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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공포 소설

기묘한 취미

by 배작가 2021.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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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리를 좋아합니다. 건너는 다리 말고 사람의 다리 말입니다. 그렇다고 젊은 여자의 다리를 탐하는 변태로 보진 마세요. 난 아기 다리부터 노인의 다리까지 모든 다리를 사랑하니까요. 굴곡진 선을 그리며 뻗어 내린 다리가 좌우 대칭을 맞추며 몸을 지탱해 걸어가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사실 제가 언제부터 다리를 좋아하게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네 살 때인가, 다섯 살 때인가,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어머니의 포근한 다리에 누워 잠들었던 기억 때문일까요? 아니면 스무 살에 처음 사귄 여자친구의 길고 날씬한 다리 때문일까요?

어머니는 내가 일곱 살 때 집을 나갔고 처음 사귄 여자친구는 제 절친과 눈이 맞아 더럽게 관계가 끝났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나는 다리를 사랑합니다. 아기의 다리는 뽀송뽀송해서 좋고, 노인의 다리는 가늘고 긴 나이테 같아서 좋습니다. 물론 여자의 매끈한 다리에 가장 끌리기는 합니다만, 헤헤.

그래서 나는 다리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대부분 플라스틱이나 스펀지로 만들어진 모형 다리지만 다른 수가 없으니까요. 장난감 가게나 선물 가게에 가서 진열된 인형의 다리만 똑, 분리해 가져오면 걸릴 일도 없고 간단합니다. 가끔은 대담하게 마네킹 다리를 빼오기도 합니다. 어제도 백화점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마네킹 다리가 보여 몰래 그것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점원이 자리를 비울 때를 기다려 직원인척 들어가서 빼오면 그만이지요. 아무도 마네킹 다리를 훔쳐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수집된 다리들은 혼자 사는 나의 반지하 방과 거실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게 한데 모여 있으면 그것들은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연히 저희 집에 온 회사 동료가 저를 보고 변태라고 놀렸지만 저는 당당히 말했습니다.

나 다리 컬렉터야.

우표나 피규어만 모으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오늘도 나는 다리를 구하러 갑니다. 얼마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좀 더 특별한 다리를 수집하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 쓰레기처럼 버려져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는, 불쌍한 다리를 구제하러 가는 것이지요. 제가 향하는 곳은 바로, 공동묘지입니다. 모두에게 잊힌 채 흙속에서 썩어갈 다리를 수거해 정성스레 방부 처리를 하면 다리는 다시 생명을 부여받게 됩니다. 다리의 주인도 분명 좋아할 테지요.

오늘은 달이 흐릿합니다. 다행이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있으나 마나 한 묘지 관리인마저 이미 퇴근하지 오래입니다.

오늘은 어느 묘가 좋을까?

나는 손전등으로 면밀히 묘를 관찰합니다. 풀이 많이 자랐거나 흙이 단단해 보이는 묘는 피합니다. 풀이 별로 없고 흙이 듬성듬성 뭉쳐있는 묘가 새로 형성된 묘일 가능성이 큽니다.

, 이게 좋겠네.

나는 공동묘지 끄트머리에 자리한 묘를 선택하고는 삽으로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마에서부터 등줄기까지 기분 좋은 땀이 흘러내립니다. 이렇게 묘를 파는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과연 오늘은 어떤 다리가 나올까?

흥분과 기대 속에 드디어 관이 드러나면 설렘 속에 뚜껑을 엽니다.

오호호호!

예상대로, 얼마 안 된 젊은 여자의 다리가 나왔습니다. 발목이 가늘고 허벅지는 두툼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이제 전기톱을 꺼내어 다리를 몸통에서 분리해야 합니다.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맹렬하게 들려오지만 산중이라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참으로 좋은 작업환경이지요. 절단 작업이 끝나면 무덤을 덮고 고이 포장한 다리를 가지고 돌아가서 방부처리만 하면 완성입니다. 수많은 다리 사이에 새로운 다리를 놓을 걸 생각하니 소름끼치도록 기분이 좋습니다.

시간경과 음악 E 기괴하면 할수록 좋음.

무덤에서 다리를 가져온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볼 때마다 뿌듯하지만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며칠 전 경찰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운 나쁘게 공동묘지 근처 CCTV에 찍혀서 경범죄로 벌금을 물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설치된 CCTV를 미리 파악 못한 나의 불찰입니다. 이제 그 묘지에는 갈 수 없으니 사람의 다리를 구할 길이 막막합니다. 다른 묘지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울적한 마음에 마네킹 다리 몇 개를 구하긴 했지만 이제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반지하 방 창틈으로 하이힐을 신은 여자 다리가 보일 때면 탐이 나 미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나는 궁리 끝에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았습니다.2

 3천의 대출금과 저축해 둔 돈 2천을 더해 5천을 마련했습니다. 이 정도면 다리를 구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살아있는 사람의 다리를 구하는 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변태가 아니니까요. 갖은 궁리 끝에 머리를 좀 썼습니다. 드디어 약속한 그날, 나는 차를 몰고 경기도의 한적한 시골, 컨테이너 창고 단지로 갔습니다. 마침 보름달도 제대로 떴고 간만에 새로운 다리를 갖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어 옵니다. 큰돈이 들어가는 게 아쉽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요, 후후.

드디어 약속장소인 창고 단지에 도착했습니다.

일은 마무리 해 놨소, 돈은?

창고 앞에서 매서운 얼굴의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돈은 여기, 물건은 어디 있소?

남자는 컨테이너 창고 문을 열어주고는 가버렸고 나는 유유히 창고로 들어갔습니다.

오호, 약속대로 죽은 지 얼마 안 된 여자네?

나는 바닥에 고이 누워있는 여자 시신을 긴 공작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무덤 속 시신과는 차원이 다르게 아직 따뜻한 온기가 흐릅니다. 나는 가방에서 전기톱을 꺼내어 전원을 켰습니다. , 굉음을 내며 전기톱이 돌아갑니다.

흐흐, 이제껏 중 최고 레벨 다리인데...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를 죽인 건 매서운 얼굴의 그 남자입니다. 나는 그저 다리를 좋아하는, 한낱 컬렉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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