럼 판이 깨지잖아요.

진영은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마지막 배달이었고 다시 가게로 돌아갈 필요도 없어 놀다 가도 되는 상황이었다.

내가 딴 백만 원은 그냥 드릴 테니까 나 대신 친다 생각하고 해줘요. 백만 원이라도 판이 커서 한 두 게임이면 끝날 테지만. 그쪽도 손해 보는 건 없으니까 그냥 즐겨 봐요.

진영은 남자의 말에 솔깃했다.

혹시, 그 쪽이 돈을 따면 더 좋은 거고 안 그래요?

젊은 남자가 눈을 찡긋하며 속삭이자 진영은 스윽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앉아있기도 지쳐 보이는 백발의 노인, 눈에 졸음이 가득 찬 배불뚝이 중년 남자, 그리고 카드라고는 처음 쳐보는 듯한 커다란 눈망울의 젊은 여자, 하나같이 만만해 보이는 상대였다.

정 그러시면, 좋아요. 대신 백만 원 다 잃어도 문제 삼지 않는 거죠?

당연하죠, 돈을 따면 그것도 다 당신 몫이에요.

젊은 남자는 안심하는 얼굴로 자리를 떠났고 진영은 일행과 간단히 인사를 한 후, 속칭 세븐오디 게임에 끼어들었다.

호호, 어리고 잘생긴 남자가 오니까 왠지 더 잘 될 것 같은데요?

그러게 뉴 페이스는 늘 새로운 레이스를 불러일으키지.

좋아, 이제 좀 제대로 해 보자고.

모두 파이팅 넘치는 말로 게임을 시작했지만 예상대로 실력은 형편없었다.

뭐야? 분명 가진 게 없을 텐데 계속 베팅하네. 이건 분명 뻥카다!

진영은 능청스레 큰돈을 들이밀며 판을 키우는 노인의 뻥카를 잡아내었고 여자의 어이없는 실수에 어부지리로 큰 판을 먹었다. 뒤이어 배불뚝이 중년의 개념 없는 레이스까지 이어져 진영은 연거푸 세 판을 쉽사리 먹었다.

뭐야? 몇 판 만에 벌써 천이나 땄잖아!

이거, 선수 바뀌어서 좋아했는데. 어디서 타짜가 왔구먼.

그러게, 요즘은 피자집에서 카드도 가르치나?

그들은 돈을 잃는데도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게임을 즐겼다.

어허, 이거 돈이 모자라네. 2층 가서 돈을 좀 가져오지.

그들은 돈이 떨어지자 2층에 올라가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그들이 들고 내려온 가방에는 대략 3억 정도의 돈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도대체 얼마를 갖고 치시는 거예요?

, 3 3천씩.

그들의 돈을 모두 따면 대략 십억, 진영은 슬슬 욕심이 생겼다. 이미 그는 구천만 원 남짓 확보한 상태였다.

오늘 웬일로 이렇게 패가 잘 들어오지?

진영에게는 매번 스트레이트, 플러시,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들어왔다.

고형, 패가 너무 잘 들어가는 거 아냐?

그들은 진영을 고형이라고 부르며 부럽다는 듯 말했다.

제가 운이 좋네요, 오늘.

진영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호구들이 돈을 밀어주는구나, 밀어 줘.

진영은 밤새 그들의 판돈을 쓸어 모았고 어느새 승패를 가름 지을 마지막 판이 다가왔다.

올인!

나도, 올인!

나도, !

진영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판세를 읽었다. 노인은 기껏해야 투페어, 여자는 풀하우스인 척 하지만 트리플에서 마른 듯 했다. 문제는 중년인데 헷갈리긴 하지만 바닥에 깔린 걸로 봐서는 이 빠진 스트레이트 정도로 보였다. 진영은 빽스트레이트를 들고 있었다.

오케이, 저도 올인입니다!

테이블 위에는 세 명의 판돈 9 9천과 진영의 백만 원, 모두 10억 원의 돈이 쌓였다.

이건 돈이 아니라 산이구나, !

가득 쌓인 돈을 보며 진영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 이제 까시죠!

진영이 좌중을 둘러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헤헤, 나는 투페어.

진영의 예상대로 노인은 투페어였다.

