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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공포 소설

무인도의 세 커플

by 배작가 2021.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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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커플이 무인도에 도착한 건 정오가 막 지난 때였다. 그들을 내려준 파란 통통배의 선장은 다음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후, 돌아갔다.

, 진짜 여기 우리들뿐이네.

처음 여행을 계획하고 제안했던 진우가 자신의 대학 동기인 호철과 영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무 좋다. 오빠.

진우의 여자친구 미소가 탄탄하게 벌크업 된 진우의 몸에 기대며 애교스럽게 말하자 호철과 영민의 여자친구들도 지지 않겠다는 듯 각자 남자친구의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았다. 그들은 해변 한쪽에 각자 하나씩, 세 개의 텐트를 치고 짐을 풀었다.

우리 일단 수영부터 할까?

진우가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아내며 모두에게 제안하자 그들은 수영복을 갈아입은 후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다. 넓게 펼쳐진 크림색의 모래밭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고 코발트 빛 바다 또한 아름답게 일렁였다. 바다 끝 멀리서 서서히 밀려오는 먹구름을 인지할 새도 없이 그들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놀기에 바빴다. 서로 경쟁적으로 각자 커플의 애정을 과시하며 부둥켜안은 채 물을 튕겨가며 물놀이에 정신이 팔린 그들은 변덕스런 구름의 움직임을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먹구름은 그들의 머리 위 하늘까지 새카맣게 뒤덮었고 금세 바다는 거친 파도가 점령했다.

뭐야, 하늘이 갑자기 왜 이러지?

그들 중 한 명이 심상찮은 낌새에 소리를 질렀을 때, 이미 그들은 모두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뒤였다.

어어어!

아아악!

살려줘!

인적 없이 고요하기만 했던 무인도 앞 바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누구랄 것 없이 각자 거친 파도와 싸우며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크어어헉!

가까스로 폭풍우를 헤쳐 나온 진우는 해변을 기어 모래사장 위에 다다랐다.

오빠, 괜찮아?

진우가 입 안 가득 찬 바닷물을 토해내며 모래사장에 엎드려 정신을 차리는데 여자친구 미소가 그에게 다가왔다.

미소야무사했구나.

진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다른 친구들도 모두 빠져 나왔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해변 여기저기, 짜디짠 바닷물을 토해내며 바닥을 기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미소 넌, 역시 수영 선수 출신이라 멀쩡해 보이는구나.

나도 겨우 빠져나왔어. 무인도라 그런가, 파도가 무시무시하네.

대낮인데도 어둑하게 어둠이 내린 해변에는 곧 무섭게 비가 쏟아졌고 그들은 서둘러 각자의 텐트로 들어갔다.

휴우, 죽는 줄 알았네. 미소 너와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

진우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정스레 미소를 껴안았다. 그런데, 품에 안은 미소의 몸이 여느 때와 달리 느껴졌다.

뭐지, 이 낯선 느낌은?

미소 또한 이상한 듯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 오빠 몸이...왜 이러지?

진우는 다시 확인하려는 듯 이번엔 그녀의 손을 잡았지만 그의 손은 허공에서 맴돌 뿐 그녀의 손을 느낄 수 없었다.

, 왜 이러지? 내 손이...

갑작스레 닥친 알 수 없는 상황에 충격을 받은 진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물에 빠지면서 오빠 몸이 이상해졌나 봐. 일단 다른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자.

진우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달라진 몸에 대해 고민에 휩싸인 채 텐트 구석에 웅크려 앉았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날이 개어 모두들 다시 밖에 나왔지만 그는 텐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세 개의 텐트 중앙에 마련된 그늘막에 모두 모여앉아 그들 부르는데도 그는 침낭을 뒤집어 쓴 채 텐트에 머물렀다. 심지어 저녁식사마저 거르자 근심이 된 호철이 그의 텐트로 들어왔다.

너 밥도 안 먹고 왜 그러고 있냐? 아까 물에 빠진 것 때문에 그래?

호철아, 나 몸이 안 좋아서 좀 쉴게. 이만 나가 줘.

호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꾹 눌러 닫은 후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그를 찾은 영민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의 즐거움은 모두 사라지고 불안과 초조에 혼자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무인도에는 밤이 찾아왔고 새까만 하늘에 총총 별이 떴다. 늦도록 이어지던 술자리가 끝나고 모두 각자의 텐트로 돌아간 듯 고요가 찾아오자 잠든 미소를 남겨둔 채 진우는 슬며시 텐트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이 그의 머릿결을 흩날리며 스쳐지나갔다.

이렇게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데 왜 미소를 안을 수가 없는 거지?

낮 동안 덥혀진 모래사장은 어느새 차디차게 식어있었고 진우는 홀로 모래위에 앉아 별을 바라보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만...

