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스테리 공포 소설

재벌가의 요리사

by 배작가 2021. 5. 23.

소리나는 책방의 모든 작품은 창작입니다. 저작권 침해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현은 잘 나가는 셰프다. 방송에도 자주 나오고 본인이 경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도 잘 나간다. 미국을 거쳐 프랑스까지 요리 유학을 다녀온 그였기에 실력도 좋았고 나이에 비해 경험도 많았다. 특히 그의 매끈한 외모는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다보니 소위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연락이 왔다. 개인 행사에서 요리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정현은 웬만큼 거액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면 대부분 거절을 했다.

시간이 돈이란 말이야. 나 같은 사람한테는.

정현은 오늘도 한 여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고지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다짜고짜 자신의 집으로 와서 요리를 해 달라고 했다.

제가 스케줄이 꽉 차서...곤란합니다.

돈 걱정은 말아요. 원하는 대로 맞춰드릴 테니까.

그녀는 그날 저녁, 자신만을 위한 일인분의 요리를 해주는 대가로 평소 그의 몸값의 두 배를 제시했다.

...스케줄 조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꼭 셰프님이 해주신 요리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어떤 요리를 원하는지 말씀해 주시면 재료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아뇨, 재료는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필요 없어요. 대신, 셰프님 혼자만 오셔야 합니다.

보조 없이 혼자? 그럼 뒷정리를 나더러 하란 말이야?

정현은 잠시 멈칫 했지만 간혹 사생활을 철저히 보호받고 싶어 하는 VIP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고작 일인분 한 끼에 두 배의 금액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는 시간에 맞춰 고지은의 집으로 향했다.

, 뭐하는 사람인데 이런 데에 살아? 웬만한 그룹 총수의 집 못지않은데...

정현은 고지은의 저택으로 들어서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정재계 인사나 탑스타의 집에 여러 번 가봤지만 이처럼 으리으리한 저택은 처음이었다.

내가 모르는 유명인사인가보네. 이런 사람과 친분만 맺어놔도 엄청난 가치겠는 걸.

그는 정원을 따라 한참을 걸어간 후 현관에 들어섰다.

어머, 실물로 뵈니 더 멋있으시네요. 셰프님 팬이랍니다.

현관에서 정현을 맞이한 건 고지은이었다.

, 얼굴도 연예인 뺨치는 걸, 젊은 여자가 무슨 수로 이렇게...

그는 연실 감탄하며 고지은의 안내를 받아 거실로 향했다.

셰프님이랑 단 둘이 있고 싶어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물렸어요.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파티복을 입은 고지은은 직접 차를 내오며 그의 옆에 앉았다.

무슨 향수길래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란히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은 요리에 앞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은 제법 공통점이 많았다. 엄한 부모님, 어려서부터 한 유학생활, 부적응, 그리고 다시 비상하기까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굴지의 그룹의 숨겨진 딸임을 정현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어머, 우리 차로는 안 되겠어요. 아래로 내려가서 와인 한 잔 해요.

고지은은 그의 손을 잡고 지하 바로 내려갔다.

역시 재벌가답게 바도 굉장하구나.

인테리어도, 규모도, 술 종류도, 웬만한 강남 고급 바를 능가했다. 그는 요리를 하러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녀와 와인을 마셨고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자연스레 그녀의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내가 재벌가 딸과 이렇게 되다니.

고지은은 그와 사랑을 나눈 후 다정스럽게 그에게 속삭였다.

, 배고파요. 이제 요리 만들어줘요.

뭘 해줄까요?

정현은 그녀의 볼에 키스를 하며 물었다.

고양이 요리.

, 뭐라구요?

뭘 그렇게 놀라요? 송아지 요리도 말 요리도 하는 분이.

, 그렇긴 한데...

의아해 하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그녀가 애교스럽게 말했다.

내가 키우던 코나 녀석이 요즘 말을 안 들어서요.

코나...설마 키우던 고양이를?

, 맞아요. 내가 이미 잡아서 냉장고에 넣어놨으니까, 요리만 해주면 되요. 스테이크가 좋을까, 스튜가 좋을까?

고지은은 천진한 얼굴로 그의 알몸을 천천히 쓰다듬었고, 그는 그녀의 얼굴을 홀리듯 바라보았다. 매력적이고 섹시한데다 천진한 그녀, 왠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일탈이야 뭐, 예전엔 관절 안 좋은 사람들이 많이 먹기도 했잖아. 불법도 아니고, 그래 봤자 고깃덩어리라고.

정현은 이미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고 그날 밤 그녀를 위해 정성껏 요리를 만들었다. 그녀와 급속도로 가까워진 그는 이후에도 자주 저택에 들락거렸다. 숨겨진 존재인 그녀와의 비밀연애가 더 스릴 있게 느껴졌고 다른 세상의 문을 연 것만 같은 저택에서의 하룻밤이 꿈같았다.

자기야, 오늘은 개 요리 좀 해 줘.

? 집에 크랩 있어?

아니, 그 게 말고, 내가 키우던 치치 녀석.

치치? 아니, 치치를 왜?

그녀는 지난번과 똑같이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다.

버릇이 없어서.

이상하게도 그 저택에만 들어서면 그는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고 그녀와 사랑을 나눈 후 그녀가 요구하는 것에 홀리듯 따라갔다. 그날 밤도 그는 그녀를 위해 개고기로 요리를 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오면 대한민국 탑 셰프로서 자괴감이 들었다.

아무리 사랑이라도...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그녀와 만난 지 두 달이 넘어갈 무렵, 그는 점점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날 밤, 그녀의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는지도 모른다.

운전기사가 요즘 자꾸 제멋대로 굴어, 버릇없게 시리.

뭔가 섬뜩한 기분에 휩싸였던 그는 한동안 갖은 핑계를 대며 그녀와의 만남을 회피했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시간을 끌 수는 없어 결국 그는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어떻게 네가 감히 나 고지은한테 이별을 통보해?

감히? 네가 뭐 대단하다고 감히 씩이나, 그래봤자 부모덕에 호강하는 주제에. 내가 언제까지 네 비위 맞추며 살 수는 없잖아?

정현은 평소에 쌓여왔던 말을 모두 쏟아 부었고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버릇없기는.

일주일 후, 짧은 머리에 눈이 가늘고 매서운 덩치가 고지은의 거실에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무슨 일이든 시키십시오.

내가 듣기로 그쪽 세계 분들 중, 요리를 좀 한다고요?

, 요리요? ...그걸 어떻게?

거친 일만 의뢰받던 덩치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

요리 좀 해달라고 불렀어요. 버릇없이 구는 녀석이 있어서, 호호.

그녀는 덩치를 이끌고 지하 바에 묶어 놓은 정현에게 다가갔다.

저 녀석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줘요. 스테이크도 좋고, 구이도 좋아요.

손발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린 정현은 두려운 눈빛으로 몸부림을 쳤다.

, 네가 오늘 요리감이로구나. 흐흐.

덩치는 검은 가죽 앞치마 끈을 질끈 동여매며 정현에게 다가왔다. 잠시 후면, 그가 요리했던 고양이와 개처럼 정현 또한 한 그릇의 요리가 되어 고지은의 테이블에 오를 것이다.

 

 

소리나는 책방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소리나는책방공포미스테리

'미스테리 공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묘한 취미  (1) 2021.06.06
딸꾹질  (0) 2021.05.30
트럭커와 여자  (0) 2021.05.17
신약의 비밀  (0) 2021.05.09
부적  (0) 2021.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