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스테리 공포 소설

딸꾹질

by 배작가 2021. 5. 30.

소리나는 책방의 모든 작품은 창작입니다. 저작권 침해시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통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다. 딸꾹질을 자주 하는 편이기는 해도 이번처럼 일주일 이상 지속된 적은 처음이었다.

물 좀 마셔보라니까.

회사 사람들은 그를 볼 때 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별거 중인 아내도 이혼 소송 문제로 전화를 하고는 계속된 딸꾹질로 대화가 안 되자 짜증을 내며 같은 말을 했다.

물이라면 충분히 마셨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잔소리야, 딸꾹.

빌어먹을 여편네 같으니라고, 어린놈하고 바람나서는 이혼, 이혼 노래를 부르네.

그는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항간에 떠도는 민간요법은 모두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사장님이 참석하는 회의시간에도 그의 딸꾹질은 문제가 되었다. 회사의 3분기 매출 감소로 사장에게 꾸지람을 듣는 와중에 딸꾹질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김과장, 뭐 훔쳐 먹었어?

모욕적인 사장의 말에 속으로는 개자식이라고 욕을 했지만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제가 요즘 이상하게, 딸꾹. 딸꾹질이 안 멈춰서요, 딸꾹

결국 그는 회의실에서 쫓겨났고 이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슬슬 눈총을 주기 시작했다.

딸꾹질 때문에 회사에서 잘리겠네, 젠장.

그는 점점 일상이 망가져간다는 생각에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딸꾹질이라면 제가 전문이거든요.

개인병원 진료실에서 그는 화려한 미모의 여의사와 마주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눈에는 피곤이 가득했고 그래서인지 성격 또한 히스테리컬 했다.

, 그렇습니까? 딸꾹.

일단 약 처방 받고 집에 가서 이렇게 해 보세요. 그래도 안 나으면 다시 찾아오시고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의사가 알려준 대로 설탕 한 스푼을 혀 위에 올려놓는데 때마침 그의 아내가 불쑥 집에 들이닥쳤다.

당신이 여길 왜 와!

설탕을 입에 머금은 채 화를 내는 그를 보며 아내는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무슨 해괴한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모르면 가만히 좀 있어,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준 방법이니까. 이것 봐, 딸꾹질 안 하네. 딸국, 젠장.

오호, 그러셔? 참사랑 병원 나미리 교수?

아내는 테이블 위에 놓인 처방전을 슬쩍 훔쳐보았다. 역시나 멈추지 않는 딸꾹질에 그녀의 뻔뻔한 태도까지 곁들이자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앞으로는 내 집에 함부로 들락거리지 마! 당신 권리 없으니까.

흐흐, 나도 포기 못해. 그렇게 꼴도 보기 싫으면 재산 좀 떼 주고 끝내면 되잖아, 그 많은 돈 쌓아놓고 뭐할 거야?

, 바람 피워 집 나간 주제에 뻔뻔하긴. 너한텐 한 푼도 못 줘!

그는 얼마 전 갑작스런 화재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로부터 백억 가까운 땅을 물려받았다. 평생 농사만 짓던 두 분이 차곡차곡 사들였던 땅이 재개발이 풀려 크게 오르면서 돈방석에 앉게 되었지만 두 분은 고집스레 농사를 이어갔다. 고생만 하던 부모가 호강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허망하게 떠나고 나서 그는 한동안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때, 그의 아내는 어린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 당시 그가 느낀 비통함과 배신감이 어쩌면 그의 딸꾹질의 원인일 지도 모른다. 그는 부모님이 남기고 간 논과 밭, 산을 손도 대지 않고 간직한 채 이전과 다름없이 회사생활을 이어갔고 그의 친구들은 취미생활로 회사를 다닌다며 그를 놀려대곤 했다.

선생님, 여전히 딸꾹질이…”

그럼 이번에는 이렇게 해 보세요.

그는 의사가 알려준 대로 손가락을 귀에 넣거나 면봉으로 입천장에 간지럼을 태웠다. 그렇게 하면 미주신경이 흥분해 딸꾹질이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안 되자 일시적으로 숨 참기, 밀폐된 주머니 속에서 호흡하기 등도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고 그는 다시 의사를 찾아갔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아무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딸꾹.

최후의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게 뭐죠?

그는 눈을 반짝하며 의사를 바라보았다.

수술입니다.

수술이요?

수술이라는 말에 그는 두려움이 일었지만 계속 이대로 살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그런데 수술을 받으려면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데...

의사는 그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

보호자 없이는 안 되나요? 제가 아내와 별거 중이라...

다른 가족도 없나요?

,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자식도 없고...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냥 진행하겠습니다.

의사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는 그 미소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했고 영원히 딸꾹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젖어 있었다.

아니, 딸꾹질 수술에 전신마취를 한다고요?

, 그게 중추 신경계의 염증이나 구조적 이상일 수도 있고 횡격막 종양 또는 염증, 혈관이상 등에 의한 자극일 수도 있어서, 열어봐야 합니다.

열다니요? 어디를요?

걱정 마시고, 저만 믿고 편히 누워 계세요. 간호사 뭐해? 마취 시작해.

그는 얼떨결에 전신마취를 했고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잠들었다 깨어나면 딸꾹질 없는 세상이 열릴 거야. 하나, , ...

열 시간 후, 수술실 옆 인적 드문 복도에서 의사 나미리가 환자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호 환자, 수술 중에 사망하셨습니다.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내는 놀란 얼굴로 비틀거렸다.

그럴 리가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의 입에서 흐느끼는 울음이 터져 나왔지만 눈은 초승달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지막이 의사에게 속삭였다.

약속한 10억은 현금으로 지하 사물함에 넣어두었습니다. 비번은 여기.

아내가 건넨 쪽지를 받아든 의사 나미리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그럼.

의사 나미리는 카지노의 현란한 기계음을 떠올리고는 곧 들어올 10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지하로 향했다.

 

 

소리나는 책방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소리나는책방공포미스테리

 

'미스테리 공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에서 낚시하지 마세요  (1) 2021.06.13
기묘한 취미  (1) 2021.06.06
재벌가의 요리사  (0) 2021.05.23
트럭커와 여자  (0) 2021.05.17
신약의 비밀  (0) 2021.05.09