모든 게 혼란스러웠고 납득이 되지 않았다.

, 진우 드디어 나왔구나. 몸은 좀 괜찮아?

잠에서 깨 볼일을 보러 나온 호철이 진우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건드리며 말을 건넸다. 하지만 호철의 손은 허공에서 맴돈 채 진우의 어깨를 통과해버렸다. 놀란 호철은 뒤로 주춤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진우...네 몸...왜 이래...

귀신이라도 본 듯 기겁을 한 호철이 자신의 텐트로 도망치듯 돌아가자 진우는 절망에 휩싸였다.

...혹시...죽은 건가?

잠시 몸에 이상이 생긴 거라고 믿고 있던 진우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아니, 믿고 싶던 한 줄기 희망이 호철로 인해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며 텐트로 돌아온 진우는 텅 빈 텐트 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고 있던 미소가 사라진 것이다.

이 밤에 어디 간 거야?

미소를 찾아 다시 텐트 밖으로 나온 진우는 호철의 텐트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왜 여기 있어?

호철의 텐트 안에는 진우를 뺀 나머지 일행 모두가 모여앉아 있었다. 그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색한 침묵에 잠겼다. 모두들 진우의 눈길을 피하자 텐트 안에는 싸늘한 공기가 흘렀고 불현 듯, 진우는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니들 왜 그래? 아무리 그래도 난 너희 친구라고! 너무한 거 아니야?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진우가 서운함에 버럭 소리를 지르자, 호철과 영민의 여자친구가 울음을 터뜨렸다. 호철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달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우리도 아무렇지 않을 순 없잖아.

호철이 나서자 영민 마저도 한마디 했다.

...계속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이렇게 구천을 떠돌면..........

영민의 말에 핑, 이성을 잃은 진우는 그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들었지만 역시, 그의 손은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오빠, 미안. 우리도 처음 겪는 일이라...너무 무서워서 그래. 이해해줘.

애절함이 담긴 미소의 떨리는 목소리에 진우는 탁, 맥이 풀리면서 말없이 텐트를 나왔고 홀로 어둠이 내린 해변을 거닐며 밤을 보냈다.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자 치밀던 분노는 차츰 가라앉았고 지난 이십여 년 간의 삶을 하나씩 떠올리며 마음의 정리를 하자 한결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그렇게 새벽 어스름이 되고 날이 밝자 뜬눈으로 날을 새운 일행들도 텐트에서 나와 서둘러 짐정리를 하고는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해변에 모여 앉았다. 미소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쉽게 다가갈 수가 없어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바다 끝 어스름, 통통배의 깃발이 보였다.

배가 온다!

전날 타고 왔던 파란 통통배가 보이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호철이 소리를 질렀고 모두들 일어나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영원히 이별이구나.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하면 좋으련만.

점점 다가오는 배에 모두들 우르르, 달려가자 진우도 해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어제 폭풍이 대단했지요? 걱정이 되서 좀 일찍 왔습니다.

파란 통통배는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고 전날 태워다주었던 선장의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인사도 없이 배에 오르려는 다섯 친구를 바라보며 진우가 슬픔에 잠겨있는데 저 멀리서 또 한 척의 거대한 배가 소리도 없이 빠르게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어느새 파란 통통배 곁에 멈춰선 거대한 검은 배 위에서 검은 망토를 걸친 사신이 이쪽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어이, 너희들은 이쪽이야, 이쪽!

통통배에 짐을 실으려다 우뚝 멈춰선 다섯 명이 의아한 눈길로 검은 배를 바라보자 검은 망토의 사신이 휘리릭, 그들에게 검은 밧줄을 날렸다.

아아악!

비명 속에 끌려가는 그들을 향해 진우가 서둘러 달려갔지만 미소도, 친구들도, 붙잡을 수 없었다. 파란 통통배의 선장이 달려가는 진우를 향해 소리쳤다.

근데 다른 일행 분들은 어디 계세요? 어제는 여섯 명이었는데 왜 혼자...

선장의 질문에도 진우는 멍하니, 검은 배 위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간절하게 진우를 바라보는 미소의 볼 위로 반짝,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날의 거친 폭우에 아수라장이 된 해변을 바라보며 선장이 나직이 읊조렸다.

아침에 시신 다섯 구가 떠올랐다더니...설마.....

선장은 망신창이가 된 진우를 부축하고 배에 올랐다. 옆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대며 공중에 떠오른 검은 배는 미소와 친구들의 애절한 비명을 남긴 채, 쏜살같이 바다 저 멀리로 사라졌다. 하염없이 그들을 부르며 울부짖는 진우의 통통배도 육지를 향해 바다를 가르며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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