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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마스크를 쓰고 사진 동호회에 나타나는 혜나는 어느새 남자 회원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도대체 왜 허구한 날 마스크를 쓰는 거야?”
“마스크 속은 완전 추녀인 거 아냐?”
옷이나 머리스타일도 세련된 데다 맑고 큰 눈까지, 분명 대단한 미인인 듯 한데도 절대 벗지 않는 마스크에 사람들의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혜나씨, 아무것도 안 먹어?”
실사가 끝나고 조촐하게 벌어진 회식자리에서도 그녀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제 패션의 일부에요.”
그녀는 언제나 그렇게 대꾸하며 마스크를 매만졌다.
“아무래도 혜나씨, 수염 있는 거 아냐? 인터넷 보니까 카이젤 수염 나는 여자도 있데.”
“그건 아니고, 코나 입이 끔찍하게 못 생겼을 거야.”
“혹시, 사고로 흉터라도 있는 게 아닐까?”
추측만 무성할 뿐 어느 누구도 그녀가 왜 마스크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 은근히 관심을 가졌던 성훈도 그녀의 마스크 속 얼굴이 어떤지,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잘생긴 외모에 좋은 매너로 여자 꼬시기에 실패해 본 적이 없던 성훈은 그녀의 마스크 뿐 아니라 고고한 태도에 더욱 자극을 느꼈고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동호회 남자 회원 몇이 술자리 중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어느 날 이후, 성훈은 적극적으로 혜나에게 접근했다. 쭈뼛거리며 주위를 맴도는 다른 남자 회원들과 달리 성훈은 저돌적으로 그녀에게 다가섰고 혜나 또한 그의 마음을 눈치 챈 듯 했다.
“성훈 오빠, 나 좋아해요?”
실사를 핑계로 그녀와 둘이서만 만나기를 서너 번, 어느 날 그녀는 대놓고 그에게 물었다.
‘어, 세게 나오는데?’
평소 차갑고 콧대 높은 이미지와 달리 화끈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성훈은 순간 당황했다.
“어, 어. 티 났어?”
“근데 저 연애 안 해요. 연애 생각 없어요.”
“연애를 안 한다고? 왜?”
“그것까진 알 필요 없잖아요. 괜히 힘 빼지 말라고 미리 얘기하는 거예요.”
싸늘한 그녀의 말에 성훈은 김이 빠졌다. 그동안 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제법 말도 잘 통하고 가까워졌다 생각한 터라 실망감은 더욱 컸다. 한동안 기운이 빠져있던 성훈은 우연히 다른 회원에게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혜나씨, 다른 동호회에 있을 때 사귀었던 남자가 아주 나쁜 놈이었나 봐요. 그 남자랑 헤어지고 나서 마스크 하고 다닌대요. 남자들한테 치가 떨려서.”
혜나의 얘기를 전해들은 성훈은 다시금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 상처가 있었으면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내가 싫다는 건 아니잖아?’
그는 자신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 확신하며 다시 그녀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만남이 이어질수록 그녀도 차츰 그의 매너 있고 진실한 태도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둘의 관계는 진지해졌다.
“이제 날 받아줄 수 있겠어?”
성훈의 고백에 혜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난 언제나 혜나를 아끼고 사랑할거야. 너한테 상처 줄 일 없어. 믿어도 돼.”
성훈의 간절한 고백에 결국 혜나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마음이 드디어 녹았다고 생각한 성훈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 마스크에 손을 뻗은 순간, 혜나의 손이 차갑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저리 치워요!”
날카로운 혜나의 음성에 깜짝 놀란 성훈은 머쓱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도 오빠가 좋지만 어쩔 수 없어요.”
돌아서서 달려가는 혜나의 뒤로 성훈은 소리쳐 말했다.
“마스크 안 벗어도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성훈의 간절한 외침은 결국 혜나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수는 없었지만 여느 연인들처럼 사랑을 속삭였고 마스크 위로 입맞춤도 했다. 일박으로 떠난 사진 여행에서는 근사한 호텔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물론 사랑 중에도 그녀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이 깊어지고 점점 그녀에 대한 그의 욕심이 커질수록 그는 더욱 온전히 그녀와 모든 걸 나누길 원했고 슬슬 그것들이 드러났다.
“혜나야, 이제 마스크 벗고 키스하면 안 될까? 제발.”
