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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공포 소설

히치하이커, 사라진 여행자

by 배작가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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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아 도보로 전국일주를 하던 영훈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졸지에 야간행군을 하게 되었다. 버스도 끊기고 인적도 드문 산길 도로에서 힘겹게 걷던 그는 비까지 내리자 절망감에 빠졌다.

‘콜택시라도 불러야 하나? 여길 어떻게 설명하지?’

다급함에 핸드폰을 뒤적이며 콜택시회사를 검색하는 그의 눈에 곡선으로 휘어진 도로 끝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자동차의 불빛이 느껴졌다. 그는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갑자기 속도를 올린 자동차는 쿠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흙탕물을 튀기며 그를 스치듯 지나갔다.

‘허엇, 하마터면 칠 뻔 했잖아, 이런 시골 도로를 왜 저렇게 거칠게 달려? 허유, 물 다 튀겼네.’

히치하이킹을 포기한 그가 다시 핸드폰을 뒤적이는데 커다란 승합차 한 대가 어느새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어디까지 가요?”

운전석 창문을 내리며 한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려던 그는 순간, 가려던 목적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힘들게 세운 차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던 그는 가까운 마을 아무 곳이나 데려다 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저는 귀곡리까지 가는데, 괜찮아요?”

“네, 어디든 마을이라면 좋습니다.”

여자는 조수석 문을 열려는 영훈에게 다급히 물었다.

“태워드릴 수는 있는데, 혹시 현금 만 원 있어요?”

“네? 만원이요?”

“실은 제가 주유를 해야 하는데 조금 모자라서요, 호호.”

여자는 머쓱한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만 원 있어요, 드릴게요.”

이런 산길에서라면 택시를 타더라도 몇 만 원은 나올 거라 예상했던 그는 흔쾌히 대답했다. 택시를 타면 카드를 쓸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주머니에 딱 만 원의 현금이 있었다.

“그럼, 타세요.”

여자는 팔을 뻗어 흔쾌히 차문을 열어주었다.

 

‘호오, 대단한 미인이잖아?’

몸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고 차에 올라 탄 영훈은 여자의 외모에 깜짝 놀랐다. 백지장같이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그리고 투명하리만치 맑은 눈, 모든 것이 신비롭도록 아름다웠다.

“학생인가요? 대학생?”

“네.”

“여행 중인가 봐요?”

“네, 어쩌다보니 길을 잃어서.”

“어휴, 비도 오는데 고생했겠네.”

운전 중 슬쩍슬쩍, 그녀는 애처로운 눈길로 영훈을 바라보았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자주 있는 일이에요. 아무튼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각자 할 일을 하는 건데요, 뭐.”

‘각자 할 일이라니? 무슨 소리야?’

그는 의문이 들었지만 따져 묻지는 않았다.

“아, 저기 제 단골 주유소가 있어요. 주유하고 가죠.”

차는 낡은 간판이 삐딱하게 달린 귀문 주유소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는 여자가 주유소 안으로 진입하는 사이에 힐끗 연료게이지를 봤다.

‘뭐야? 기름이 반 이상 남았는데, 공짜로 태워주기는 아까웠나 보네.’

여자가 주유기 옆에 차를 세우자 모자를 눌러쓴 나이 든 남자가 운전석 옆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어이쿠, 오늘은 젊은 남자 손님이네요? 어쩌다가.”

“호호, 그러게요. 덕분에 귀문 주유소에 또 들렀네요.”

“늘 하던 대로 만원이죠?”

“네. 얼른 가야 하니까 빨리 넣어주세요.”

‘손님이라고? 역시 불법 영업하는 여자였던 거야, 참.’

영훈은 자신을 옆에 두고도 버젓이 그런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이 어이없었지만 모른 척 넘어갔다. 어쨌든 그의 입장에서도 돈이 절약되었으니 불만은 없었다. 어느새 주유를 마치고 차는 다시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올해 몇 살이에요?”

“네, 스물두 살이요.”

“어머, 좋은 나이네요?”

그녀는 슬쩍, 영훈을 돌아보며 또다시 애처로운 눈빛을 지었다.

‘뭐야, 이 여자?’

영훈은 그런 여자의 태도에 찜찜한 기분이 들어 자꾸 시계를 확인했다. 위치를 확인하려 핸드폰으로 귀곡리를 검색했는데 웬일인지 그런 마을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고 그는 점점 더 조급해졌다.

