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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공포 소설

제사 음식은 먹지 마

by 배작가 202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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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지하도에 내려가지 않았어야 했다. 술에 취해 지하도에 내려갔어도 그 이상한 노인과 말을 섞지 말았어야 했다.

올 한 해 동안, 절대 제사음식은 먹지 마! 안 그러면 큰 화가 생길거야.

술김에 재미 삼아 사주팔자를 보는 할아버지 앞에 앉자마자 노인은 그에게 호령하듯 말했다.

에이 설마요.

설마가 사람 잡는 거 몰라? 설마 하다가 훅 가는 수가 있어. 명심해! 괜히 날 원망하지 말고!

당시 그는 그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기분이 찜찜해졌다. 큰 댁 제사에는 안 가면 그만이지만 장례식이 문제였다. 누군가 안 죽길 바라는 수밖에 없지만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성준이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친구 녀석의 전화를 받고 그는 깜짝 놀랐다. 이제 갓 60을 넘긴 성준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안 갈 수도 없고...휴우, 난감하네.

그는 어쩔 수 없이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향했고 향을 피우고 상주와 인사를 한 뒤 이미 자리를 잡은 친구들과 마주했다.

경호, 오래간만이다. 술 한 잔 해라.

다른 장례식과 다를 바 없이 가족들은 슬픔에 잠겨있고, 갑작스레 친목모임을 갖게 된 사람들은 저마다의 술자리를 이어갔다.

넌 왜 아무것도 안 먹어? 술이라도 한 잔 해.

자꾸 재촉하는 친구들 때문에 그는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만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얌마, 새벽에 무슨 일이 있어? 이 자식 이상하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놈이 술 한 잔도 안 마시고.

그는 은근슬쩍 꽁무니를 빼고 일어났다. 사실대로 얘기하자니 친구들의 비웃음을 살 것 같고, 그렇다고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 후로도 더러 장례식이 있었지만, 그는 가까스로 자리를 피하며 노인이 말한 위기를 모면했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연말이 다가왔다.

올해도 새해맞이는 지리산에서 보내야지?

연말이면 항상 함께 산을 타던 친구 준호에게 연락이 왔다.

그럼, 당연하지. 새해맞이 산행인데 놓칠 수 없지.

그는 아무 탈 없이 한 해를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다. 드디어 회사 종무식을 마치고 그는 친구와 함께 지리산에 올랐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왜 이렇게 힘드냐.

눈까지 오니까 만만치 않네. 산장에서 하루 더 묵고 올 걸 그랬나?

갑자기 악화된 기상상황에도 정상에서 해맞이를 하려는 욕심에 그들은 무리하게 산행에 올랐다.

눈이 너무 많이 오는데…”

그들은 눈 쌓인 산등성이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근심에 휩싸였다. 그 순간, 준호의 비명이 산새를 울렸다.

무슨 일이야, 준호야?

주변을 살피던 준호가 눈 쌓인 바위를 밟고 미끄러져 속절없이 밑으로 추락했다.

아아악!

손 써볼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이미 준호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웬일인지 핸드폰까지 먹통이었다. 추락한 지점을 향해 아무리 소리쳐 불러 봐도 준호는 대답도 없었다.

이 녀석 어떻게 된 거야, 해가 지면 더 위험할 텐데.

해가 지기 전 준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조심조심 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바닥을 분간할 수 없이 눈이 쌓인 데다 눈발까지 흩날려 사방을 분간할 수 없었다. 얼마 못 가 그마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고 거친 산길을 따라 정신없이 추락했다.

이봐요…”

그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곳은 작은 황토방이었다.

정신이 들어요?

부드러운 여자의 음성이 그의 귀에 스며들었다.

여기가어디에요?

꼬박 하루나 정신을 못 차리셨어요.

하루를그럼 오늘이 몇 일이예요?

올 해의 마지막 날, 31일이요.

그녀의 말에 그는 뻐근한 몸을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직은 무리에요. 여기, 따뜻한 차 좀 드세요. 기력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 감사합니다. 근데 혹시 저 말고 제 친구, 다른 사람은 못 봤나요?

글쎄요. 너무 어두워서...

그는 친구에 대한 걱정이 들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럼, 좀 더 쉬세요.

그녀가 나간 뒤 그는 그녀가 놓고 간 차를 마셨고 그제야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이 산중에 여자 혼자...이런 곳에서 지내다니.

정신이 든 그가 주섬주섬 겉옷을 입으며 가방을 챙기는데 다시 방안으로 들어온 여자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차 감사합니다. 덕분에 기운이 나네요.

기력이 회복된 그는 한시라도 빨리 준호를 찾고 싶어 나갈 채비를 했다.

지금은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위험해요. 내일 날이 밝은 뒤에 움직이셔도 늦지 않아요.

그래도...

저녁 준비 다 되었어요. 제가 금방 저녁을 올릴 테니 더 기력을 차린 후에 일어나세요. 괜히 무리해서 나갔다간 두 분 다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그는 졸지에 낯모르는 여자와 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 난감했지만 여자의 말대로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그녀가 차려온 저녁을 먹고 그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답답해!
새벽녘, 그는 온 몸이 갇힌 듯 답답한 기분이 들어 잠이 깼다.

왜 이러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주변을 살필 뿐 손가락 하나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 무슨 문제 있나? 우리 귀한 제물께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가 눈을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어둠속에서 정좌를 하고 앉은 그녀가 보였다. 하얀 한복을 차려입고 곱게 단장까지 마친 그녀는 두 손을 모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무녀의 길에 들어선 지 10, 아무리 치성을 드려도 효험이 없었는데, 네 덕분에 신령님께 산 제물을 바칠 수 있게 되었으니 드디어 탁월한 능력을 점지 받겠구나. 눈밭에서 널 발견한 건 정말 행운이지 뭐야.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네가 아까 먹은 저녁, 우리 신령님 제사상에서 내온 거야. 그걸 먹고 몸이 회복되었다는 건 신령님도 널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거지. 이제 네 몸도 회복되었으니 신성한 제사상에 올릴 준비가 되었네.

여자는 그를 멍석에 만 채 질질 끌고 황토방 옆의 동굴로 들어갔다. 제단이 마련된 동굴 안에는 갖가지 음식이 차려있었고 한쪽 끝에는 멍석에 말린 준호가 이미 썩어가고 있었다.

저 녀석은 괜히 끌고 왔어. 이렇게 죽어버릴 줄 알았으면 버려두고 올 걸, 괜히 힘만 들였지 뭐야.

그녀는 그를 제단에 눕힌 채 커다란 칼을 휘두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신령님께 드디어 산 제물을 바칩니다. 부디 어여삐 보시어 제게 많은 권능을 주시길 기원하나이다.

춤을 추는 그녀의 뒤로, 제단 벽면에 신령님의 초상화가 붙어있다.

, 저건...그 노인?

초상화 속 신령님의 얼굴은 분명 지하도에서 본 노인이었다. 초상화 속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타깝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아랑곳 않고 여자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춤을 추다가 갑자기 그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악!

그의 괴성에 그녀는 더욱 신명나게 춤을 추며 그의 온 몸을 칼로 베었다. 뿜어져 나오는 그의 피에 동굴 속 제단 위는 어느새 피로 물들었다. 한 줌 남은 그의 의식에 노인이 했던 말이 희마하게 떠올랐다.

절대 제사 음식은 먹지 마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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