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스테리 공포 소설

위험한 심부름

by 배작가 2021. 3. 16.

소리나는 책방의 모든 작품은 창작입니다. 저작권 침해시 법적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부모님 집에 얹혀 지내는 그는 오늘 밤도 드라이브에 나섰다. 부모님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마다 잔소리를 피해 집을 나와 하는 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에이 씨, 왜 이렇게 안 가!

그는 조금이라도 앞 차가 느리게 간다 싶으면 경적을 울려대며 앞지르기, 칼치기 등을 밥 먹듯이 했고 그러다 시비가 붙으면 트렁크에 늘 구비하고 다니는 야구방망이로 상대를 위협하곤 했다. 오늘밤도 그의 일상은 다르지 않았다.

빌어먹을 자식이, 감히 나를 추월해?

그는 자신을 앞서 휑하니 달려 나간 검은색 경차를 뒤쫓았다.

? 이 놈 봐라, 제법인데? 하지만 나한테는 안 되지!

그는 자신이 모는 구형 스포츠카의 스피드를 최대로 높여 따라갔다.

위휘이!

괴성을 지르며 스피드에 도취된 그는 어느새 검은색 경차 옆으로 붙어 창문을 내렸다.

, 인마! 차 안 세워?! 차 세워!

그는 창문 밖으로 팔을 휘저으며 차를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검은색 경차는 멈추지 않고 달렸고 급기야 그는 경차 앞을 막으며 브레이크를 밟아 진로 방해를 시도했다. 위협적인 그의 태도에 결국 검은색 경차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는 먹잇감을 잡은 사냥꾼처럼 트렁크의 야구방망이까지 챙겨 경차를 향해 다가갔다.

운전 똑바로 해야 될 것 아냐!

그는 야구방망이로 까맣게 썬팅 된 창문을 툭툭 치며 내리라는 시늉을 했다. 잠시 후,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에서 사람이 내렸다.

, 뭐야!

작디작은 경차에서 족히 190은 될 만한 거구의 사내가 내렸고, 그가 주춤하는 사이, 운전석에서도 비슷한 덩치의 사내가 내렸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되지.

그는 야구방망이를 든 손에 힘을 주고는 눈을 부릅떴다.

꼬마야, 설마 그걸 휘두르려고?

운전석에서 내린 거구의 남자는 가소롭다는 듯 씨익,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 왜 이렇게 소름끼치지.

웬만한 것에 겁을 내지 않는 그는 조폭 여럿과 시비가 붙었을 때도 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덩치에 상관없이, 이들이 풍기는 무언가가 이미 그의 약호를 꺾어놓았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며 두 명의 거구를 훑어보았다.

이 사람들 도대체 정체가 뭐야…’

한 명은 깎아지른 짧은 머리, 다른 한 명은 길게 기른 머리를 뒤로 묶은 꽁지머리, 두 명 모두 검은색 생활한복에 흰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조폭은 분명 아니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오싹하지?

그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강한 어조로 내질렀다.

너희들, 오늘 다 죽었어!

그는 닥치는 대로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방망이는 허공만 휘저을 뿐,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고 오히려 방망이를 뺏긴 채 바닥에 꿇어앉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굴욕적인 자세로 그들의 주먹과 발길질이 그에게 내리꽂혔다. 속수무책 두들겨 맞은 그의 입과 코에서는 어느새 흥건히 피가 흘렀다.

기세도 없는 놈이 성질만 있어 가지고.

짧은 머리의 거구가 그의 뺨을 툭툭 치며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왜 이렇게 오금이 저리지? 도저히 대항을 못 하겠어, 젠장.

가진 거라고는 오기와 깡뿐인 그가 이렇게 깨지고 나서도 두려움만 들자, 그는 전의를 상실한 채 고개를 숙였다.

꼬마야,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심부름 좀 해야겠다.

, 심부름이요?

그래, 우리가 너랑 이렇게 노닥거리는 사이에 시간을 많이 뺏겼어. 그러니까 네가 그 값을 해야지.

그는 어리둥절했지만 빨리 이들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순순히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좋아. 그럼 너, 이거 봉천동 박사장한테 전해라.