, 트리플인데…”

여자도 예상대로 트리플, 이제 남은 사람은 배불뚝이 중년뿐이었다.

흐흐, 그럼 내가 위너네. , 스트레이트야!

중년의 패는 예상에서 빗나갔다. 그가 단단히 손 안에 틀어쥐고 있는 패 하나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순간이었다.

마운틴 스트레이트만 아니면 되는데, 제발.

중년이 카드를 바닥에 펼치는 순간, 진영은 기쁨의 환호를 지르며 패를 열었다.

난 빽스트레이트!

, 이런. 난 그냥 스트레이트인데...

하하, 그럼 제가 이긴 겁니다.

진영은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자가 건네준 커다란 가방에 돈을 쓸어 담으며 진영은 어깨를 들썩였다.

저기 죄송한데, 각 천만 원씩 개평 드리겠습니다.

진영은 초면에 큰돈을 딴 게 왠지 마음에 걸렸다.

에이, 아니야. 재밌게 놀았으면 됐지. 우리 돈 많아, 모두 부자거든.

그래요. 같이 놀아줘서 우리가 고맙지. 신경 쓰지 마세요.

부담 갖지 말게.

도박판에 이런 천사 같은 사람들도 있네?

진영은 모두의 부러움과 축하를 받으며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저 정말 갑니다.

정말 괜찮다니까. 잘 가요, 잘 놀았어요.

진영은 커다란 가방을 끌다시피 해서 산을 내려왔다.

, 이상하네.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단풍이 들었지?

사월의 봄날에 알록달록 단풍이 진 산을 보며 그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산이 유독 추워서 그런가?

진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둘러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가게로 돌아왔다. 헌데,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며 친척아저씨가 못 볼 거라도 본 듯 난리법석을 떨었다.

너 이 자식, 왜 이제 와?

, 죄송해요. 어제 볼 일이 있어서 외박했어요. 연락 못 드려 죄송해요.

, 어제?

아저씨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진영의 행색을 살폈다.

아무 연락도 없이 6개월 동안 실종되었다가 나타나서, 어제라니? 너 제정신이야?

? 6개월이라니요!

친척아저씨의 말에 진영의 눈이 벽에 붙은 달력을 향했다.

뭐야! 지금이 10월이라고?

진영이 피자 배달을 간 건 분명 사월 초였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진영은 핸드폰도 확인하고 은행이나 관공서에도 가봤지만 아저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뭐야, 정말 6개월이 지났단 말이야!

진영은 자신이 무려 6개월 동안 카드를 쳤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럼 그 사람들은 뭐야? 귀신이라도 된단 말이야?

지난밤을 아무리 곱씹고 되뇌어도 상황을 납득하기는 힘들었다.

그래, 6개월은 잊자. 그래도 나한테는 돈이 있잖아, 그것도 큰돈이!

6개월 동안 10억을 벌었으면 대단한 거 아냐?

이 돈으로 서울 가서 카페라도 하나 차려야지.

풀리지 않는 고민은 털어버리기로 한 진영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가방을 어루만졌다.

후후, 돈 냄새나 한 번 더 맡자.

진영은 가방을 열어 방바닥에 쏟아 부었다. 우르르, 가방을 열자마자 쏟아져 내린 것은 묵직한 돈 뭉치가 아니었다.

이거 뭐야? 왜 이래?!

진영은 미친 사람처럼 커다란 가방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뭐야, 젠장! 가방에 온통 도토리뿐이잖아!

진영의 수선스런 소리에 친척아저씨가 빼꼼히 방을 열었다.

6개월 동안 한 짓이 고작 도토리 모아 온 거였어? 으이구, 한심한 놈아!

진영은 이곳에 와서도 한심한 놈이 된 자신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짜릿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마지막 판, 정말 예술이었는데. 젠장, 그게 도토리여서 문제지만…’

진영은 그 날 이후, 귀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언제든, 어디에든...귀신은 있다.

'미스테리 공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사 음식은 먹지 마  (0) 2021.04.22
스크래치, 의문의 손톱 자국  (0) 2021.04.20
나와 젊음을 바꾸겠어?  (0) 2021.04.14
너의 목소리를 원해  (0) 2021.04.10
손 좀 빌려줄래?  (0) 2021.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