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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곳에 가게 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거기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 일은 내가 이십대 초반, 친구 커플과 강원도의 한 계곡으로 캠핑을 갔을 때의 이야기다. 두 커플은 놀러 가기 전에도 자주 만나던 사이라 네 사람은 오래된 친구처럼 편했다. 계곡에 도착한 우리는 4인용 텐트를 치고 저녁으로 삼겹살과 소주를 마셨다. 밤이 깊어지자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우리는 텐트 밖에 나란히 누워 별 구경을 했다. 가끔 모기가 살을 물어뜯었지만 사랑하는 여자친구,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 녀석 커플과 함께 하니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렇게 잠시 낭만에 젖어 있던 중, 갑자기 친구 녀석이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아까 계곡 아래 슈퍼 갔다가 들었는데, 저기 아랫마을에 흉가가 있다던데?”
“어머, 진짜요?”
의외로 나의 여자 친구 영지가 종호 녀석의 이야기에 반응을 보였다.
“흉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종호가 발끈, 하며 달려들었다.
“야, 김민수, 너 그러면 나하고 같이 가 볼래?”
“거길 왜 가냐? 여기기 이렇게 시원하고 좋은데.”
“겁나냐?”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그 때는 쓸데없는 걸로 자존심을 내세우며 서로 옥신각신했다.
“겁은 무슨? 귀신을 믿는 사람이나 겁나지, 내가 겁날 리는 없잖아.”
“그래? 그럼 내기 할래?”
여자 친구 앞에서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다 점점 일이 이상하게 꼬여갔고 우리는 내기에서 지는 사람이 여자 친구와 함께 흉가에 가서 자고 오기로 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단순한 말 잇기 게임이었는데 결국 내가 걸려 졸지에 영지와 함께 멀쩡한 텐트를 두고 흉가에 가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영지야, 넌 그냥 텐트에서 자. 오빠 혼자 다녀올게.”
차마 여자 친구를 그런 데서 재울 수는 없어 나는 호기롭게 말했다.
“민수야, 그냥 겁난다고 해. 그럼 없던 일로 해 줄게.”
종호 녀석이 약 올리듯 얄밉게 깐족대지만 않았어도 은근슬쩍 눌러앉으려던 나는 여자 친구 앞에서 비굴하고 비겁한 남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 침낭을 매고 일어섰다.
“됐어, 이깟게 뭐라고. 내일 아침에 보자.”
“정말, 혼자 가도 괜찮아?”
영지가 걱정스런 얼굴로 울먹이며 물었다.
“그럼, 괜찮아. 걱정 말고 푹 자.”
나는 침낭을 맨 채 어둠이 내린 산 아래쪽 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호기롭게 오긴 했지만 막상 흉가로 가려니 괜히 마음이 찜찜했다. 마을이라지만 워낙 인적이 드문 산 쪽에 위치한데다 산짐승 울부짖는 소리도 가깝게 들려 오싹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귀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안 믿는 나로서도 괜스레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오래된 집에서 하루 자는 거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과 다르게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아, 그냥 돌아갈까?’
산을 내려와 흉가로 향하는 좁은 황톳길로 접어들면서 나는 고민을 했다. 시골의 밤은 깜깜하기 이를 데 없었고 가로등마저 모두 꺼져 있어 작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망설임 끝에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민수 오빠, 같이 가!”
‘어, 이건 영지 목소린데!’
소리를 향해 손전등을 비추니 침낭을 옆구리에 낀 채 영지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영지야!”
나는 영지의 배려에 감동 받아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아무래도 걱정돼서.”
“역시, 날 생각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나는 영지의 손을 꼭 붙잡고 종호가 알려준 흉가 쪽으로 걸어갔다.
“영지야, 우리 그냥 다른 데 가서 자고 올까? 모텔 같은데서?”
혼자라면 몰라도 영지와 함께 흉가에서 밤을 보낸다는 게 나는 영 꺼림칙했다.
“그런데, 종호 오빠가 인증 사진 꼭 찍어오라고 하던데?”
‘빌어먹을 자식.’
나는 어쩔 수 없이 영지와 흉가로 향했다.
“어…정말 으스스하다.”
흉가 앞에 선 나는 쓰러져가는 지붕을 올려다보며 한기를 느꼈다. 오래된 기와는 다 낡아서 깨져 있었고 건물을 지탱하는 서까래와 기둥도 허물어지기 직전이었다. 하늘은 깜깜했고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는 더욱 을씨년스레 들려왔다.
‘아, 정말 무서운 곳이네.’
내가 침을 꼴깍 삼키며 기와집 안마당으로 들어가자 영지도 바짝 내 뒤에 따라왔다. 나는 얼른 인증 사진을 찍고 돌아갈 생각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삐그더어엉!”
그 때 갑작스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냅다 대문의 문고리를 잡아챘다.
“휴우, 괜히 쫄았네. 바람이었나 봐.”
“그러게.”
나는 바람에 닫힌 대문을 다시 열어 놓고 인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쯤 했으면 됐겠지?’
사진을 찍은 내가 다시 캠프로 돌아가려 몸을 돌리는데 유심히 집을 관찰하던 영지가 의외의 말을 던졌다.
“우리 그냥 여기서 자고 갈까, 오빠? 왠지 스릴 있을 것 같은데?”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영지였지만 이런 스릴까지 좋아하는 줄은 몰랐던 난 갑작스런 영지의 제안에 당황스러웠다.
“영지, 넌 안 무서워?”