그들은 비단으로 꽁꽁 싸인 액자를 하나 주었다.

절대 비단 보자기를 풀면 안 돼. 할 수 있겠지?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액자 안의 그림을 보거나, 제대로 전달을 못하면, 큰 일 날줄 알아. 명심해!

, 알겠습니다.

두 명의 거구는 비단으로 싸인 액자를 건넨 후 급히 자리를 떠났다.

휴우, 정말 오싹한 놈들이네. 으으.

그는 자동차 뒷자리에 그림을 던져놓고, 그들이 알려준 주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근데, 무슨 그림이기에 그러지?

운전하는 내내 그의 호기심은 점점 커져갔다.

혹시, 값비싼 명화? 아니면, 비밀 지도? , 도대체 뭐야?

궁금증에 온갖 잡생각이 떠올라 운전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어느새 두 거구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고 슬슬 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 남의 말 듣고 살았냐, 보고 싶으면 보는 거지.

그는 봉천동에 근방에 다다랐을 때,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림 한 번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돈 나가는 거면 내가 슬쩍? 흐흐.

그는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조심스레 비단을 걷어냈다. 자동차 실내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비단에 싸여있던 그림이 드러났다.

, 이게 뭐야?

그의 두 눈이 허탈함에 잠겼다.

이 자식들, 날 엿 먹이려고!

그의 손에 들린 액자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흰 백지만이 커다란 액자 안에 있을 뿐이었다.

날 갖고 장난친 게 틀림없어!

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액자를 내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액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효과음 신비로운 사운드

뭐야, 이 빛은?

액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갑자기 그 빛이 그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어억!

여기가 어디지?

정신이 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하얀 사방의 벽이었다. 일어나 몸을 움직여 보아도 제자리걸음만 반복될 뿐, 아무 소리도 없었고, 아무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왜 이래? 사람 돌아버리겠네. 누구 없어요?

답답한 마음에 그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그의 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맴돌기만 했다.

여기가 어디냐고!

며칠 후, 비단에 싸인 액자는 다시 두 명의 거구에게 들려져 있다.

으이그, 제대로 전달하라니까 액자를 들춰 봤구만.

꽁지머리 거구가 그림을 들고 봉천동의 후미진 건물, 낡은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멍청한 녀석, 후후.

그들은 원래 그림을 배달하려 했던 박사장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 박사장. 오랜만이야. 우리가 안 와서 그냥 넘어간 줄 알았지?

그들을 보자 새파랗게 얼굴이 질린 박사장은 두 손을 싹싹 비벼가며 빌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그 벌만은 제발.

에이, 우리한테 권한 없는 거 알잖아. 다 위에서 내린 결정이지.

꽁지머리는 박사장 앞에 비단을 벗긴 흰 액자를 들이밀었다.

여기서 천년만 있다 와.  그러게 그 분 심기는 왜 건드려서, 쯧쯧.

박사장의 눈앞에 새하얗게 텅 빈 액자가 드러났다. 정확히 말하면 귀퉁이에 자그맣게, 한 남자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박사장 말동무도 하나 있으니까 심심하진 않을 거야. 하하

잠시 후, 그림에서는 눈부시게 밝은 빛이 흘러나왔고 곧 박사장도 그 빛에 끌려들어갔다.

휴우, 이제 여기 일도 끝났고, 다음 그림에 들어갈 인간은 누구지?

두 남자가 그려진 그림 액자를 비단 보자기로 정성스레 에워싼 거구의 남자가 꽁지머리 거구에게 물었다.

후후, 다음 차례는 여의도네, 또 어떤 놈이려나? 천년의 형벌을 받을 악인이!

검은 옷에 흰 고무신을 신은 두 거구는 검은색 작은 경차에 몸을 구겨 넣고는 여의도를 향해 달려 나간다.

 

 

소리나는 책방 유튜브

www.youtube.com/c/소리나는책방공포미스테리

'미스테리 공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 방에서 먹는 짜장면은 맛있다.  (0) 2021.03.20
무인도의 세 커플  (0) 2021.03.17
리모콘, 통제욕구  (0) 2021.03.15
가사 도우미  (0) 2021.03.14
낯선 물건이 내 손에  (0) 2021.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