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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가 제 고모 댁에 가고 나니 오늘 하루만큼은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으려니 그 동안 바삐 살며 외면했던 외로움이 밀려왔다.
- 언니, 이제 재혼하셔도 되잖아요? 연지도 이제 초등학생 되고.
연지를 데리러 온 연지 고모가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 주었다.
- 아이, 아가씨 별 소릴 다 한다. 나는 우리 연지밖에 없어요. 연지라도 있으니 이렇게 살 수 있는 거라고요.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남편이 죽었다고 평생 혼자 사는 여자가 어디 있냐고 타박하기도 하지만 나는 결심을 굳힌 지 오래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는 남편밖에 없었고,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지금은 그가 내게 남기고 간 최고의 선물, 우리 연지밖에 없다. 세상에는 나처럼 오직 단 하나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 다녀오겠습니다.
연지는 제 고모 집에 가면서 유치원에서 배운 배꼽인사를 했다. 사랑스럽기만 연지의 볼에 나는 쪽, 뽀뽀를 했다.
- 고모 말 잘 듣고, 엄마가 내일 일찍 데리러 갈게, 알았지?
- 응, 엄마.
고모를 좋아하는 연지는 뒤도 안 돌아보고 고모의 자동차를 타고 가버렸다. 나는 그런 연지가 귀여우면서도 괜스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주책이지, 일곱 살 먹은 딸내미를 상대로 질투를 하다니.’
연지가 가고, 밀린 집안일을 하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저녁을 라면으로 때운 나는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꺼내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난 저녁 내내 인터넷을 하고 TV를 보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혼자라는 생각 때문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고 오늘따라 혼자 눕는 침대가 더 크고 쓸쓸해 보였다.
‘잠도 안 오는데, 와인이라도 한 잔 마셔볼까?’
남편과는 가끔 와인을 마시며 두런두런 세상사는 얘기를 하곤 했었다. 나는 재즈를 틀어놓고 거실 소파 밑에 앉아 느긋하게 와인을 마셨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다음 날 낮 12시가 되어 있었다. 한 번도 이렇게 늦잠을 잔 적이 없었던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별일이네.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는데 늦잠이라니, 그래도 일요일이라 다행이다. 평일이었으면 꼼짝없이 회사에 지각할 뻔 했잖아.’
나는 서둘러 씻고 나서 연지를 데리러 연지 고모의 집으로 향했다. 아직도 운전면허가 없는 나는 지하철을 타고 연지 고모가 살고 있는 방배동의 고급 빌라에 도착했다.
- 누구세요?
- 아가씨, 저예요.
- 네, 누구요?
‘어? 내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리 없는데, 게다가 인터폰으로 얼굴도 보일 텐데, 이상하네.’
- 저라고요. 연지 엄마.
- 누구신데 장난치세요? 연지 엄마는 벌써 왔다 갔다고요.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연지 엄마가 왔다 갔다니? 난 분명 여기 있는데.’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 빌라 입구에 서서 나는 계속 벨을 누르며 연지와 연지 고모를 불렀다. 하지만 연지 고모네 집 식구 누구도 나를 상대해주지 않았고 나는 온갖 불안한 생각에 휩싸여 한참을 건물 입구에 서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자 연지 고모가 가득 채운 쓰레기봉투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나는 부리나케 연지 고모에게 달려갔다.
- 고모, 나예요. 연지 엄마!
꽁꽁 언 손으로 연지 고모의 팔을 붙잡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 누구신데 자꾸 연지 엄마라고 그러세요. 얼굴은 그 모양을 해 가지고. 어서 가세요! 계속 이러면 경찰 부를 거예요!
그녀는 낯선 사람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그녀에게 따라붙었다.
- 연지 고모 정말 왜 이래요? 나한테 왜 이래요?
- 연지는 엄마 따라 집에 갔다니까, 당신이야말로 왜 이래!
그녀는 경멸하듯 냉랭한 눈빛만 남기고 휑하니 들어갔다. 납득이 되진 않았지만 연지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에 나는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경멸의 눈빛으로 자꾸 나를 힐끔거렸다.
‘다들 왜 이러지? 내가 너무 부스스하게 나와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낮에 지하철을 탔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현관 번호 키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간 나는 거실에 앉아 태연하게 블록 놀이를 하는 연지를 발견했다. 고모의 말대로 먼저 집에 돌아온 연지를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아, 우리 연지 여기 있었구나!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하지만 연지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 연지야, 왜 그래?
놀란 내가 연지에게 다가가는데 주방에서 달려 나온 한 여자가 먼저 연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나와 그 여자는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바라보며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 왔군요, 당신. 기다렸어요. 자, 외투를 벗고 거울을 봐요.
그 여자는 연지를 달래 방으로 들여보낸 후 나를 향해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달래는 듯한 여자의 말에 이끌려 외투를 벗고 욕실 거울 앞에 섰다.
- 허억!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몸은 온통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 이제 나를 봐요.
그 여자는 내 옆에 나란히 서서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었다.
-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거울 안에는 그 여자의 모습이 비치지 않았고 그림자 또한 찾을 수 없었다. 순간, 여자가 빠른 손길로 내 목을 잡아챘다.
- 이제 내 안으로 돌아와 줄래?
나는 컥컥 소리치며 발버둥 쳤지만, 그녀의 손아귀에 잡힌 내 검은 몸은 그녀의 몸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본 작품은 유튜브 소리나는 책방에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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