“아니, 오빠랑 있는데 뭐가 무서워? 무서우면 오빠 꼭 끌어안으면 되지.”
영지의 말에 내가 너무 쫄보 같이 굴었나 하는 창피함이 밀려왔다. 나는 거침없이 앞서 가는 영지를 따라 얼떨결에 마루까지 올라갔다. 삐거덕거리는 마루소리가 낡은 천장 가득 소름 끼치게 울렸다.
“이제, 그만 우리…”
그만 돌아가자고 영지에게 얘기하려는 순간, 무언가 우리 앞으로 빠르게 휙, 날아갔다.
“저, 저거 뭐지?”
“그러게. 저거 뭐야?”
내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쿵덕거리기 시작했고 그제야 영지도 겁이 났는지 바짝 내게 붙어 섰다. 영지의 숨소리와 향기가 가까이 전해오자 무서운 와중에도 몽롱하게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영지를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난 없던 용기까지 솟아났고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난 방문을 차례대로 열었다.
“삐그으더엉.”
아귀가 맞지 않는 문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났지만 막상 방안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말끔한 상태였다.
“여긴 괜찮은데, 여기서 자면 되겠다.”
꼼꼼히 방 구석구석을 비춰본 영지가 그렇게 얘기하자 나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캠핑을 올 때만 해도 4인용 텐트에 모두 모여 남자 둘, 여자 둘 패가 갈려 잘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단 둘이 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어느새 두려움은 싹 가셨다. 그녀와 처음으로 보낼 밤이 흉가라는 게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같이 있게 된 게 더 없이 흥분되었다.
“그래, 마루에 가서 침낭 가져올게.”
나는 마루에 기대 놓았던 침낭을 가지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오빠, 이렇게 용감하고 멋있는 사람인 줄 몰랐어.”
방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영지가 기습키스를 해왔다. 진한 키스를 하며 난, 게임에서 진 게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영지야, 영원히 사랑해.”
뜨겁고 긴 키스를 나눈 뒤 나는 영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응…나도…”
자그마한 영지가 나를 올려다보며 다정스레 말했다. 그런데, 어둠 속 그녀의 얼굴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통통하던 얼굴이 수척해 보였고 얼룩덜룩, 얼굴 여기저기 뭔가가 묻은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을 닦아주려고 영지를 향해 손전등을 비추었다.
“허어억!”
영지의 얼굴에 불빛이 닿자마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자빠졌다. 나와 방안에 함께 있던, 뜨겁고 긴 키스를 나눈 그녀는 영지가 아니었다. 비쩍 마른 낯선 여자가 얼굴 가득 피를 흘리며 내 앞에 서있었다. 불현듯 나는 손등으로 나의 입술을 훔쳐보았다.
“으아아악!”
손등 위 얼룩덜룩한 붉은 피를 본 나는 괴성을 지르며 방을 뛰쳐나갔다. 미끄러지듯 마루를 뛰어 내려가다 턱, 발을 헛디딘 나는 마당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아악...내 다리...”
다리를 겹질린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방을 바라보았다. 스르륵, 얼굴에 피를 흘리던 여자가 공기를 가르듯 서서히 내게 다가왔다.
“어딜 가려고 그래? 영원히 사랑한다고 했잖아.”
허공에 붕, 몸을 띄운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나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어억...살려줘...”
숨통을 조이는 그녀를 바라보던 난, 어느 순간 기절하고 말았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다음 날 새벽, 한 묘지 앞에서였다. 함께 캠핑을 온 일행과 마을 사람들이 나를 발견해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너, 왜 여기서 자고 있냐? 밤새 찾았잖아?”
눈을 뜨자마자 종호가 나를 내려다보며 핀잔을 주자 그 옆에 서 있던 노파가 한마디 했다.
“이 총각 홀렸구먼. 홀렸어.”
“홀리다니요…”
“총각이 누워있는 묘지가 남자에게 배신당해 죽은 처녀 무덤이거든. 총각을 데려가려던 모양이네, 여기까지 끌고 온 걸 보면.”
‘끌고 왔다고?’
나는 어리둥절한 상황에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나서 일어서려 했다.
“아악…다리…”
꿈인가 했던 지난밤의 일이 다리의 통증으로 되살아났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등에는 온통 진흙투성이고?”
영지가 울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등을 보니 영지의 말대로 정말 잔뜩 흙이 묻어있었다.
‘흉가에서 여기까지 끌려 온 건가?’
나는 영지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지난밤을 떠올렸다.
“어제 분명히 영지랑 같이 흉가에 갔는데...갑자기 그 여자가...”
“무슨 소리야, 오빠? 나 계속 계곡에 있었는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노파가 혀를 끌끌 차며 나에게 다가왔다.
“이 봐, 총각 얼른 집에 돌아가서 찬물로 세 번 몸을 씻고, 이 무덤 쪽을 향해 세 번 절을 해. 그래야 이 처녀 귀신이 떨어져 나갈 테니.”
“떠, 떨어져 나가다니요?”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묻자 노파는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총각 볼에 뽀뽀하고 있잖아. 그 귀신!”
노파의 말을 들은 나는 다시 바닥에 쓰러져 기절했고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이후 일행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나는 노파의 말대로 몸을 씻고 절을 했다. 하지만 얼마 뒤 여자 친구 영지는 이유도 없이 날 떠나갔고 그 이후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십여 년이 지나 삼십대 중반이 된 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 이름 모를 여자를 마주하며 아직도 그날 일을 후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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