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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공포 소설

배가 고파요

by 배작가 2021.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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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옵션 빌라로 이사 온 준석은 기분이 날아갈 듯 했다. 이전에 살던 옥탑방보다 넓고 깨끗한데다 분리형 원룸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나도 이제 어엿한 직장인인데 이 정도는 돼야지.

이사를 마친 그는 이사기념으로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입이 짧은 그가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이지만 넉넉한 사이즈의 냉장고가 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

역시 이사한 날은 짜장면이지.

짐도 별로 없는 이사였지만 은근히 하루를 꼬박 써버린 그는 뒤늦은 식사가 꿀맛처럼 느껴졌다.

어디, 탕수육 맛은...캬아, 이집 맛집이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탕수육의 맛에 감탄하며 그는 정신없이 젓가락질을 했다.

, 이거 뭐야? 다 먹어버렸네.

남을 줄 알았던 탕수육이 흔적도 없이 싹 비워졌다.

이사가 힘들긴 힘들었나 보네. 내가 이 많은 양을 다 먹다니, !

그는 한껏 채워진 배를 두드리며 바로 침대로 올라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늦은 퇴근을 하던 준석은 집으로 들어오며 연실 구시렁거렸다.

새로 온 팀장 완전히 악질이네, 하루 종일 잔소리에 야근에.

의류 회사에서 무슨 가방을 만들어? 미친 거 아냐?

그는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찾다가 싱크대 서랍에서 라면을 꺼내들었다.

밥하기도 귀찮은데, 라면이나 끓여 먹자.

그는 토마토와 계란을 넣어 끓인 라면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역시 라면에 토마토는 환상 콤비야.

그런데 몇 젓가락 뜨기 무섭게 그의 그릇은 하얀 바닥을 드러냈다.

먹은 것도 없이 국물만 남았잖아. 아직 간에 기별도 안 갔는데.

그는 싱크대를 뒤져 즉석밥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어디, 또 먹어 보자.

그는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밥까지 먹었는데 왜 허하지? 요즘 내 양이 많아졌나?

그는 아직 차지 않은 배에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급격한 피곤이 몰려와 씻지도 않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회식 있습니다. 열외는 없는 거 알지?

악질 팀장의 일방적인 지시에 준석과 팀원들은 회식 장소로 향했다.

무슨 회식을 중국집에서 하냐? , 짠돌이.

허름한 중국집으로 들어서는 팀장을 보고 모두들 한 마디씩 투덜댔다.

, 맘껏 주문들 하라고. 난 짜장면이야.

모두 팀장의 눈치를 살피며 짜장면과 짬뽕, 볶음밥을 시키는데 준석만 홀로 짜장면 곱빼기에 볶음밥까지 두 가지를 주문했다.

자네, 체격도 비실한 사람이 두 개를 다 먹을 수 있겠어?

그 정도는 먹어야 배가 부르죠.

최근 식사량이 많아진 그로서는 우스운 수준이었기에 준석은 못마땅한 표정의 팀장을 향해 호기롭게 말했다. 후루룩후루룩,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준석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짜장면 곱빼기를 반도 못 비웠는데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 오늘은 왜 이렇게 버겁지…’

이준석씨! 이게 뭐야, 아깝게시리...혼자 욕심만 불통같이 부리더니만, 으이구.

결국 그는 팀장의 갖은 핀잔을 받으며 꾸역꾸역 짜장면을 비웠고, 다른 팀원들은 천덕꾸러기가 된 그를 보다 못해 볶음밥을 나누어 먹었다.

이상하네집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차더니...

악질 팀장 앞이라 입맛이 떨어져 그런 거려니 준석은 생각했다. 이후로도 제멋대로인 팀장 때문에 회사일은 점점 더 힘들어졌고 그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집에 와서 먹는 걸로 풀었다. 그러다보니 살은 금세 불어, 65킬로이던 몸무게가 석 달 만에 100킬로를 육박했다. 거실에 있는 전신거울을 볼 때마다 배는 점점 더 탱탱하게 동그래지고 얼굴 넓적해졌다.