그럴 때마다 혜나의 얼굴은 싸늘히 변했고 그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혜나 넌 날 믿지 않는구나, 내 사랑을 믿지 않는 거야.”
토라져서 며칠씩 연락을 않는 그를 보며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난 어떤 모습이어도 널 사랑할거야, 그러니까 제발...”
성훈의 끈질긴 요구에도 결국 혜나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고 크게 싸운 어느 날 밤 이후,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동호회 모임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 혜나를 두고 성훈을 포함한 남자 회원 몇이 술자리의 안주 삼아 이야기를 꺼냈다.
“그 여자 완전 사이코라며?”
“그러니까 말이야. 키스할 때도 마스크 위로 했다며? 그럴 거면 연애를 시작하질 말지.”
성훈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맥주를 들이켰다.
“난 포기했어! 더 이상 시간낭비 안 해. 끝이야, 끝!”
“그래, 성훈이가 이정도면 우리야 뭐...그때 얘긴 없던 걸로 하자고.”
다른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를 들이켰고 며칠 후 성훈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풋풋함에 통통 튀는 매력을 풍기는 여대생 유라, 그녀에게 푹 빠진 성훈의 기억 속엔 이미 혜나의 자리는 없었다.
- 우리...좀 만나요.
새로운 연애에 빠져있던 성훈에게 뜬금없이 혜나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얘 뭐야?’
성훈은 메시지를 무시했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연락을 해왔고 계속 답이 없자 결국 그의 집 앞까지 찾아왔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만이 비추는 늦은 밤 동네 놀이터, 두 사람은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끝내요? 나 좋아한 거 아니었어요?”
“그 얘긴 끝난 거 아니야? 네가 날 믿지 못했잖아.”
“마스크 안 벗어도 괜찮다고, 이대로도 좋다고 했잖아요.”
“그건...사귀다 보면 달라질 줄 알고 그런 거지.”
헤어진 여자들에게도 언제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에 철저했던 성훈은 그새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의 책임으로 돌리고 끝내야 했다.
“결국 마스크가 문제였군요.”
“우리가 정상적인 연애를 한 건 아니잖아. 마스크 위로 키스하는 연인이 말이 돼?”
“그럼, 마스크만 벗으면 되는 거예요? 그럼 우리 다시 만나는 거예요?”
“마스크를...벗는다고?”
몰아치는 혜나를 바라보며 성훈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다른 여자를 사귄다고, 이제 우리 관계는 끝났다고 말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마스크를 벗은 그녀를 보고 싶다는 얄팍한 호기심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정말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없어요?”
“그럼, 내가 얘기했잖아. 상관...없다고.”
그녀는 말없이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미동도 없이 그렇게 앉아있던 혜나는 결심을 굳힌 듯 마스크에 손을 뻗었다. 성훈은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오늘이 우리 진짜 첫 키스한 날이 될 거에요.”
드디어 그녀의 마스크가 벗겨지는 순간, 성훈은 그 기괴한 모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귀밑까지 길게 찢어진 그녀의 입은 흉측한 흉터로 뒤덮였고 사이사이 붉은 살점이 드러나 있었다.
“자, 우리 키스해요. 오빠가 바라던 거잖아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온 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가 건네주었던 커피가 그처럼 바닥에 나뒹굴었다. 몽롱해지는 그의 머릿속에는 한 달 전, 남자 회원들과의 술자리가 떠올랐다.
“아, 답답해. 우리 내기할까? 혜나씨 마스크 정체 밝히는 사람한테 신상 카메라 렌즈 사주기, 어때?”
“오, 꽤 비쌀 텐데? 살림장만 좀 해볼까?”
“그럼 그 렌즈는 볼 것도 없이 나, 성훈님 차지네, 하하하.”
호기롭게 웃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던 그는 점점 다가오는 혜나의 찢어진 입술에 얼음처럼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전 남자친구 작품이야, 그래서 다시는 남자를 믿지 않으려 했는데...오빠는 믿어도 되겠지?”
여러 번의 수술 후에도 깊게 남은 그녀의 상처 부위에선 조금씩 진물이 흘러나왔다.
“저, 저리가!”
소리 없이 맴도는 그의 비명에 그녀는 커다란 입을 기괴하게 벌려 웃으며 다가왔다. 번뜩이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성훈의 입에서 후회와 공포의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그의 몸은 점점 차갑게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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