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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는 요즘 꿈을 자주 꿨다. 프로덕션 피디 일이 힘들어 그렇겠지 했지만 계속 반복되는 꿈에 영 기분이 꺼림칙했다.
“우리, 어디 여행이라도 가서 쉬다 올까? 아니면 당신 시골집이라도 가서…”
아내는 남편인 정주의 걱정에 여행을 제안했지만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여행은커녕 오매불망 자신만을 기다리는 부모님 얼굴조차 보러 갈 시간이 없었다.
“미안해. 방송이 얼마 안 남았어.”
“당신네 회사는 뭘 그렇게 사람을 들들 볶아?”
“외주 프로덕션 피디라는 게 그렇잖아, 이러다 시청률 안 나오면 바로 잘리는 거야. 프로그램이
살아야 우리도 산다고.”
그의 고지식한 성격을 아는 탓에 그쯤에서 아내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오늘도 회사에서 늦게까지 편집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여보, 소파에 누우면 어떻게 해? 씻고 침대에서 편히 자.”
“끄응…”
일어나려했지만 천근만근 몸이 무거워 오늘도 그는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아내도 자주 겪는 일에 조용히 담요를 덮어주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피곤에 지쳐 잠든 그는 곧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 오솔길이네.’
그는 지난 번 꿈에서도 걸었던 오솔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어째, 으스스하네.’
오솔길 양옆으로 삼나무들이 줄지어 뻗어 있었고 삼나무 잎과 가지 사이로 손바닥만큼의 하늘이 겨우 보였다. 틈새로 보이는 잔뜩 흐린 하늘을 보며 한참을 걷자 숲길의 끝에 작은 연못이 나왔다. 짙은 녹색의 연못은 밑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수포가 퐁퐁, 용암처럼 솟아올랐다.
“자네 왔는가?”
연못 한쪽에서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그에게 말을 건넸지만 그는 대꾸 없이 조용히 연못 주위를 서성였다.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좀 앉게. 그렇게 서성이면 고기가 물지 않는다고.”
노인의 꾸지람에 그는 머쓱한 얼굴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낚시를 구경했다.
‘지루하구나.’
낚시에 취미가 없는 그에게는 꿈속의 낚시도 지루할 뿐이었다. 영 좀이 쑤셨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노인의 낚싯대에 움직임이 일었다.
“어이쿠, 왔구나.”
그는 호기심이 일어 노인의 낚싯대 끝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금붕어네. 우리 집도 금붕어 키우는데.’
그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는데 노인의 입에서 실망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왕이면 큰 놈이 잡혀야지, 이렇게 작은 놈을 뭣에 써.”
노인은 짜증을 내며 휙, 금붕어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파닥파닥, 흙바닥에 널브러진 금붕어가 작은 몸을 뒤척였다.
‘불쌍하네, 저 녀석.’
그는 가녀린 몸을 꿈틀대는 금붕어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잠에서 깨었다.
‘아…괜히 기분 나쁜 꿈이네.”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고는 다시 소파에 누웠다. 그러다가 언뜻, 거실에 있는 수족관에 눈길이 갔다.
‘혹시…’
그는 불길한 기분에 젖어 수족관으로 다가갔다.
‘어, 한 마리가 죽었잖아.’
무슨 일인지 금붕어 한 마리가 죽은 채 물위에 둥둥 떠 있었다. 그는 수족관에서 그것을 건져낸 후 다시 피곤한 몸을 소파에 뉘였다. 그 후로 한동안 몹시 바빴던 그는 거의 매일 밤을 지새우며 야근을 했고 한 달 후, 다시 꿈을 꾸었다. 이전과 똑같이 음침한 분위기의 오솔길을 지나면 언제나 그랬듯 노인이 낚시를 하고 있는 연못에 다다랐다.
“또 보네, 그려.”
노인은 익숙한 듯 낚싯대에 눈을 고정한 채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기분 나쁜 노인이야. 얼른 꿈에서 깨야 해.’
그는 오솔길을 되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 때, 등 뒤에서 노인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왔다, 왔어! 드디어 대물이 왔다!”
노인의 환호에 저도 모르게 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강렬한 호기심이 그를 감싸 안았다.
‘뭘 잡은 거야?’
노인의 낚싯대는 거의 부러질 듯 휘어있었고 진한 녹색의 연못에 잠긴 낚싯대의 끝에서 서서히 뭔가가 딸려 올라왔다.
‘저게 도대체 뭐야?’
그는 점점 연못을 향해 다가가며 낚싯대에 걸린 커다랗고 희뿌연 물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뭐야...저, 저건, 인어?’
“하하하, 드디어 잡았다! 잡았어!”
노인은 커다란 뜰채로 그것을 잡아채 뭍으로 끌어올렸다.
“자네, 이리 와서 이것 좀 보라고. 어서!”