이준석씨, 뭘 그렇게 혼자 잘 먹어서 살이 찌나? 회사일이 너무 편한가?

표독스런 팀장은 볼 때마다 면박을 주었고 이는 다시 스트레스로 이어져 폭식을 불렀다.

오늘은...족발하고, 피자 치킨 세트! 좋다!

준석의 먹는 양은 어마어마하게 늘어 식대를 감당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먹어대는데도 만족스러울 만큼의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네. 밖에서는 안 그런데 왜 집에만 오면 이렇게 식욕이 당기지?

오늘도 팀장에게 갖은 잔소리를 들은 그는 집에까지 회사 일감을 가져왔다. 온 방 가득 의류 샘플을 늘어놓고 팀장이 표현한 오묘한 색감의 원단을 찾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어휴, 집에까지 와서 이 짓을 해야 돼? 신사복 회사에서 가방 만든다고 나댈 때는 언제고, 이젠 또 여성복이라니?

머릿속에 팀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는 또 미친 듯이 식욕에 휩싸였다.

먹자, 먹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그는 음식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자 휘파람까지 불어대며 커다란 냄비에 라면 물을 올렸다.

오늘은 해물라면을 끓여 볼까나?

그는 라면 5개에 퇴근길 마트에서 사 온 쭈꾸미를 듬뿍 넣었다.

이걸로는 모자랄 텐데...그래, 라면에는 찬밥이지.

가득 차린 상을 들고 TV가 놓인 방으로 들어가던 그는 샘플이 늘어진 방을 보고 멈칫했다.

샘플에 라면 국물이라도 튀면 팀장이 지랄하겠지? 근데 저걸 언제 다 치워?

그는 상을 든 채 잠시 망설이다 비좁은 거실 한쪽에 상을 내려놓았다. 솔솔 올라오는 라면 냄새에 방을 정리할 여유도 없었다. 싱크대 밑에서 부엌대기 마냥 먹는 게 아쉽지만 마주보이는 전신거울을 바라보니 왠지 누군가와 같이 먹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거울 보면서 먹으니까 꼭 먹방 하는 사람 같네. 헤헤.

목도리마냥 이중으로 겹진 두터운 목에 줄줄 땀을 흘리며 그는 뜨거운 라면을 마구 잡아채 입에 넣었다. 다섯 개나 되는 라면이 순식간에 그의 배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제 밥을 말아볼까?

밥통에 남아있던 찬밥을 모두 말아 먹기 시작한 그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흐르는 땀에 아예 수건을 머리에 묶던 그는 무심코 눈을 들어 거울을 보았다.

어억!

거울을 본 준석은 기겁을 하며 뒤로 넘어갔다. 분명 준석 혼자만 사는 집인데 거울 속에는 두 사람이 비추고 있었다. 거의 준석의 품에 안기다시피 한 채 냄비를 부여잡고 있는 말라깽이 여자였다. 기괴하게 눈을 희번덕이는 그녀는 누구에게 뺏길 새라 미친 듯이 음식을 자신의 입에 쏟아 붓고 있었다.

누구세요!

준석이 자신의 옆을 돌아보았지만 여자는 어디에고 보이지 않았다. 준석이 다시 거울을 들여다 본 순간, 희번덕, 웃는 여자의 얼굴이 후욱, 준석을 향해 다가왔고 준석은 이내 까무러쳤다.

총각, 미안해요. 내가 이사할 때 얘기하는 게 도리인데…”

실신했던 그가 깨어나자마자 집주인 아주머니를 찾아가 따져 묻자 그녀는 민망해하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거식증에 걸린 아가씨가 그 방에서 살다가 굶어 죽었지 뭐야. 그거 알리면 괜히 찝찝해 할까봐 안 알렸는데미안하게 됐어.

퀭한 눈을 희번덕거리던 여자를 떠올리며 준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자신의 환히 켜진 방을 올려다보며 준석은 어쩌지도 못한 채 길거리를 서성였다. 그런 준석을 내려다보며 창문 안, 말라깽이 검은 그림자가 그를 향해 어서와, 어서, 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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