“귀곡리는 아직 멀었나요?”

영훈의 질문에 내내 상냥하던 여자가 갑자기 차갑게 쏘아붙였다.

“뭐가 그리 급해요? 빨리 가서 좋을 것도 없을 텐데.”

차를 얻어 탄 주제에 너무 재촉했나, 생각이 들어 머쓱해진 영훈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이상하다. 아까 지났던 길 같은데.’

산길이라 착각일수도 있지만 아까 보았던 표지판을 다시 본 것 같은 생각에 영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주유소에 들렸다가 계속 직진만 했는데. 갈림길도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던 영훈은 더욱 집중해서 창밖의 풍경과 표지판을 살폈다.

“주유 좀 하고 갈게요.”

“또 주유를 해요?”

영훈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그녀는 주유소 입구를 향해 차를 돌렸다. 제멋대로인 여자의 행동에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하는데 한 남자가 차 옆으로 다가왔다.

“어이쿠, 아까 그 분이네요? 이번에도 만 원 넣습니다, 이제 두 번째니 귀곡리까지 한 번 더 남았네요.”

그제야 영훈의 눈에 귀문 주유소라고 적힌 간판이 들어왔다. 똑같이 반복되는 상황에다 남자의 알 수 없는 말까지 더해지자 영훈은 불안해졌다. 영훈이 의심의 눈초리로 여자를 바라보자 여자는 태연한 얼굴로 영훈에게 말했다.

“뭐해요? 만 원 줘야죠?”

“아까 드렸잖아요. 더는 현금이 없어요.”

역시 불법 영업하는 택시에 걸려든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 영훈은 여자의 뻔뻔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태워 줄 가치도 없는 인간이구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여자는 거칠게 차를 몰아 처음 영훈이 탔던 길가에 차를 세웠다. 어느새 비가 그친 도로에는 질척하게 비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귀곡리에 그렇게 쉽게 갈 줄 알았어요? 적어도 귀문을 세 번은 거쳐야 하는데, 차비가 없으니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영훈은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여자와 계속 함께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꾸 없이 차에서 내렸다.

‘뭐야, 귀문을 세 번 거친다니, 결국 삼만 원을 뜯어낼 생각이었던 거야? 이상한 여자한테 걸려서 괜히 시간 낭비만 했네.‘

휑, 하고 질주하는 여자의 차를 보며 영훈이 한숨을 돌리는데 발밑에서 뭔가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어, 왜 이러지?”

그는 멍한 얼굴로 어둠속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허억, 이게 뭐야?”

뜨거운 열기와 함께 시뻘겋게 달아오른 땅바닥이 영훈을 집어삼킬 듯 일렁이고 있었다. 신발 밑창이 녹아내리는 느낌에 영훈은 필사적으로 몸을 지탱하며 산 쪽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내달려도 일렁이는 도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지?’

절망스럽게 외치며 안간힘을 썼지만 어둠이 내린 도로에는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일렁이던 도로는 용광로처럼 달아오르다 급기야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허어어억! 뜨거워! 뜨겁다고! 아악, 안 돼!’

녹아내리는 땅에 두 발을 꼭 붙잡힌 채 영훈의 몸도 녹아내렸다.

 

다음 날 아침,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 한 대가 같은 장소에 멈춰 섰다.

“하 참, 벌써 이 도로에서 죽은 사람이 몇 번째야?”

“그러게, 근데 어떤 시신은 멀쩡하고 어떤 시신은 이렇게 녹아내리고, 도대체 무슨 사고가 난거야?”

경찰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밤, 어둠이 내린 도로에 멈춰선 승합차가 누군가를 태우고 귀문주유소에 들어섰다.

“어이쿠, 요즘은 자주 뵙네요? 호오, 오늘 손님은 임산부신가?”

모자를 눌러쓴 나이든 남자가 자동차 주유구에 노즐을 끼우며 히죽히죽 웃었다.

“임산부면 한 명이라고 해야 하나? 두 명이라고 해야 하나? 헷갈리네.”

남자가 운전석의 여자와 조수석의 임산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만 원 주세요.”

“네, 여기.”

임산부가 운전석의 여자에게 이만 원을 건네자 남자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럼 이만 원 넣습니다. 오늘은 귀곡리 두 분 입장.”

조수석에 앉아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여자는 운전석의 여자를 바라본 채 불안함에 몸을 떨었다.

 

이 작품은 유튜브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youtu.be/HtbvVjoNN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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