그는 홀린 듯 노인 곁으로 다가가 뜰채 안의 물체를 들여다보았다.
“허억! 이...이런...아...버지...”
노인의 뜰채 안에 담긴 물체는 분명 아버지, 시골에 계신 그의 아버지였다.
“이봐요, 노인장. 얼른 이 사람을 연못 속으로 놓아주시오. 어서!”
“에이, 그럴 수야 없지. 내가 애써서 잡은 고긴데.”
그는 고기라는 노인의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이런 빌어먹을 노인네가...”
그가 노인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그는 꿈에서 깨고 말았다.
“안 돼!”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그의 눈에 놀란 얼굴의 아내가 들어왔다.
“여보 괜찮아?”
걱정스런 얼굴로 아내가 물었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부고 연락을 받았다.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 그는 혼란과 공포에 휩싸인 채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야만 했다.
‘다시는 그 불길한 꿈을 꾸지 말아야 할 텐데...’
다행히도 몇 달 동안 그는 거의 꿈을 꾸지 않았다. 꿈을 꾸더라도 오솔길이 보이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절대 움직이지 않고 버텼다.
“당신 요즘,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늦게 퇴근하는 그를 보며 아내는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다들 그러고 사는 거지 뭐. 직장인 중에 안색 좋은 사람 봤어? 사장이나 돼야 얼굴에 기름이 흐르지.”
그는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던지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고열에 시달리며 끙끙 앓다가 결국 응급실로 향했다.
“으이그,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좀 쉬면서 일하라니까.”
“괜찮아. 주사 한 방 맞으면 낫는다니까 호들갑은.”
새벽녘, 응급실을 나온 그는 아내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도시의 밤풍경을 바라보았다.
‘가끔은 이렇게 아내에게 기대는 것도 기분 좋은 걸.’
그는 한껏 젖힌 조수석에 누워 흐뭇한 기분으로 아내를 바라보다 편안한 기분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속, 그는 파릇파릇한 잔디로 뒤덮인 동산에서 소녀 시절의 아내와 마주했다. 실제로 초등학교 시절 처음 알게 된 두 사람은 학창시절 내내 한 동네에 살았었다. 혼자서 그녀를 짝사랑하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다시 만난 그녀에게 고백을 했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결혼까지 했다.
“우리, 곤충 잡으러 갈까?”
“좋아.”
소년인 그는 소녀인 아내와 함께 곤충 채집망을 들고 작은 동산을 뛰어다녔다.
“어휴, 하나도 못 잡았어.”
그녀에게 나비를 보여주려 한참을 뛰어다니던 그는 문득, 그녀가 옆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영아, 나영아, 어디 있어?”
“여기, 여기로 와, 나 한 마리 잡았어!”
“어, 정말?!”
그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내가 잡아서 핀셋으로 여기 꽂아놓았어.”
“우와, 대단한데. 이거야?”
그는 그녀가 내민 작은 판을 들여다보았다.
‘어, 이건 곤충이 아닌데…’
소년인 그는 커다란 눈을 들어 핀셋에 꽂힌 물체를 살펴보았다.
“나영아...이건...”
그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나영을 보았다. 하지만 아내는 온 데 간 데 없고 그 자리엔 노인이 서 있었다.
“당신이 왜?!”
“흐흐, 이제야 알아보겠나? 하도 연못에 안 오기에 자네 추억 좀 빌렸네, 후후. 잘도 낚이는구먼,
꽤나 아내를 사랑하는 모양이지? 그런데 어쩌나…이 꼴이 돼서, 흐흐.”
노인은 낄낄대며 핀셋에 꽂힌 물체를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작은 판 위에는 발가벗겨진 채 핀센에 꽂힌 자신이, 괴로운 듯 꿈틀대고 있었다.
‘아…또 재수 없는 꿈을 꿨네.’
잠에서 깬 그는 불길한 꿈을 떨쳐버리려 연실 고갯짓을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근데 여긴 또 어디야? 분명히 나영이랑 차 안에 있었는데...’
북적이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그곳, 게다가 사람들은 모두 검은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여긴...장례식장이잖아? 여긴 언제 왔어? 어, 저기 나영이가 있네.”
그는 검은 옷을 차려입은 아내에게 다가갔다.
“나영아, 누가 돌아가셨어?”
하지만 그녀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도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영아, 나 좀 봐. 대답 좀 해줘.”
아무리 소리쳐도 자신을 외면하는 아내를 보자 그는 답답함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영정사진을 돌아본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구나...나였어...’
잠시 후 그의 눈앞에 눈부시게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내렸다. 멀리서 희미하게 말발굽 소리와 방울소리가 들려오더니 익숙한 한줄기 음성이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흐흐흐, 오늘 드디어 대어를 낚았구먼. 굉장한 대어를,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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